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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와인 산업은 화창하다. 2015년 OIV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와인 생산량은 2014년보다 0.5% 증가한 2천2백만 헥토리터로 스페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소비량은 세계 1위로 중국과 함께 와인시장의 큰 손으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미국와인 생산량의 90%를 생산하며 와인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2015년에는 2억2천9백만 상자의 캘리포니아 와인이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폭넓게 수출되었다. 미국와인 산업에서 관광 분야는 매우 중요하다. 매년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3천만 명 정도이며 관련 산업 종사자의 수도 5만 명에 달해 고용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친환경과 자연 에너지 활용 등 지속가능한 농업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도 적극적이다.
 
 
드라마 같은 실화, 그르기치 힐스의 성공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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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얽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 왕에게 들려준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처럼, 와이너리의 흥망성쇠를 비롯해 양조자의 열정과 철학 등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전해진다. 또 하나의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꿈을 뛰어넘어 미국와인 역사의 전설로 기록될 정도로 의미가 남다르다.
 
마이크 그르기치는 1923년에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났다. 최근에서야 일생일대의 여행지로 크로아티아가 각광받지만 그 당시엔 공산국가인 유고슬라비아에 속한 연방국일 뿐이었다. “천국이다.”라고 캘리포니아를 다녀온 스승의 소감 한 마디에 그는 언젠가'천국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이후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발씩 걸어 나갔다. 미국으로 바로 이주하기는 어렵던 때라 1954년에 크로아티아를 떠나 서독과 캐나다를 거쳐 1958년에 드디어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그르기치는 나파 밸리의 거물인 리 스튜어트Lee Stewart의 수버랭 와이너리Souverain Winery에서 시작하여 크리스티안 브라더스Christian bothers와 보리우 빈야드Beaulieu Vineyard에서 일했다. 특히 보리우 빈야드에서 미국와인 역사상 전설적인 와인 메이커 안드레 첼리체프André Tchelistcheff와 일하면서 와인 양조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이후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최초 양조팀에 참여했고 1972년에는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1대 와인 메이커가 되었다.
 
오래된 성에 양조시설을 들이고 포도밭을 재정비해서 와이너리로 거듭난 샤또 몬텔레나는, 1976년 ‘파리의 심판’ 테이스팅에서 프랑스의 쟁쟁한 와인들을 제치고 화이트 와인 부문 1위를 차지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와 함께 와인 메이커인 마이크 그르기치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르기치는 ‘파리의 심판’을 두고, 오직 프랑스에서만 최고 와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신화를 산산이 부숴버린 사건이며 나파 밸리의 와인산업을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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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그르기치는 ‘품질, 일관성 그리고 오랜 지속성’이란 철학 아래, 오스틴 힐스Austin Hills와 함께 가족 경영 와이너리 ‘그르기치 힐스 셀러’를 설립했다. 그리고 포도 품종에 맞는 기후와 토양을 철저히 분석한 끝에 아메리칸 캐넌, 카네로스, 욘트빌, 러더포드, 칼리스토가 등 나파 밸리의 다섯 개 지역에 포도밭을 조성했다. 유기농 포도 재배와 지속가능한 농업에 열정적이었던 그르기치 힐스는 화학 비료, 제초제,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포도 재배 방식을 도입하여 2006년에 유기농 인증과 바이오다이나믹 인증을 획득하였고, 와이너리의 동력을 태양 에너지로 전환했다. 2007년에는 직접 소유한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로 이름을 바꿨다. 이듬해인 2008년, 그르기치는 미국와인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생산자 명예의 전당Vintners Hall of Fame에 이름을 올렸다.
 
그르기치 힐스는 양조 과정에서도 인위적인 작업을 극소화한다. 천연 효모로 발효하고, 레드 와인의 경우 2차 젖산발효를 하지만 화이트 와인은 하지 않는다. 신선한 산도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더운 지역에서 자란 포도 또는 매우 더웠던 날씨 탓에 농익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야 할 때, 산미가 날카로운 사과산을 부드러운 젖산으로 전환하는 젖산발효를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신 와인이 깊은 풍미와 부드러운 질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발효를 마친 후 효모 앙금을 걸러내지 않고 와인과 함께 숙성시키는 쉬르 리Sur Lie 숙성을 선호한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포도밭에서 당신의 글라스로” 라는 슬로건대로 그르기치 힐스의 와인은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맛과 멋이 난다. 또한 포도 품종의 특징이 잘 드러나며 우아한 스타일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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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 샤르도네 2013
Grgich Hills Estate Chardonnay 2013
 
