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바디감이란
글 _ 정휘웅(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와인의 바디감이란 무엇인가. 어떤 와인은 묵직한 반면 어떤 와인은 가볍다. 종종 색상은 투명한데 마실 때 강한 인상을 전하는 와인을 접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한다. 도대체 바디감이란 무엇인가? 알코올? 포도의 응집력? 아니면 또다른 어떤 것?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입으로 와인이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묵직하다” 혹은 “가볍고 신선하다” 등 여러 가지 표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디감이란 것이 과연 실체가 있을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으로 수치가 명확하거나, 혹은 눈으로 관찰이 가능한 경우에만 이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일까. 원자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 보자. “원자력”을 대표하는 원자의 그림을 떠올려보면, 가운데 어떤 하나의 입자가 있고 주변을 위성이 맴돌듯이 전자가 빙빙 도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원자를 이루는 양자와 전자는 우리가 그림으로 보았던 것처럼 서로 가까이 붙어있을까? 그 사이는 가득 차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이 둘은 실제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있고 그 사이는 텅 비어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압축한다고 할 때에는 원자와 원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의미한다. 핵융합이란, 외부의 압력이 크고 원자 사이의 거리가 좁아질 대로 좁아져서 결국 하나로 합쳐지고 새로운 원자가 탄생하는 것이다(우리가 화학시간에 머리 아프게 외워야 했던 원소 주기율표를 떠올려 보라).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을 요구한다.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세상은 텅 비어 있는 셈이다. 그저 눈에 가시광선으로 보일 뿐, 모든 것은 비어 있다. 빛이 우리에 반사되어 전달되고, 서로간에 반발력에 의해 존재를 인지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한다. 나아가 숫자로 증명되지 않으면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믿는 것과 증명하는 것은 다르다. 과학자들은 확인되지 않은 믿음을 실체로 만들기 위해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인식한다.
반면 종교나 철학의 세계는 영혼의 존재나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 과학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믿으려 한다. 즉, 증명하지 못한다 해서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이다. 따라서 믿는다는 것은 “인식(cognition)”의 문제로 다루어질 수 있다.
와인의 바디감이란 어쩌면 과학적인 증명이 불가능할 수 있다. 혹은 증명한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시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와인을 시음하고 이야기 하면서 와인의 바디감을 논한다. 우리는 어쩌면 텅 비어있는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공허한 관념체가 혀와 입, 코라는 인식 수단들이 전달하는 신호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인식된 것을 표현하고 그에 따른 행위를 보여준다. 술이 취하거나, 혹은 얼굴이 붉어지거나.
와인의 바디감이란 실존적이지 않은 개념일 수 있다. 알코올 함량, 포도가 잘 익은 정도, 와인을 구성하는 성분 등으로는 바디감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와인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 이상의 무엇인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오늘 밤 우리는 와인이라는 인식의 매개체가 선사하는 마리아주와 추억과 분위기를 즐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와인이 때로는 특별하기도 하고 때로는 평범하기도 한데, 이것이 바로 와인의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