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듯한 마른 나뭇가지에 연두빛 새싹이 돋는 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지만, 춘곤증과 함께 부쩍 입맛이 떨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 계절에 아주 먹기 좋은 린고 뒤 배리 (Lingot du Berry)는 주로 봄부터 가을까지 즐겨먹는 염소 치즈이다.
프랑스에서 염소 치즈의 AOC는 총 8개 정도이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크로땡 드 사비뇰 (Crottin de Chavignol)은 다음 기회에 알아보기로 하고 AOC는 아니지만, 그 특유의 신선함과 부드러움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Centre의 린고 뒤 배리 (Lingot du Berry) 에 대해 알아보자.
소젖으로 만든 치즈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염소 치즈는 좀 생소하고 낯설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린고 뒤 배리는 염소치즈 특유의 향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치즈로, 루아르와 부르고뉴 사이에 위치한 Centre지방에서 소규모로 만들어진다.
린고 뒤 배리는 눈처럼 하얀 표면에 숯가루를 곱게 입혀 자연스럽게 곰팡이를 내기도 하고, 그냥 숯가루를 뿌리지 않고도 먹는다. 조심스럽게 잘라 보면 부드럽기 그지 없고 깨끗한 속을 볼 수 있으며 입 안에서 스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럽고 연약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프레시 치즈처럼 가벼운 맛과 구조감을 느낄 수 있지만, 혀를 톡 쏠 정도로 신맛이 강해 봄철 떨어진 입 맛을 돋궈준다. 게다가 염소 치즈가 가진 아로마가 세지 않고 촘촘하게 잘 조화를 이뤄 초보자들도 먹기 좋은 편이다. 보통 2주 정도 숙성 시킨 후에 먹는다.
와인과의 조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과의 매칭이 기본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린고 뒤 배리는 루아르 지방 와인이 잘 어울린다.
파스칼 졸리베(Pascal Jolivet)는 루아르 밸리에서 젊고 의욕적인 와이너리 중 하나로 꼽히고 상세르(Sancerre)와 쀠이 휘메(Pouilly Fume)에 70 에이커의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
린고 뒤 배리 치즈는 상세르(Sancerre)와 쀠이 휘메(Pouilly Fumé) 지역 와인들과 잘 어울리는데, 이번엔 Pascal Jolivet, Pouilly Fumé Blanc 2000을 골랐다.
푸르스름한 레이블의 색깔부터 치즈의 깨끗한 속 표면과 잘 어울려 보인다. 산도가 살아있고 드라이한 맛이 치즈의 신 맛과 어울려 입 안에서 상쾌하게 느껴진다. 또한 얄미울 정도로 입 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식전, 식후 모두 먹기에 적당하다.
화이트 와인을 골랐다면, 레드 와인도 골라보자. 근접해 있는 부르고뉴의 레드 와인, Château du Puligny Montrachet, Bourgogne Pinot Noir 2001를 추천한다.
맑은 가넷 빛깔을 가진 이 와인의 가벼운 느낌부터 조화를 이룬다. 라일락 같은 봄 꽃의 향기가 풍부하고 기분 좋게 향긋한 과일 맛과 치즈의 산뜻하게 신 맛과 잘 어울린다. 어린 듯한 느낌의 탄닌은 거칠지 않게 염소 치즈의 아로마를 살짝 감싸주어 깨끗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