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정신 발판 삼아 세계로 비상한


신세계 와인 강국, 미국 [2]


-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와이너리 E&J 갤로 -




글, 사진 _ 김지혜


포도알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따서 바구니에 담고, 바구니마다 가득 담긴 포도를 트렉터로 옮겨 양조장에 이르면 입구에서부터 포도향이 가득 피어 오른다. 양손이 보랏빛으로 물든 와인메이커가 트렉터에서 쏟아지는 포도송이들을 바라보며 올해도 잘 익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해하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포도는 착즙되어 와인이란 신비로운 음료로 변하는 마법을 부릴 준비를 마친다.

여태껏 와인애호가로, 와인 산업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와인을 만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른 풍경은 그랬다. 정성스레 수확한 포도로 즙을 만들고 긴 시간 와인메이커의 애를 태우며 요리조리 변화를 거듭하며 한 잔의 와인으로 탄생하는 풍경만을 목격해 온 필자에게, 갤로 와이너리를 방문한 일은 스케일의 차원이 다른 신세계를 경험하는 일이었음을 먼저 밝힌다.

스케일의 차원이 다른 와이너리, 갤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갤로의 본사가 위치한 모데스토로 향하는 길. 모데스토라는 지명을 처음 들어보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려 해도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세계 최고 규모의 와이너리’라는 수식어에 한껏 들뜬 채로 갤로 와인의 본거지를 찾아 나섰다.

모데스토에 위치한 갤로 본사를 방문하기 전에 둘러본 곳은, 갤로의 대표적인 스위트 와인을 생산하는 `리빙스톤(Livingston) 와이너리’였다. 대단위 공장지대를 연상시키는 이곳을 와이너리라고 칭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이곳은 갤로 와인 생산을 위한 모든 와인양조시설이 갖춰진 와이너리이며, 와인메이커들의 고민과 실험정신이 끊임없이 샘솟는 장소였다. 규모가 어찌나 크던지, 거대한 정유 공장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다를 뿐, 좋은 와인을 향한 그들의 열정과 와인에의 철학,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여느 와이너리 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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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스톤 와이너리는 저 멀리서 바라보기에도 거대한 와인 왕국을 연상시켰다. 끝없이 펼쳐진 와인 탱크와, 어림잡아도 수백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양조시설을 돌아보는데는 차를 타고도 한참이 걸렸다. 그 속에는 온갖 첨단 과학이 접목된 장비와 수십 명의 와인메이커, 와인메이커들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그들만의 놀이터인 와인 실험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이마저도 부족한지 와이너리 한 켠에서는 양조 설비 증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보다 더 거대할 수는 없는 갤로 왕국의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세계 최고 규모의 와이너리 E&J 갤로’는 스케일의 차원이 다른, 영화로 치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이라는 것을.

고급 와인을 선호하는 열혈 애호가들에게는,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는 프리미엄급 와인들이 주는 한잔의 감동이 와인의 세계로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와인의 세계에서 누구나 쉽게 한 병 집어들 수 있는 품질 좋은 대중적인 와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대량생산’이라는 단어가 산업화가 낳은 폐단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면서 긍정의 의미가 빛 바래긴 했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모두를 위한 와인’을 추구하는 갤로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와인을 맛보는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열정, 절박함, 선의의 경쟁의 세 박자가 빚어낸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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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를 만나면 두 번은 반드시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블록버스터급 규모의 와인 설비 시설에 놀라게 되고, 두 번째는 갤로 형제가 처음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양조기술을 책으로부터 배웠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갤로는 1933년, 어니스트 갤로와 줄리오 갤로 형제가 설립한 와이너리로 단일 와이너리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며 브랜드 파워, 생산량 및 판매량, 와인 비즈니스, 와인 IT 및 마케팅 활동 등 다방면에서 세계 와인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혁신적인 와이너리로 주목받고 있다. 규모로 보나 성장 속도로 보나 처음부터 모든 조건을 갖추고 와인 비즈니스를 시작했을 것 같은 갤로의 첫 와인은 놀랍게도 모데스토에 위치한 작은 창고에서 책에 의지해 만든 포도주에서 시작되었다.

갤로 형제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와인을 만들면서 자랐다. 금주법 기간 동안, 포도를 재배하여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던 그들은 금주법이 해제된 후 그들만의 와이너리를 세웠다. 그러나 그들은 와인 양조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이런 이유로 도서관에서 와인 양조에 관한 책을 빌려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와인전문지 와인스펙테이터의 편집장 제임스 라우베와의 인터뷰에서 어니스트 갤로는 “당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와인을 좀 더 깔끔하게 발효시키고 정제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와 같은 상업적인 와인을 만드는 법을 공부하는 것이 우리의 첫 발걸음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또 만든 경험도 없었지만 그들이 도서관과 작은 창고에서 책과 씨름하며 생산한 와인은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안겨주었다. 백만 갤런이 넘는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400에이커가 넘는 거대한 와이너리를 지었고 이는 더 많은 와인을 팔아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그들은 각자의 책임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줄리오 갤로는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더 좋아했고, 어니스트 갤로는 와인 판매와 마케팅에 관심이 더 많았다. 바로 여기서 E&J 갤로가 성장하는 원동력이 된 명언이 탄생한다. : “줄리오는 어니스트가 팔 수 있는 와인보다 더 많은 양의 와인을 만들었고, 어니스트는 줄리오가 만들 수 있는 와인보다 더 많은 와인을 팔기 위해 노력했다.”

어니스트 갤로는 금주법으로 피폐해진 캘리포니아 와인산업을 재건하고 와인과 함께하는 생활양식을 만드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미국 와인 산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갤로는 순자산 가치 12억 달러에 46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가족 경영 와이너리(2006년 기준)로 전세계 90여 개국에 약 8천만 케이스의 와인을 판매하며 단일 와이너리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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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갤로의 도전

캘리포니아 와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로버트 몬다비와 함께 200년 역사의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을 세계 최대로 성장시킨 주역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갤로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와인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착한 가격의 질 높은 와인을 대량 공급함으로써 와인문화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설립 이후, 1950년대까지`Gallo is better Wine’이라는 모토 아래 와인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으며 1980년대부터는 품종 중심의 와인 양조로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갤로는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캘리포니아 전 지역의 우수한 와이너리와 파트너십 체결 및 M&A를 통한 확장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또한 세계 각 지역의 우수한 산지로 손꼽히는 프랑스, 칠레,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의 와이너리와의 합작을 통해 중저가 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와인 부문에서도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여 전체 와인 시장을 성장시키며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온 갤로 와인은 1995년 처음 국내 시장에 소개되어 와인 시장의 대중화와 다양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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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산지 기행은 다음 순서로 연재됩니다.

2편 :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와이너리, E&J 갤로를 가다
3편 : 미국 와인의 부흥기, After 1976
4편 : 프리미엄 와인의 중심, 나파 밸리
5편 : 다양성의 미덕, 소노마 밸리


글쓴이 _ 김지혜
현) 홈플러스 와인 홍보 담당, WineOK.com 와인 전문 기자
전) 와인전문 매거진와이니즈’ 기자, 수입사 나라셀라 홍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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