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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Stephane SON (sonwine@daum.net)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1999년 귀국 이후 중앙대학교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 한국 와인 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 와인연구소>를 설립,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와인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뚝심의 갤로 맨,
 
E. & J. Gallo 조현준 이사

 
 
<손진호의 와인피플>, 그 두 번째 주인공은 세계 최대 와인 기업 중 하나인 갤로(Gallo) 社의 조현준 이사다. 2000년에 미국 갤로 본사 입사, 2003년에 한국 이사로 발령, 이후 지금까지 만 10년을 갤로 와인의 보급과 이미지 재고를 위해 헌신해 온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만하며, 유난히 이직과 복직이 많은 한국 와인 산업의 현실로 보더라도 15년 가까이 한 업체와 한 브랜드를 위해 헌신해 온 점은 와인 산업 종사자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필자는 조현준 이사를 만나기 위해, 이제는 거의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장악하다시피 한 이국적인 명동 거리를 지나 인터뷰 장소인 베르쟈뎅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곳은 깔끔한 양식 요리를 대단히 매력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레스토랑이다. 테이블에는 이미 갤로의 베어풋(Barefoot) 모스카토 와인이 병째 얼음물 속에 담겨 있었고,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생산되는 루이 마티니(Louis Martini)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의 크리미한 토스트 풍미와 감미로운 과일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와인을 제대로 준비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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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와인 기업 갤로에 입사하다
 
조현준 이사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무역 회사를 다니다가, 주변의 권유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칠 즈음 갤로의 인사담당자가 인재 채용을 위해 대학을 방문했는데, 이 학교 졸업생의 직무 수행 능력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다시 찾은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브랜드 관리와 전략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던 조 이사는 와인이라는 색다른 소비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갤로에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320 대 1이라는 높은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해 2000년 말부터 Gallo L.A. 에 배치되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와인을 접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갤로는, 로버트 몬다비와 더불어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산업의 거인으로 불리는 어네스트와 줄리오 갤로 형제가 창립하여 오늘날까지 가족 경영 체제로 운영되어 오고 있는 와인 기업이다. 1933년 산 호아킨 밸리의 모데스토 지역에서 갤로 와이너리를 창립할 당시 6천 달러의 자본금이 전부였으나, 지금은 미국 와인 시장의 25%를 차지하는 거대 기업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가족 경영 와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갤로는 와인 사업에 필요한 부속 회사들을 직접 소유하고 있는데, 트럭 운송과 철도 운송 회사, 레이블 제작사, 미시시피강 서쪽에서는 가장 크다는 유리병 제조 회사 등이 그 예이다.
 
현재 어네스트와 줄리오 갤로 형제의 뒤를 이어, 2세대인 조 갤로가 경영을 맡고 있으며 지나 갤로가 와인 양조를 총괄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3세대인 조 주니어 갤로와 스테파니 갤로가 합류했다. 조 이사는, 이렇게 큰 규모의 회사가 아직도 가족형 회사로 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가족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확실한 역할 분담을 꼽는다. 또한 각 지역 매니저들의 역량을 존중하는 것도 언급할 가치가 있는 갤로 경영 철학 중 하나라고 덧붙인다. 이는 계약재배 농가들과 동반 성장을 추구한다는 갤로의 양조 철학과도 일맥 상통한다.
 
사실 ‘갤로’ 하면 대량 생산되는 보급형 와인을 떠올리기 쉬운데, 조현준 이사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뒤지던 중, 갤로의 와인 브랜드가 무려 72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매우 놀랐다. 각 브랜드마다 최소 5종의 품종 와인을 만든다면 매년 350여 개의 서로 다른 와인이 만들어진다는 것인데, 이는 실로 엄청난 포트폴리오가 아닐 수 없으며 그만큼 다양한 브랜드를 다양한 유통과 소비 채널을 통해 판매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갤로의 다양한 와인들이 2~3만원 대라는 낮은 가격과 높은 품질 경쟁력을 가지고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으니, 소비자들은 맛있는 와인을 대량 생산하는 와인 기업 갤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 한국 시장의 성장과 갤로 브랜드
 
