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보르도, 기적의 빈티지



올해도 어김없이 보르도 그랑 크뤼 연맹(UGCB)이 한국을 찾았다. 이번 방문은 역대 최대 규모이며, 총 103개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이 서울에서 열린 와인 시음회를 통해 공개되었다. 국내에 보르도 2008 빈티지가 첫 선을 보인 만큼 시음회는 와인전문가들과 애호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UGCB의 실비 꺄즈(Sylvie Cazes) 회장에 따르면 “포도가 성장하던 해의 기후나 현재 와인이 숙성하는 과정 등을 지켜볼 때 2008년은 보르도에 있어서 클래식한 빈티지”이며, 낮은 기온과 좋은 가을볕, 포도가 상대적으로 늦게 익었다는 점 때문에 좋은 풍미를 지닌 와인을 만든 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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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징조

2008년의 전반적인 기후 조건을 살펴보면, 2008년 1-2월은 기후, 강수량, 일조량 등이 평균보다 낮았고, 3월에는 비가 잦았으며 일조량이 충분하지 못했다. 4월의 냉해로 인해 소테른과 바르삭 지역이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몇몇 와인생산자들은 수확량의 50-60%를 잃을 위기를 감수해야 했다. 이후 구름과 비를 동반한 날씨는 꽃이 피는 시기를 불규칙하게 만들었고 곳곳에서 곰팡이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비록 7월 한 때 맑고 건조한 날씨가 찾아왔으나, 이미 와인생산자들 사이에서 희망보다는 근심이 지배적이었다. 다행히 수확을 앞둔 9월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고 일조량이 높았다(2008년 한 해는 여러 가지 면에서 2007년과 매우 흡사하다).

포도가 익는 시기가 고르지 않아 2008년의 수확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는데, 10월 말에서야 카베르네 소비뇽 수확을 끝낸 곳도 있었다. 보통 때라면 한창 수확이 이루어질 9월 말, 와인생산자들은 여름에 내린 비로 부풀어 오르고 곰팡이에 노출된 포도를 가지고 제대로 된 와인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수확할 때가 다가오면서 와인생산자들이 맛본 포도는 사과산(malic acid)이 너무 강해서 포도라기보다는 마치 구운 사과 같은 맛이 났다. 발효를 거치는 중에도 사과산이 여전히 강해, 사과산이 젖산으로 바뀌는 2차 발효가 과연 일어날 것인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였다(Jancis Robinson, 2009.4.18).


7월의 기적

하지만 2008 보르도 빈티지를 시음하기 위해 이듬해 봄 ‘엉 프리뫼(en Primeur)’에 참가한 와인평론가들과 와인상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2008년의 기후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와인의 풍미가 전반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다.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2008 빈티지에 90점 대의 높은 점수를 주며 ‘2005 빈티지에 견줄 만큼 뛰어난 해’라고 평가하였다. 다른 매체들 역시 ‘기후 조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08 빈티지의 와인들은 모든 우려를잊게 할만큼 훌륭하다’고 평가하였다.

"짙은 색상, 잘 익은 포도, 순수한 과일 풍미, 신선함, 약간 높은 산도, 농축미, 그리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타닌 등, 2008 빈티지는 예상을 뛰어넘는 품질을 보여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Robert Parker, 2009.4).”

“조생종인 메를로 품종을 많이 섞는 포므롤의 와인생산자들에게, 포도의 성장 기간이 유독 길었던 2008년 빈티지는 큰 걱정거리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2008 빈티지가 성공적이라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Jancis Robinson, 2009.4).”

이렇게 예상을 뛰어넘는 2008 빈티지 와인의품질은, 포도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시기인 6월부터 수확 이전까지의 기후가 다행히 훌륭한 성장 조건을 마련해 주었고(특히 7월의 건조한 날씨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함), 포도수확량이 매우 적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1991년 이래 가장 낮은 수확량을 기록). 와인양조자들은 포도를 최대한 엄선하여 섬세하게 다루었고, 침용 기간을 단축시켜 추출을 최대한 자제하였다. 또한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오랜 성장 기간을 거친 포도들은 신선하고 섬세한 풍미를 간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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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속에서 뛰어난 와인을 탄생시킨 2008 보르도 빈티지의 기적은, 한편으로는 보르도 와인 가격을 주도하던 톱 와인생산자들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최근 몇 년간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 생산자들은 그들의 와인 가격을 파격적으로 높여 왔으며, 와인 상인과 와인 평론가들은 지나친 가격 상승에 대해 꾸준히 우려와 경고를 표명해 오던 터였다. 최고 50%까지도 가격 하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렇게 거센 가격 하락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와인생산자들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는데, 2008 빈티지의 와인 가격을 내릴 경우 높은 가격에 2006, 2007 빈티지 와인을 구입한 사람들의 불만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2008 빈티지에 대해 앙젤뤼스(Angelus)와 라뚜르(Latour)를 필두로 보르도의 와인생산자들은 결국 그들 와인의 가격을 낮추어 발표하였다.

하지만 지난 해 4월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이들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의 가격은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고, 로버트 파커는 “2008 빈티지는 과소평가 되어있고 적절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2008 빈티지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2000년대 빈티지 중 2005와 2009만큼 뛰어난 빈티지가 바로 2008년”이라고 밝혔다(Robert Parker, 2010.4).


▷ 보르도 2007 빈티지 기사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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