마이크 그르기치에게 ‘샤르도네의 왕’이란 왕관을 씌워준 와인으로 1977년 와이너리 설립 때부터 대표 와인의 자리를 꿰찼다. 대부분의 포도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서늘한 지역인 카네로스와 아메리칸 캐넌에서 수확한다. 젖산 발효를 하지 않고 9개월 동안 프랑스산 대용량 오크(새 오크 비율 40%)에서 발효와 숙성을 한다. 총 생산량은 약 3만 상자이며 1999 빈티지의 경우 Wine & Spirit에서 전세계 10대 샤르도네 와인으로 선정되었다. 감귤류, 배, 청사과, 열대과실의 향과 함께 구수한 오크, 미네랄 풍미, 샴페인 풍미와 비슷하게 구운 빵의 향도 나서 쉬르 리 숙성이 적절했음을 알 수 있다. 신선한 산도가 잘 살아있어 마지막 한 모금까지 깔끔하다. 과실 풍미와 2차 풍미들이 잘 농축되었고 미디엄 바디의 무게감과 잘 잡힌 균형이 놀랍다. 각종 해산물 요리, 구운 닭고기,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오리구이 등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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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 진판델 2012
Grgich Hills Estate Zinfandel 2012
 
진판델 품종이 자라기에 적합한 나파 밸리의 북부 칼리스토가는 매우 더운 지역이다. 이 지역 진판델의 대부분은 알코올 농도가 높고 육중한데 반해, 그르기치 힐스의 진판델은 가벼운 스타일에 가깝다. 본래 진판델은 포도송이가 많이 열리고 몸집이 큰 품종인데, 나무의 윗부분에 열린 포도송이가 햇빛을 가려 다른 포도송이가 햇빛을 잘 받지 못한다. 한 나무에 열린 포도송이라도 익는 정도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포도송이가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포도가 너무 익어 와인이 무거워진다. 그르기치 힐스에서는 수확기 즈음에, 끓는 찌개의 거품을 걷어내듯이 나무 윗부분에 달린 포도송이를 제거해서 다른 포도송이들이 골고루 익을 수 있도록 하고 포도를 일찍 수확함으로써 와인이 무거워지는 것을 방지한다. 진판델에 소량의 프티 시라를 블렌딩한 이 와인은 라즈베리, 블랙체리, 시나몬, 정향의 향이 난다. 마신 후에도 침에 계속 고일 정도로 산미가 잘 살아 있어 음식친화력이 좋은 와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전기구이 통닭, 페퍼로니 피자, 미트 소스 파스타, 햄버거 등 여러 종류의 음식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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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 2012
Grgich Hills Estate Cabernet Sauvignon 2012
 
나파 밸리의 욘트빌, 러더포드, 칼리스토가에 위치한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 카베르네 소비뇽에 소량의 메를로, 프티 베르도, 카베르네 프랑을 섞어 만든 전통적인 보르도 블렌딩 와인이다. 프랑스산 오크(새 오크 비율 60%)에서 21개월 동안 숙성한다. 그르기치 힐스 에스테이트가 샤르도네 전문이라는 생각에 레드 와인에 대해 의심했다면 곧 섣부른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첫 향부터 신선한 삼나무 향이 나서 상쾌하고 검은 자두, 블랙베리, 감초, 미네랄 향미까지 은은하다. 타닌은 촘촘하게 짜여있지만 전혀 거칠지 않고 잘 익은 과일에서 느낄 수 있는 감미로운 맛이 난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풀보디 와인이며 균형도 잘 잡혀 있고 산도가 좋아 끝까지 깔끔하다. 빈티지로부터 10년 후면 마시기 좋은 상태에 도달하고 30년은 거뜬히 보관 가능하다. 어울리는 음식은 말할 것도 없이 두툼한 소고기 스테이크, 양고기를 추천한다.
 
 
현재 90대 고령임에도 여전히 와인 생산에 참여하는 그르기치는 크로아티아 와인 생산의 현대화에도 기여했다. 재능 있고 젊은 와인 생산자들을 후원하고 많은 기부를 통해 고국의 와인산업 발전에도 큰 몫을 했다. 그르기치 힐스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이나 이야기에 기대어 명맥을 유지하는 와이너리가 아니다. 그르기치 힐스의 명성은 현재 진행형이며 와인의 일관된 품질이 이를 증명한다.
 
 
수입_ 나라셀라 (02. 405. 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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