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2007은 헐리우드 빈티지
지난 6일, 보르도 그랑 크뤼 연맹(이하 UGCB)의 96개 와인생산자들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와 함께, UGCB가 주최하고 프랑스 농식품 진흥공사(이하 SOPEXA)가 주관하는 ‘2010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선보인 와인은 2007 빈티지의 보르도 와인들로, SOPEXA의 자료에 따르면 2007년 빈티지는 풍부한 강수와 일조량 덕분에 균형이 좋고 풍미가 진한 고품질 빈티지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울상 지을 뻔한 2007보르도
하지만 실제로 2007년의 보르도는, 9월의 날씨마저 좋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울상을 지을 뻔한 힘든 해였다.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2007 보르도 와인들은 실망스럽다. 다행히도 재원이 충분한 톱 샤또의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한 덕분에 향후 5년 내에 마실만한, 과일의 풍미가 살아 있고 부드러우며 매력적인 와인들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와인들은 깊이, 구조, 무게 면에서 뛰어나지는 않다” 고 밝힌 바 있다(Decanter, 2008.4).
2007년 한 해, 보르도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이들은 포도나무에 싹이 트는 순간부터 수확을 목전에 둘 때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일찍 싹이 텄으나 고르지 못했고 뒤이은 개화(flowering)와 포도의 성장(ripening)이 불규칙했다. 이 때문에 포도밭의 일손들은 바빠졌다. 게다가 여름의 기후마저 서늘하고 가랑비가 많이 내려 포도의 성장을 지연시켰고 질병을 유발시켰다. 일손은 더욱 바빠졌고 8월 말이 되어서도 계속되는 이러한 날씨에 이들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9월이 찾아왔다. 천만다행으로 따뜻한 날이 지속되었고 포도재배자들은 그간 쌓였던 근심을 어느 정도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이에 대해 TheWineDoctor.com의 크리스 키삭(Chris Kissac)은 “2007년의 보르도는 마치 일어날 법하지 않은 엔딩으로 결국 악당이 소탕되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킨다”고 이 설명하였다.
2007 보르도, 화이트 와인 눈여겨 보아야
2007년 전반에 걸친(9-10월 제외) 기후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보르도에서 생산된 드라이 화이트 와인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 도멘 드 슈발리에(Domaine de Chevalier)의 올리비에 버나드(Olivier Berbard)는 JancisRobinson.com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확이 제 때에 이루어졌고 13%를 약간 웃도는 알코올 농도를 보여줄 수 있을 만큼 포도가 잘 익어 주었으며, 3.1-3.2 pH의 신선하고 적절한 산도로 밸런스 좋은 와인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소테른(Sauternes)과 바르삭(Barsac)에서 생산되는 스위트 와인의 경우, 건조하고 화창한 날씨에 수확된 포도와 잘 발달된 보트리티스(귀부균) 덕분에 좋은 품질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크리스 키삭은 TheWineDoctor.com을 통해 내다보았다.
잰시스 로빈슨(JancisRobinson) 역시 2007 보르도 와인 테이스팅을 마친 후 “오랜 숙성력과 함께 단단하고 드라이한 레드와인의 대명사로 불렸던 보르도 레드는 발견할 수 없었다. 반면 2007 보르도의 화이트 와인들은 나를 놀라게 했다. 이들은 레드 와인이 보여주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 스위트 와인의 경우, 2001 빈티지와 같은 섬세함은 부족하더라도 정말 훌륭하다”고 밝히며, 2007 보르도 빈티지에 대해 화이트 와인 예찬을 펼쳤다.
세계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는 보르도의 샤또들이 매년 한국을 대거 방문하고 시음회를 개최하는 것은, 국내 와인 전문가와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와인을 공부하기 시작한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 역시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신뢰할만한 출처를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스스로 와인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와인전문가와 애호가들은 차치하고, 이제 와인에 눈뜨기 시작해 엄청난 호기심으로 한창 와인을 배워가는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2007년 빈티지는 풍부한 강수와 일조량 덕분에 균형이 좋고 풍미가 진한 고품질 빈티지라는 평가를 받았다”라는 주최측의 자료는 턱없이 단순하고 미비하다.
“이 와인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한 해의 빈티지가 평균과 비교해 보았을 때 어떻게 다르고 어떤 점에서 덜 뛰어나거나 더 뛰어나며, 그래서 생산자들에게는 행운의 해였다든가 혹은 운이 나빴기 때문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고자 했다든가 하는 정도의 품질 보증서는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