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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_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AIS 소믈리에)
 
 
 
베로나,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펼쳐진 배경이 된 곳이다. 두 주인공이 속한 가문 간의 증오로 인해 핏빛으로 물들었던 베로나 고시가지의 좁고 습한 미로는, 비니탈리 축제 기간(4월7일~10일)인 나흘 동안 와인축제라는 명목으로 평소보다 과음한 젊은 친구들의 높은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축제가 벌어지는 내내, 라이벌 의식이나 증오심은 저 북쪽에 하얀 모자를 쓴 듯 눈 덮인 알프스 산 뒤편에서 숨을 죽였고, 인종과 문화 그리고 언어라는 장벽은 '와인’이라는 '망각의 액체’에 녹아 사라졌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면 과연 어떤 희곡을 썼을까? “’비니탈리’라는 와인축제에서 만난 젊은 연인이 사랑에 빠져 불과 나흘 만에 부모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는 해피 엔딩으로 희곡의 막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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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각종 우울한 소식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이탈리아인들에게 와인과 음식축제인 비니탈리는 일종의 청량제 역할을 해주었다. 비니탈리 기간 중 하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4,862 평방미터에 달하는 전시공간의 안팎은 개장부터 폐장시간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11,2%의 높은 실업률을 증명하듯 이탈리아는 요즘 경기침체로 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와인소비에도 영향을 미쳐 2012년 이탈리아의 1인당 와인소비는 37.2 리터에 그쳤고, 이는2008년의 그것에 비하면 14%나 줄어든 수치이다(출처_OIV, 국제와인기구). 물론 이러한 소비감소에는 혈중 알코올농도 기준 감소와 음주운전 단속강화, 또는 건강에 대한 관심 등의 요인 등도 가세했다.
 
