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업계 베테랑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호기심(혹은 탐구심)이 많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와인은 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최고의 아이템이다.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와인의 세계는 이들에겐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다.
“지루할 겨를이 없다는 점이 와인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샴페인 하나만 해도, 그 다양함에 종종 놀란답니다.”
‘라 꾸쁘 La Coupe’(안국역 소재 와인바)의 양진원 대표 역시 와인의 세계에 흠뻑 빠져든 이유로 다양성을 꼽는다. 와인 업계 12년차 경력의 양 대표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국제 무역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리옹의 폴 보퀴즈 요리학교를 졸업한 인재다. 넘사벽의 전문성과 풍부한 경력을 바탕으로 현재 교육가, 집필가, 와인 대회 심사위원, 글로벌 와인 그룹의 앰버서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위 사진은 와인바 라 꾸쁘의 중앙 홀. coupe는 볼이 넓게 퍼진 받침 모양의 잔을 가리킨다. 축배를 드는 잔으로 종종 사용되는데, 캐쥬얼하고 생기 도는 이곳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네 가지 팬톤 컬러를 조합해서 꾸민 실내는 단아하고 편안하다.
라 꾸쁘를 운영하면서 양 대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뭐니뭐니 해도 와인 리스트다. 오픈 당시에는 주정강화 와인에 특화한 컨셉트로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위 사진은 포트 와인 ‘콕번 Cockburn’s’(인터와인 수입). 포트는 포르투갈의 주정강화 와인(브랜디를 넣어 알콜 함량을 17~21%로 높인 와인)으로 특히 영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참고로, 콕번 빈티지 포트는 20세기 초 영국 런던 경매소에서 가장 비싼 포트로 낙찰되기도 했다. 콕번은 Douro Superior에 포도밭을 경작한 최초의 와이너리로, 이는 사라질 뻔한 포트 와인 품종 투리가 나시오날을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콕번은 1969년에 Special Reserve라는 새로운 포트 와인 카테고리를 만들어 유머를 섞은 마케팅을 대대로 펼쳤는데 특히 70~80년대의 TV 광고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주정강화 와인에서 시작하여, 라 꾸쁘의 와인 리스트는 점차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으로 구색을 넓혀갔다.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이라면 귀가 솔깃하고 꼭 한 번은 마셔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와인을 즐기는 고객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내추럴 와인’, 또는 ‘자연주의 와인’도 그 중 하나다.
앞서 말해두지만, 보졸레는 일찍이 자연주의 와인 양조가 태동한 곳이다. “자연주의 와인 양조의 아버지”라 불리는 쥴스 소베 Jules Chauvet, 6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마르셀 라피에르 Marcel Lapierre는 보졸레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와인생산자들이다. 그리고 그 계보를 이으며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보졸레 내추럴 와인의 요다”라 불리는 장-루이 뒤트레브 Jean-Louis Dutraive다. 국내 와인애호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장-루이 뒤트레브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장-루이 뒤트레브가 운영하는 ‘도멘 드 라 그랑꾸흐 Domaine de la Grand'Cour’는 보졸레의 10개 크뤼 마을 중 하나인 플뢰리 Fleurie에 위치해 있다.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모았던 다큐멘터리 <SOMM: Into the Bottle>(2015)에서 마스터 소믈리에 Brian McClintic는 이 도멘의 와인을 두고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복합적이고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지 감탄하게 된다”며 노골적으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 대표는 도멘 드 라 그랑꾸흐 와인을 “꽃과 과일 향이 풍부하고, 매우 잘 다듬어진 섬세하고 예쁜 와인”이라고 묘사한다(제이와인 수입).
와인뿐만 아니라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양 대표는 ‘짜파게티와 레드 와인’이라는 아주 이색적인 페어링을 개발해냈다. 차돌박이와 트러플 오일을 넣고 계란 노른자를 올린 라 꾸쁘의 짜파게티는, 특히 직설적이고 농도 짙은 스타일의 신세계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린다. 라 꾸쁘 고객들이 짜파게티에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면, 양 대표는 망설임 없이 ‘밀라 칼라 Milla Cala’(제이와인 수입) 와인을 내놓는다.
밀라 칼라를 생산하는 ‘비냐 빅 Vina VIK’ 와이너리는 세계 정상급 와인을 만들고자 한 노르웨이 출신 기업가이자 세계적인 부호 Alexander Vik과 보르도 생테밀리옹의 특등급 와인, 샤토 파비 Ch, Pavie의 전 오너이자 와인메이커였던 Patrick Vallet 두 사람이 손잡고 시작한 와이너리이다. 밀라 칼라는 라 꾸쁘에서 항상 재고를 채워 넣는 0순위 와인이다. 양 대표의 말을 빌리면, 밀라 칼라는 “농축된 풍미가 좋고,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클래식한 면모를 갖춘 와인”이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꾸준히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줘 고객들 사이에서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