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엘리스 Neil Ellis 대표,한스 슈뢰더와 나눈 솔직한 대화


남아공이 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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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뜨거운 태양에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너도 나도 시원하게 칠링이 된 스파클링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있을 때, 한 지인과의 자리에서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게) 남아공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소개받았다. 압구정의 한 한식당에서 묵사발, 파전 등을 시키더니 한식과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며 그가 꺼내어 놓은 와인은, 남아공의 스텔렌보쉬 지역에서 생산되는 닐 엘리스(Neil Ellis) 카베르네 소비뇽 2005였다. 그 날 와인의 컨디션이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한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이었던 것인지, 그 경험 이후로 닐 엘리스는 맛이 좋고 한식과 잘 어울리는 남아공 와인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좋은 인연은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되는 걸까. ()나라식품의 관계자가, 닐 엘리스의 대표인 한스 슈뢰더(Hans Schroder)가 한국을 방문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고 만남을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국내에서 남아공 와인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이 자리를 통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고 남아공 와인에 대한 색다른 면을 보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11 1, 논현동에 위치한 와인북카페에서 슈뢰더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첫눈에 봐도 60세가 훌쩍 넘었을 듯한 그는, 오랜 경험과 세월에서 쌓인 연륜을 보여주듯 여유롭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솔직하고 균형 잡혀있었다. 사실 기자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채 남아공의 다른 와이너리(K라 하자)에서 생산된 2005 빈티지의 피노타쥬 와인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까지는 아니더라도, 닐 엘리스와 K 와이너리의 두 피노타쥬 와인을 함께 마셔봄으로써 남아공 피노타쥬 와인에 대한 이모저모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수입사 관계자 같으면 자기 브랜드도 아닌 와인을 상의없이 가져온 것에 대해 무례했다 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슈뢰더는 이러한 근심이 싹 가실 만큼 재미를 아는 사람이었다).


