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탈리아 와인 마니아가 된 이유


글 정휘웅(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누군가 필자에게 어떤 와인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탈리아 와인”이라고 대답한다. 이탈리아 와인을 좋아하는 101가지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약간 무리지만, 몇 가지 중요한 이유를 들어서 설명해 볼까 한다.


두 종류의 이탈리안, 와인 메이커 혹은와인 메이커를 아는 사람

이탈리아는 온 나라가 포도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talian wine for dummies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와인 메이커이고, 다른 하나는 와인 메이커를 아는 사람이다.” 그만큼 이탈리아에는 와인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 이탈리아에서 와인은 술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이며, 매일 마시는 물과도 같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다른 지역에서 생산하는 와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아주 큰 와인 샵에나 가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수많은 명주들은 이탈리아에 가면 찾기가 어렵다. 그만큼 이탈리아 내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다양하고, 그 토착 와인들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굳이 외부의 와인을 맛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격 역시 매우 저렴하다. 대체로 생산된 지 얼마 안된 와인이 많은데, 이는 이탈리아 와인들이 대부분 빠른 시간 내에 소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와인들은 신선함이 중요한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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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토착품종

네렐로 마스카레세(Nerello Mascarese)나 레포스코(Refosco)라는 품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산죠베제(Sangiovese)와 프루나이올로 젠틸레(Prunaiollo Gentile), 모렐리노(Morellino), 브루넬로(Brunello)가 모두 같은 품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나는 키안티를 만들고, 하나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를, 또 하나는 최근에 DOCG 등급을 받은 모렐리노 디 스칸사노를, 마지막은 그 유명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만든다. 같은 토착 품종으로 만들어지지만 이름이 각기 다른 이 와인들을 통해, 우리는 그만큼 이탈리아의 토착 품종도 많지만 와인생산자들의 떼루아에 대한 자부심 역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가까운 지역이라 할지라도 생산하는 와인의 개성이 매우 다른데, [토착품종 개수 X 떼루아의 개수]를 해보면 맛보아야 할 와인의 수는 엄청나게 많아진다. 이러한 다양한 이탈리아의 토착 품종 중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몇몇 품종들(피노 그리지오, 산죠베제, 바르베라 등)은 이미 해외로 진출하여 미국이나 남아공 등지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피노 그리지오는 미국 나파 지역에서, 바르베라는 미국 워싱턴주 등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그리고 이 품종들은, 정착한 새로운 땅에서 그 땅의 성질을 잘 반영하는 색다른 풍미를 선사하고 있다. 이처럼 이탈리아의 각 지역별로 다양한 토착 품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고향의 땅 같은 평안함과 함께 개성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탈리아의 악동들

이탈리아 와인은 복잡한 규정으로도 유명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규정이 싫어서 제멋대로 와인을 만드는 와인생산자들도 부지기수다. IGT(Indicazione Geografica Tipica)로 명명되는 이 규정은 이탈리아 와인의 개성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다. 사실 1969년 산 펠리체 비고렐로(San Felice Vigorelo)라는 와인이 그 토대이며, 티냐넬로(Tignanello)와 사시까이아(Sassicaia) 등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와인들이 모두 다 IGT 등급을 가지고 있거나 이로부터 출발하였다 (교과서에는 사시까이아는 품질의 우수성 때문에 DOC가 되었다는 친절한 설명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이미 10여 년도 더 된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버렸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디에볼레(Dievole)라는 토스카나의 포도원은 아예 Vino da Tavola 등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매우 독특한 와인을 만들었다. 바로 플레늄(Plenum)이라는 와인인데 이 와인은 포르투갈 포도와 50:50으로 혼합하여 생산된다. 이 와인에는 콰르투스(Quartus)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자국 내에서 재배된 포도’라는 규정도 지키지 못했으니 아예 등급이 없는 셈이다.
IGT라는 규정조차 지키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포도를 혼합하는 이 악동 같은 도전 정신을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독특하게 네비올로 품종과 카베르네 소비뇽을 혼합하는 마르께시 디 그레시의 비르투스(Marchesi de Gresy Virtus)와 같은 와인들도 역시 선망의 대상이다. 미국이나 남아공에서도 이처럼 독특한 블렌딩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탈리아만큼 떼루아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도전성 넘치는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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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와인의 진수는 바로 `다양성`

