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모젤 와인 전도사,
GWS 황만수 대표
<손진호의 와인피플>, 그 세 번째 주인공은 GWS 독일와인셀렉션의 황만수 대표이다. 황 대표 와는 지난 가을에 열린 대전와인엑스포 현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두터운 뿔테 안경 뒤의 날카로운 눈매가 그가 취급하는 감미로운 이미지의 독일 와인과 역동적인 조화를 이루며 인상 깊게 다가왔다. 또한 GWS 부스에 등장한 여러 가지 독일 와인을 함께 시음하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특별한 이력과 모젤(독일의 유명 와인 산지) 와인에 대한 열정을 읽게 되었고, 곧 필자는 인터뷰를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필자의 이력과 비슷한 경력을 가진 그에게 자연스럽게 끌렸던 것 같다.
인터뷰 장소는 와인 애호가들의 명소인 와인북카페(논현동 소재).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자리는 들어서자 마자 왼편에 보이는 정사각형 테이블인데, 네댓 명이 앉아 와인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넓고 왠지 정감이 있다. 독일 모젤의 가을을 연상시키듯 살짝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 드는 이 테라스 쪽 자리는 우리의 인터뷰를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황만수 대표는 두 종의 와인을 가져왔는데, 역시나 모젤의 아름다운 향을 담은 화이트 와인이었다. 얼음물 속에 빛나는 차가운 보석, 모젤 와인을 사이에 두고 우리의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황만수 대표(오른쪽)와 필자.
■ 독일 유학 중 접하게 된 와인
한양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황 대표는 청운의 꿈을 안고 1992년 9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그가 입학 허가를 받은 곳이 바로 와인을 생산하는 모젤 지역의 중심 도시 트리어(Trier) 였다. 독일 유학을 가기 전까지는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던 그에게, 트리어라는 도시는 그를 와인과 연결시켜 준 최초의 고리가 되었던 셈이다. 필자도 방문한 적이 있는 이 도시는 고대 로마 제국의 북방 경계선이며, 황제의 여름 별장이 있던 곳으로 로마 제국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여러 유적들이 있는 동시에, 독일 최고 와인 산지인 모젤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따라서 이곳에 둥지를 튼 황 대표가 포도밭으로 덮인 모젤 강 유역에 친숙해지면서 와인과도 익숙해진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공인 독문학을 공부하면서 트리어 대학에서 한국학 관련 강의를 통해 한국 문화를 소개하던 청년 황만수는, 현지에서 사귄 지인들과 어울리면서 독일 와인과 음식 문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틈틈이 주변 포도밭을 둘러보며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방문했던 한 와이너리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골드트룁헨(Goldtropfchen)이라는 이름의 포도밭이 있는 피스포트(Piesport) 마을의 Reucher-Haart(로이셔-하트) 와이너리가 바로 그곳인데, 하트(Haart) 가문의 후손인 한 노장이 자기가 만든 10종 이상의 와인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던 모습을 그는 잊을 수 없다. 물론 당시에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 많은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로이셔-하트 와이너리 방문은 그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와이너리를 방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렇게 와이너리에 들려 와인을 시음하며 와인생산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그는 점점 와인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 와인과의 진지한 만남이 시작되다
시나브로 와인의 매력에 빠지게 된 황 대표는 와인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2000년대 초반 즈음 와인 산업에서 경력을 쌓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와인을 마시면서 좋아하게 되고 와인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 세계에 푹 빠져든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표정에는 그 때의 흥분이 생생하게 묻어났다. 한편, 시장 조사를 통해 모젤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이 한국시장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모젤 와인을 한국에 소개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사업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 때는 한국의 와인 유통 구조가 그리 간단하지 않고, 따라서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잘 몰랐을 것이다.
와인 산업에 발을 들여놓기로 결심한 그는 곧바로 ‘독일 국가 공인 와인 컨설턴트’ 자격 시험에 도전했다. 독일에는 와인 관련 국가 공인 시험이 두 가지가 있는데, 무역 쪽으로 경력을 쌓으려면 컨설턴트 과정을, 요식업계로 진출하려면 소믈리에 과정을 선택한다. 독일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이 과정은 매우 길고 어렵기로 유명하다. 먼저 독일 와인 & 소믈리에 스쿨에서 2년 정도 이론을 배운 후 2년 정도 실습을 거쳐야 하는데(이론과 경험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는 독일식 교육 방식에 따라) 황 대표 역시 와이너리 두 곳에서 실습했다. 이렇게 전제 조건을 만족시키고 나면 필기시험, 실기시험, 구두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데, 2005년에 이 과정을 시작한 그는 2009년에 마침내 명예로운 국가 공인 와인 컨설턴트의 자격을 획득하였다.
현재 황 대표는 독일 국가 공인 와인 컨설턴트 자격을 지닌 유일한 한국인이다. 참고로, 이곳의 와인스쿨이 제공하는 2주짜리 와인 컨설턴트 양성 과정도 있는데, 이는 일반인을 위한 단기 과정으로 국가 공인 컨설턴트 양성 과정과는 다르다.