Neil Ellis Vineyard Selection Pinotage.jpg유명한 와인교육가인 캐런 매닐(Karen Macneil)은 그녀의 저서 [The Wine Bible]에서 피노타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소(Cinsault)라는 품종은 남아공에서는 종종 에르미타주(Hermtiage)라 하는데, (Rhone)과의 연관성을 넌지시 빗댄 표현이다. 1925년 생소는 남아공의 한 연구소에서 피노 누아와 유전학적으로 교배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피노타주는 세계적으로 거의 남아공에서만 생산되는 레드 와인의 원료가 된다. 현재의 인기와 컬트 와인으로서의 지위를 감안하면, 피노타주는 남아공의 진판델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슈뢰더에 말을 빌리면, 피노타쥬 와인은 한 때 남아공 와인생산자들이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cash cow(수익 창출원)처럼 다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수확량을 조절하지 않고 와인을 대량생산하여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고만 했다. 자연히 질 좋은 피노타쥬 와인은 찾기 힘들었고, 와인평론가들 사이에서 남아공 피노타쥬는 특유의 탄 고무 냄새(burnt rubber)”가 난다고 평가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와인생산자들 사이에서 품질 향상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닐 엘리스를 비롯한 프리미엄 와인생산자들은, 수확량을 줄이고 포도의 품질을 높여서 좋은 와인을 생산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2007 닐 엘리스 피노타쥬와 2005 K 피노타쥬는, 이러한 생산자들의 노력을 입증해 보이기라도 하듯 특유하다던 그 냄새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닐 엘리스 피노타쥬는 24개월간의 프랑스산 오크 숙성에서 오는 부드러운 타닌과 살짝 느껴지는 감칠맛, 은은한 커피향 등 멋진 부케를 선사했고 밸런스가 매우 뛰어났다(슈뢰더는 이 와인이 세계적인 품평회에서도 인정받은 훌륭한 피노타쥬라고 설명했다). 반면 K 피노타쥬의 경우 좀더 둥글어지고(rounder) 균형이 잡힐 필요가 있지만 약간 더 오래 오픈시켜두거나 숙성을 시킨다면 더 좋은 풍미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Untitled-1 copy.jpg남아공의 소비뇽 블랑은 전 세계 다른 지역의 소비뇽 블랑만큼 스모키하고 부싯돌 같으며 강한 허브 향과 구스베리 향을 발산하는데, 남아공 최고의 소비뇽 블랑은 풍미를 보존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발효된다(캐런 맥닐, 더 와인 바이블). 슈뢰더는 닐 엘리스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50%가 소비뇽 블랑으로 만들어지는데, 꼭 음식과 맞추지 않더라도 와인 자체가 주는 풍미가 좋으며 계절이나 용도와는 상관없이 언제든 즐길 수 있다고 말하며 특별한 애착을 보여주었다. 특히 굴이 제철인 요즘, 닐 엘리스 소비뇽 블랑과 굴을 함께 먹어본다면 독자들 역시 그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와인사업은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기 보다,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passion business라고 말하는 슈뢰더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와인 사업을 해 나가면서, 그는 로버트 몬다비와 안티노리 후작 등 내로라는 와인의 대가들과 왕래를 하게 되었고 이들을 만나면서 와인은 상품이 아니라 문화이며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셀러를 활짝 열어 보이며 지금까지 어떻게 와인을 만들어 왔는지에 대해 그토록 자랑스럽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알려주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렇듯 문화이자 역사의 산물이라 믿는 와인이, 지금은 거대 와인기업들이 이루어놓은 산업 속에서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가공품처럼 취급되는 것에 대해 그는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와인기업들은 공장에서 코카콜라라도 만드는 양 와인을 생산하고 있고, 좋은 명성을 지닌 와이너리들이 이런 기업에 흡수되고 나면 와인의 품질마저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이런 사실을 이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고 있는 한국 와인시장에서 역시, 좋은 품질의 와인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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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엘리스 와이너리의 탄생은 한스 슈뢰더와 닐 엘리스(와인메이커)의 의기투합으로 이루어졌다. 닐 엘리스는 일찍이 국영 와인기업 KWV와 남아공의 다른 정상급 와이너리에서 경험을 쌓다가 1986년 남아공 최초로 와인중개업을 시작한 독특한 인물이며, 남아공 품질 혁명을 20여 년째 진두지휘 해 온 최고로 숙련된 와인메이커로 평가받는다. 당시만 해도 남아공 와인의 대부분은 대규모 협동조합(KWV 같은)에서 만들어지고 있었고, 품질 좋은 포도를 구입하여 와인을 생산한다는 개념이 자리잡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닐 엘리스는 품질 좋은 포도를 엄선하여 포도재배자들로부터 구입하였고, 양조장을 빌려 자신의 이름을 건 고급 와인을 만들어 파는 중개업을 시작했고, 곧 그의 와인들은 탁월한 품질로 남아공 와인업계에 크고도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중, 1993년에 케이프 타운(Cape Town) 내 스텔렌보쉬(Stellenbosch)의 존커셕 밸리(Jonkersheok Valley)에 포도밭과 양조장을 소유한 정열가 슈뢰더를 만나 닐 엘리스 와이너리를 출범시키게 되었다.


다른 남아공 와이너리들이 한 군데의 포도밭에서 여러 품종들을 한꺼번에 재배하거나, 포도재배자들이 협동조합을 이뤄 다양한 와인을 제조 판매하는 것과 달리, 와인메이커 닐 엘리스는 각 포도 품종의 특징을 가장 훌륭히 살릴 수 있는 미세기후(Micro-climate) 지역을 3개로 엄선해 포도를 조달하며, 이 과정에서 그가 중개업을 하면서 키워온 최고 입지와 최고 포도를 가려내는 능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과거 남아공의 백인분리정책에 따른 서방 선진국들의 경제 제재로 인해, 남아공은 불과 10년 남짓한 와인 수출역사를 지니고 있다. 닐 엘리스는 짧은 역사를 지닌 남아공 와인이 세계에 알려질 수 있도록 견인하는 남아공 와인계의 스타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국내수입처: (주)나라식품 02 405 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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