얼마 전 한 와인애호가로부터 강한 성토를 받은 적이 있다. 필자가 리스트를 담당하고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일무이한, 아주 독특한 와인인데, 바로 마테오 꼬레지아의 브라케토 안토스(Matteo Correggia Brachetto Vino da Tavola Anthos) 와인이었다. 국내에 120병 가량만 수입된 독특한 와인으로써, 이례적으로 포도 품종이 브라케토(원래는 브라케토 다뀌를 만드는데 색상은 짙은 붉은 색이며, 낮은 알코올과 모스카토에 비해 훨씬 중후한 단 맛이 있는 품종이다)임에도 불구하고 13.5도라는 높은 알코올을 자랑하고 있다. 맛은 더욱 독특해서 매우 달콤하고 장미향과 함께, 입 안에서는 아주 날카롭고 강렬한 산미가 전달된다. 마치 어린 시절 불량식품 쭈쭈바를 먹는 느낌이 드는데, 한 고객이 이 와인을 마시고 나서 자신의 20년 와인 생활에서 이토록 균형이 무너진 와인은 처음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의 의견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가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의 독특함과 넘치는 개성을 보여주며, 강하게 어필하는 그 독특함은 전 세계 어느 와인에서도 느낄 수 없는 두드러진 개성이라는 점을 이해시켜 주고 싶다. 같은 품종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자고 나란 땅에 따라서 전혀 다른 맛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 와인이며, 이러한 독특함은 이탈리아 와인의 미덕이기도 하다. 필자는 종종 이탈리아 와인을 빗대어 ‘야채바구니’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그만큼 이탈리아 와인은 그 스펙트럼이 아주 넓고 깊어서 언제나 그 개성을 맛보는데 열정적일 수 밖에 없다.


와인애호가들의 선택,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이탈리아는 와인 생산량의 약 절반 가량이 화이트 와인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중부만 하더라도 베르나챠(Vernaccia), 베르멘티노(Vermentino), 베르디치오(Verdiccio), 트레비아노(Trebbiano, 우니 블랑이라고도 한다), 피아노(Fiano), 그레꼬(Greco), 그레체토(Grechetto) 등 모두 열거하기에 숨이 찰 정도로 엄청난 수의 품종들이 있다. 남부 시실리아도 마찬가지로, 그릴로(Grillo), 안조니카(Ansonica), 북부는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피노 비앙코(Pinot Bianco), 프리울라노(Tocai Friulano), 리볼라 잘라(Ribolla Gialla), 가르가네가(Garganega), 코르테세(Cortese), 아르니스(Arneis) 등 많은 수의 다양한 품종들이 있다.

이쯤에서 와인애호가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 수많은 품종들로 만들어진 와인들을 다 마셔볼 것이냐, 아니면 과감하게 포기할 것이냐. 필자는 전자를 선택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각 지역별로 하나씩만 맛을 본다 하더라도, 하루에 하나씩만 맛을 본다 하더라도, 이탈리아 전역의 화이트 와인을 제대로 맛보려면 족히 몇 달은 걸릴 것이다. 와인에 대해 갈증을 느끼거나 와인이 지루해질 것 같은 애호가라면 당연히 이탈리아의 이 섬세하고도 아주 빳빳하면서도 독특한 화이트 와인들을 반드시 맛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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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탈리아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혁신성, 개성 그리고 끊임없이 파고들어도 계속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수많은 포도원에 있다. 그리고 해마다 계속해서 소개되는 새로운 품종과 와인의 향연은 평생 즐기고도 남을 정도로 엄청난 지식의 샘을 보여준다. 진정한 와인 애호가라면 국가별 명주만 찾을 것이 아니라, 이 두려운, 어렵지만 매력이 넘치는 이탈리아 와인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사실 필자가 가장 맛있다고 평가하는 와인은 대부분 나파 지역의 와인이며, 장기숙성형 와인을 꼽자면 보르도 와인이고, 가장 많이 시음한 회수로 치면 피노 누아가 1등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이탈리아 와인 마니아”라고 자칭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미 앞서 밝힌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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