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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는 목적이 취하기 위해서라면, 와인을 마시는 필자는 비합리적인 소비자다. 가격으로만 따지면 와인의 ml 당 가격이 소주나 맥주보다 몇 배, 몇 십 배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와인에서 알코올 이상의 그 무언가를 느끼고 가치를 발견한다. 그것은 과일향과 미네랄리티 혹은 오크 숙성으로 발현된 다양한 풍미일 수도 있고, 2등급 와인이었다가 오너의 혁신적인 노력으로 1등급으로 승격됐다는 등의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일 수도 있다. 
 
물론 퇴근 후 직장 동료와 마시는 소주 한 잔에 웃고픈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털어 내기도 하고 마트에서 사온 캔맥주를 마시며 알콩달콩 아내와 즐거운 주말을 보내기도 하지만. 수많은 삶의 단편을 담아 내기에 와인만큼 더 좋은 술이 있을까.
 
와인은 품종마다 특색이 다르고 생산자마다 사연이 있다. 수천년 동안 인류와 함께해 온 와인의 산지와 빈티지 역시 수없이 많은 이야기거리를 갖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마케팅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와인을 마시는 누군가의 삶과 어우러지면 개인의 추억으로 바뀐다. 이 때문에 와인은 단순히 알코올의 취기를 얻는 술 이상이며 그만큼의 가치를 부여 받는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는 발표되는 순간 시인의 손을 떠나 시를 음미하는 독자의 것“이라고. 시인이 의도한 의미와 감성이 시에 녹아 있지만, 단순히 시를 읽는 행위를 넘어 시의 의미를 자신의 시각으로 받아들일 때 그 시는 독자의 삶에서 독자만의 것이 된다는 뜻일 거다. 와인도 생산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생산자의 것이 아니라 그 와인을 마시는 소비자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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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또 라퐁로쉐 (Chateau Lafon Rochet) 1999년 빈티지는 필자에게 첫사랑 같은 와인이다. 2004년 5월 어느 저녁 이 와인을 처음 맛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바디감과 부드러운 질감에 실린 인상적인 아로마. 이 때의 경험으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점점 와인을 좋아하는 애호가가 되었다. 이후 샤또 라퐁로쉐를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고, 당시의 느낌과 상황은 개인적인 추억으로 남았다. 2008년에는 프랑스로 도보여행을 떠나 샤또 라퐁로쉐를 찾아가기까지 했다. 
 
“사랑하게 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의 보임은 전과 같지 않더라”는 유홍준 선생님의 글귀처럼,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필자가 느끼는 샤또 라퐁로쉐는 2004년의 그것과 똑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와인을 만날 때면 이 와인에 관한 기억과 함께 했던 사람들, 그리고 샤또 앞마당과 포도밭을 서성이던 그 추억들이 항상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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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들이 샤또 라퐁로쉐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아이수마를 보면 여의도에서의 불꽃놀이가, 슈발 블랑은 한강에서의 흥겨웠던 번개 모임이, 도멘 드 슈발리에는 성우 리조트에서의 즐거웠던 결혼기념일이, 까스틸로 이가이는 베레종에서의 시음회가 떠오른다. 미네랄리티가 느껴지는 와인을 만나면 마샤렐리 시음회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와인에서 철분 향이 느껴지면 엠 샤뿌띠에 시음회가 생각난다. 모든 와인은 아니지만 많은 와인에 나만의 사연이 담겨 있고, 자연스레 그에 얽힌 추억을 상기시키고 함께 했던 이웃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와인으로부터 받은 느낌과 생각, 때론 감정까지도..
 
지금도 필자의 셀러에는 몇 병의 샤또 라퐁로쉐가 잠들어 있다. 앞으로 이 와인은 가족이나 이웃들과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줄 것이고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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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_ 이상철
 
 
경영학과 마케팅을 전공하고 통신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보르도 와인을 통해 와인의 매력을 느껴 와인을 공부하며 와인 애호가가 되었다. 
 
중앙대 와인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하고 WSET Advance Certificate LV 3 를 취득하였으며 와인 애호가로서 국내 소믈리에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04년 부터 현재까지 쵸리(chory)라는 필명으로 와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개인 시음기와 와인 정보 및 분석적이 포스팅을 공유하며 생활 속의 와인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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