여하튼 신명날 일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비니탈리는, 이탈리아인의 축 처친 어깨를 세워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의 상인들을 끌어들여 이탈리아 국익을 높여주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참고로 2012년 이탈리아의 총 수출금액 4천7백억 유로 중 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인 47억 유로에 달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4월 10일자 '베네토 신문(Corriere del Veneto)’에 의하면, 비니탈리 기간 동안 무려 14만 8천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는데 이는 작년보다 6% 가량 증가한 것이며 그 중 5만3천명은 세계12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이라고 전했다. 전시업체는 전세계 20여 개국에서 4,200개 업체가 참여하였다. 주(州) 별로 참여업체수를 보면 토스카나 주가 786개 업체로 1위를 차지했고 피에몬테(585업체)와 베네토(506업체)가 그 뒤를 이었다. 상위10여 개 주에서 총 100개 업체 이상의 참여율을 보였으나 참여업체가 100개 이하인 주도 10여 군데나 되었다. 몰리제(Molise) 주는 14개 업체가, 발레 다오스타( Vale d’Aosta) 주는 총 27개 업체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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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탈리는 총 18군데의 전시관에서 벌어지는데 그 중14군데 전시장에서 와인과 스피리츠가 전시되었고, 팔라엑스포(Palaexpo)에서는 각종 세미나와 심포지엄, 소믈리에협회와 정부기관, 협회에서 진행하는 시음회가 열렸다. C전시장에서는 최상품 농산물 전시회인 'Sol & Agrifood’가 열려 각종 전통 식품전시와 더불어 시식회가 열렸다. 이와 함께 F전시관과 그 주변에서 열린 'Enolitech’에는 최신식 양조기술과 올리브오일 관련기술, 와인 용품 등 최첨단 제품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비니탈리의 꽃은 역시 이탈리아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와인들이 내뿜는 향기로 진동하는 14군데의 주( 州) 전시관으로, 갓 수확한 포도가 발효하는 냄새로 가득찬 양조장을 방불케했다. Antinori, Zonin, Umani Ronchi, Mazi, Ferrari, Borgogno, Cavit, Firriato, Fontana Fredda 등 이태리 와인업계의 거물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최첨단의 인테리어로 장식된 대규모 부스는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눈에 띌 정도였다. 여기에 직원들의 세련된 친절함까지 더해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그 사세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와이너리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와인메이커 남매는 첫 수확한 포도로 만든 몬테풀치아노 와인 두 종을 달랑 들고 무작정 비니탈리에 참여했는가 하면, 퇴직금을 모아 구입한 포도밭과 올리브 밭에서 재배한 열매로 와인과 오일을 만들어 홍보하러 나온 세 명의 할머니들 덕분에, 전시장 한 켠에서 시장과 흡사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하였다. 와이너리 규모나 인지도가 서로 다른 와인들이 이처럼 한데 존재하고, 와인전문가나 호기심만 가득 찬 문외한이라도 와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일체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비니탈리는 매력적인 와인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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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은, 각 주 또는 와인 콘소시엄의 재량에 맞게 꾸며진 크기와 컨셉의 부스들로 메워졌으며 이는 다양한 눈요기거리를 제공하였다. 예를 들어 랑가 인(Langa In) 컨소시엄 부스는 벽이나 기둥이 없이 확 트인 공간에 낮은 원형 테이블을 배치하여 시음을 위한 와인과 잔을 놓아두었고, 생산자와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둘러앉아 와인을 시음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와인 생산자 컨소시엄이라는 중후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활기 차고 감성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부스에는, 흙이 말라붙어 빛 바랜 헌 신발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바닥에는 진흙이 깔려있었다. 돌체토 와인으로 유명한 크라베사나(Clavesana) 부스였는데, 호기심 가득한 관객들로 둘러싸인 채 올해 칠십 세의 여성 와이너리 대표가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땅이 와인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 땅을 가꾸고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은 바로 농사꾼들입니다. 그들의 땀과 역할을 알리기 위해, 우리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신발을 모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심하게 뒤틀려있는 가죽구두 한 켤레에 눈길이 갔다. 그녀의 조부가 신었던 구두란다. 그가 일생의 상당부분을 보냈을 포도밭의 흙이 말라붙어서 원래의 구두색을 구분해내기 조차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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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북동쪽에 위치한 두 주, 트렌티노 알토아디제(이하 트렌티노)와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이하 프리울리)의 생산자들은 같은 전시장을 사용했는데, 트렌티노 부스는 마치 독일의 맥주집을 연상시켰고, 훌륭한 목재로 유명한 프리울리는 부스를 나무로 장식하여 눈길을 끌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두 주는 이탈리아에서 국제 품종으로 최고급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지역이다. 하지만 부스 내 관계자들은, 타제렝게, 피뇰로, 스키오페티노, 테라노와 같은 프리울리 주의 레드와인과, 스키아바, 테롤데고, 라그레인 같은 레드와인, 모스카토 로사 파시토와 노시올라 품종으로 만든 비노 산토를 중심으로 한 트렌티노 와인도 화이트와인에 못지 않은 품질을 지녔음을 알리고자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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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와인인 프로세코와 아마로네로 알려진 베네토 주는, 홈그라운드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해 참여업체 수나 전시공간 면적에 있어 단연 돋보였다. 최근 2년 사이에 무려 5개의 DOCG 와인을 탄생시킴으로써 이탈리아 DOCG 와인의 산실로 등장한 베네토 주는,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드라이 스파클링 와인의 인기를 감안하여 다양한 형태로 '프로세코 마리아주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또한 프로세코 베이스의 칵테일을 선보여 주목 받는 곳도 있었다.
 
한편, 투명하고 영롱한 크리스탈이 박힌 주머니에 와인을 담아 전시하여 뭇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와이너리도 있었고, 발폴리첼라 와인을 생산하는 메네골리(Menegolli) 와이너리는 사업확장을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 크기와 용량 면에서 세계 최대인 보테(이탈리아에서 사용하는 전통적인 나무 발효통)를 전시하기도 했다. 이 보테는 무려 425 헥터리터의 와인을 담을 수 있는 용량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고 4월 7일 비니탈리 개막식에 맞추어 공개되었다. 폐막 후 이 대형 보테는 와이너리로 옮겨진 후 발폴리첼라 와인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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