■ GWS를 설립한 황만수 대표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2011년 12월 GWS 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무역 사업을 시작한다. German Wine Selection 이라는 회사의 이름에는 품질을 중심으로 엄선한 독일 와인을 한국 시장에 공급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사실, 회사 설립 전부터 직접 고른 와인을 독일에 사는 한국인들과 시음하곤 했는데, 매번 반응이 좋았고 “좋은 와인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여러 차례 들으며 그는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나갔다. 이런 계기들을 통해 와인을 소개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 그는, 보다 체계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더 많은 애호가들에게 와인을 알리기 위해 GWS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황 대표가 운영하는 GWS는 에이전트 회사로서 한국의 수입사들과 함께 일한다. 그의 역할은 단순히 와인을 소개하고 수입하는 과정을 돕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입사에 꾸준히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을 실시하며 함께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그가'대전국제 와인앤푸드 페스티벌’에 참여한 것 역시 이러한 활동 중 하나였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황 대표는 GWS를 기반으로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모젤의 리슬링 와인을 알리는데 기여해 왔다. 그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내 개인이나 회사의 실적을 우선시하기 보다는 독일 와인이 한국에서 시장을 개척하는데 필요한 기반을 닦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러한 노력이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 있다”고 말한다.
현재 GWS를 통해 와인을 수입하는 곳은 수입사 나루 글로벌, 샤프 트레이딩, 더 와인, 테루아와인아울렛 등이 있으며, 이들 수입사를 통해 요한 요젭 프륌 Joh. Jos. Prum, 반 폭셈 Van Volxem, 찔리켄 Zilliken, 하트 Haart, 칼 에어베스 Karl Erbes, 슈트더트-프륌 Studert-Prum, 닥터 헤르만 Dr. Hermann, 자르 모젤 빈쩌젝트 SMW(Saar-Mosel-Winzersekt), 프란첸 Franzen, 닥터 바인스-프륌 Dr. Weins-Prum, 페어아이니크테 호스피치엔 Vereinigte Hospitien 등이 수입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모젤 지역의 와인이지만, 프랑켄 지역의 루돌프 퓌어스트 Rudolf Furst와 라인헤센 지역의 구츨러 Gutzler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피노 누아 와인을 올해 처음으로 국내에 선보여 그 귀추가 주목된다.
■ 현장을 누비는 품질 우선주의자 황만수 대표
황만수 대표는 와인 산업 내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시인의 꿈'이라는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SMW의 아돌프 슈미트 Adolf Schmitt 회장을 꼽는다. 72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열정을 쏟는 그의 모습은 황 대표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30여 년이란 시간 동안 모젤와인협회 회장직을 맡아오면서 모젤 와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온 점, 오랜 기간 일관되게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고 그것을 이루어온 점 등은 황 대표에게 비전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황 대표는 와인 공급자를 선정할 때 반드시 와이너리를 방문해서 양조장을 둘러보고 생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철학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는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생각은 와인에서도 그대로 보여진다고 믿으며, 와인의 품질을 확신하고 생산자의 철학을 공감하는 경우에만 국내 시장에 소개한다. 그는 점차 모젤 외 지역의 와인과 피노 누아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으로 포트폴리오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또한 독일 와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책을 쓰고 직접 미디어를 운영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지난 3년에 걸친 진지하고 열정적인 GWS 활동 결과, 황 대표는 독일 와인 보급에 대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14년 3월 독일 Pro Riesling 협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와인이 훌륭한 매개체가 되는 것을 알았다”고 설명하며 “소통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어렵거나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생기더라”고 말하며 마지막 리슬링을 들었다.
< 황만수 대표와 함께 한 와인 >
Van Volxem, Scharzhofberger Riesling, 2011
반 폭셈, 샤츠호프베르거 리슬링
이토록 투명하고 맑은 색과 그 색만큼이나 깔끔한 풍미를 지닌 리슬링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 본다. 라임과 진토닉, 파인애플과 아스파라거스가 어우러지는 생생한 풍미에 터치를 더하는 탱자 향이 이 와인의 고유한 개성을 드러낸다. 미네랄과 산도가 워낙 높아 마치 토란국을 먹을 때처럼 입안이 아려오는데, 20년 이상 숙성 가능할 만한 짱짱한 힘이 부럽다. 남은 와인을 다음 날 시음해 보니 첫 날에 보여주었던 엄격함에 부드러운 미소가 추가되었다.
Joh. Jos. Prum, Wehlener Sonnenuhr Riesling Auslese 2004
요한 요젭 프륌, 벨레너 존넨우어 리슬링 아우스레제
앞서 마신 샤츠호프베르거 리슬링이 차가운 얼음호수의 이미지라면, 벨레너 존넨누어 리슬링은 온화하고 인자하며 푸근함이 느껴진다. 밝은 황금색을 띠며, 산도와 탄산 덕분에 아우스레제의 당도마저 가뿐하게 느껴진다. 모과, 멜론, 오렌지 탠저린의 달콤한 열대과일 풍미가 돋보인다. 한 모금씩 입안에 머금을 때마다, 매끄러운 유질감과 마지막까지 강하게 이어지는 산미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면서 사라진다.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