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헤어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
글 정휘웅 (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아침에 버스를 타고 회사에 출근하다가 문득 길을 보니, 깨끗하게 쓸려져 있는 보도블록과 그 위로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힘겹게 붙어있는 마지막 몇 잎새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머릿속에 생각난 것이 ‘헤어질 때가 가장 아름답구나’였다. 봄날, 벛꽃이 핀다. 벚꽃은 처음에 망울을 터뜨리고 만개했을 때에도 아름답지만, 꽃잎이 흩날릴 때에는 더 아름답다. 만개했을 때에는 눈으로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꽃잎이 흩날릴 때에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을은 또 어떠한가? 산이 울긋불긋, 길의 가로수가 울긋불긋하다가도, 어느 날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은행나무는 비 내리듯 자신의 노란 흔적을 고스란히 땅으로 하염없이 내려놓는다.
나무와 꽃, 나무와 나뭇잎의 이별인 셈이다. 그 둘의 이별은 섞이고 엮여서 우리 눈 앞에 아름다움과 함께 뭔가 뭉클함을 전달한다. 어쩌면 그 때가 가장 아름다울 때일지도 모른다. 별의 일생에 있어서도 그 별이 마지막 폭발할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는가? 초신성(Supernova)의 폭발은 우리 눈에 전달되고 난 다음, 그 압력의 여파로 다른 별을 잉태하는 새로운 물질들이 생성된다. 무엇이든 그렇게 스러지고 사라짐으로써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주는 하나의 순환을 완성한다. 그래서 어떤 한 존재가 헤어지는 마지막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유지태와 이영애가 나오던 영화 “봄날은 간다”의 마지막 장면도 꽃잎 날리던 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헤어짐이란, 또 다른 무엇인가의 시작인가 보다.
간혹 귀하디 귀한 와인을 마실 때가 있다. 남다른 의미가 있거나, 아니면 그 와인 자체의 희소가치가 있거나 말이다. 어떤 와인이든 다 소중하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 와인들이라면 그 헤어지는 시점은 바로 와인이 개봉된 후 잔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시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와인은 다시 우리 머릿속의 추억으로 녹아 들어서, 다시금 우리의 추억을 만들고 어느 날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그 때의 기억을 반추하며 마시게 되는 것이리라.
우리가 와인에 대해서 접근하고 바라볼 때에도, 언제나 이별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자. 언젠가는 우리도 세상 모든 것과 이별을 하지 않던가? 그 마지막이 아름답게, 와인을 마실 때에도 그 와인과는 지금 이별한다는 따스한 마음으로 와인을 대하자. 그 와인이 내게 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자. 그 와인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이별을 전제로 깔자. 가장 아름다울 때이니. 그 와인을 기억하고 어느 시점이 지나 그 날의 밤, 그 사랑의 기억과 사람의 기억, 그리고 떨어지던 낙엽의 한 자락과 떨어지는 꽃잎의 한 자락을 부여잡듯 추억을 곱씹어보자. 와인이 더 맛있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