조 이사가 지역 선임 매니저로 발령받아 귀국한 것은 2003년 1월의 일로,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한국 시장에 그만한 적임자는 없었다. 현재 조 이사를 비롯한 한 명의 직원이 한국에서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말에 필자는 깜짝 놀랐는데, 미국에서 일할 당시에도 조 이사 혼자서 7백만 상자의 와인을 판매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일당백이다. 나아가 (세계 각지에 갤로 지사를 설립하기 보다는) 각 지역마다 협력 업체 또는 유통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일을 추진하는 갤로의 시장 관리 방식이 제대로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갤로는 세계 시장을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5개 지역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데, 조 이사는 홍콩에 있는 지역 총괄 매니저와 함께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8개국 시장의 직원교육 및 공급업체 관리 등을 맡고 있다. 한국의 주요 파트너로는 금양인터내셔날, 인터와인(홈플러스 와인 공급업체), 신세계 등의 수입사와 국적항공사 및 크루즈 외항사 등이 있다. 특히 금양인터내셔날과는 20여 년의 오랜 인연을 유지하고 있으며, 둥그런 병이 익숙한 카를로 로시(Carlo Rissi), 루이 마티니(Louis Martini), 베어풋(Barefoot), 프라이 브라더스(Frei Brothers) 등이 금양인터내셔날을 통해 유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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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와인 시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2007년까지가 황금기로 불린다. "매일 저녁 와인 파티가 열리곤 했습니다"라는 말로 그 시기의 분위기를 전하는 조 이사는, 당시 갤로 와인이 판매되는 92개 국가 중 한국 시장의 성장률이 세계 2위였다고 말한다. 한국의 와인 산업은 성장을 거듭했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으며 무엇이든 출시만 하면 팔려 나가는, 한 마디로 신바람 나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2008년 이후부터 지난 몇 년간 한국 와인 시장은 성장을 멈추었고, 최근에 들어서야 서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 이사는 이러한 시점이야 말로 매우 중대한 시기라고 말하며, 기획과 관리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만큼 일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졌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한편, 최근 갤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존의 중저가 와인 중심의 브랜드 이미지에서 벗어나 중고가 와인 시장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3년에는 매출의 18%가 3만원 대 이상의 와인에서 비롯되었으며, 2014년에는 그 비중이 28%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전을 기회로, 변화를 성장으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는 조 이사에게도 엄청난 위기를 몰고 왔다. 특히 환율 급락으로 시장이 급랭되었을 때, 그는 공급업체와 수입업체 모두의 상생을 위해 공급가격을 38%나 낮추는 과감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더불어 2000년대 초반 스위트 와인의 성공 가능성을 직감한 그는 갤로 본사에 콩코드 품종으로 카를로 로시 와인을 생산할 것을 제안했고, 이 제품은 큰 성공을 거두어 85%라는 독보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처럼 지난 15년간 모험과 도전으로 갤로 브랜드를 성장시켜 온 조현준 이사는, 본인에 대한 자기개발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도전을 즐긴다. 갤로에 입사한 이후 2004년 즈음 그는 와인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기 위해 필자가 가르치던 중앙대학교 와인마스터 과정을 이수했는데, 이로써 필자와 그의 인연은 올해로 만 10년이 되는 셈이다. 이후 조 이사는 2005년부터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에서 캘리포니아 와인 및 와인 마케팅에 대한 강의를 맡고 있으며,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외식 경영학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그는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도 겸하는 등 와인 산업 내에서 전천후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 와인 산업의 성장과 함께 했고, 스스로를 계속 성장시킴으로써 한국 와인 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선험적으로 대처해 온 조현준 이사, 그의 저돌적인 추진력이 한국에서 갤로 브랜드를 확립시켰듯이, 전반적인 한국 시장 성장의 견인차로서의 그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 조현준 이사와 함께 한 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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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efoot, Moscato, 2013
 
베어풋 모스카토 2013
 
이름 그대로 맨발을 찍어 놓은 발칙한 레이블이 기억에 남는 와인이다. 티파니 블루까지는 아니지만 밝은 옥색 레이블이 주는 싱그러움을 고스란히 전하며, 모스카토 특유의 달콤한 열대 과일과 멜론 향이 입안을 행복하게 해주는 화이트 스위트 와인이다. 특히 베르쟈뎅의 샐러드와 매우 뛰어난 어울림을 보여주었고, 참치 타다키와 싱싱한 채소 그리고 할라피뇽의 살짝 매콤한 이국적인 풍미를 훌륭히 소화해 냈다. 베어풋 모스카토는 미국 내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잔 단위로 판매되는 와인 중 1위를 기록했으며, 연간 생산량은 무려 1,700만 상자에 달한다. 독자 여러분도 12,000원의 행복을 느껴보시길.
 
 
Louis Martini, Napa Valley, C/S, 2010
 
루이 마티니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내노라는 고급 와인을 많이 마셔본 조 이사이지만, 처음으로 "맛있다"라는 감탄을 자아낸 와인은 다름 아닌 루이 마티니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소위 캘리포니아 카베르네의 가이드라인이라고 불리는 와인인 만큼 필자의 기대 역시 컸는데, 두 시간 정도 병을 열어 놓고 공기와 접촉시켰더니 매끄러운 타닌과 부드러운 질감을 드러냈다. 또한 코코넛과 바닐라의 크리미한 풍미는 원산지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으며, 때마침 제공된 부드러운 안심 석쇠 요리와 잘 어울렸다. 루이 마티니는 캘리포니아에서도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로, 캘리포니아 와인협회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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