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Beaujolais
편견을 벗다
보졸레 누보 때문에…
보졸레 Beaujolais의 포도밭은 부르고뉴 최남단 지역의 낮은 화강암 언덕들 위로, 남북으로 길게 56km 정도 뻗어 있다. 인접 지역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두 지역은 공통점이 없지만, 프랑스 정부의 규정에 따라 보졸레는 부르고뉴에 포함된다. 보졸레 와인에 대한 안타까운 오해는, 1년에 단 한 번 파리 곳곳과 전 세계 레스토랑과 와인숍마다 ‘보졸레 도착!’이라는 포스터를 내걸고 홍보하는 11월 말 무렵에만 마실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와인의 정확한 명칭은 보졸레 누보Nouveau인데, 그 해 무사히 수확을 마친 것을 기념하여 갓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와인을 말한다. 보졸레 누보는 대단히 인기 있는 와인지만, 품질을 놓고 비교했을 때 일반 보졸레 와인이 훨씬 뛰어나다(캐런 맥닐, 더 와인바이블, 2010).
편견 뒤엎은 2009 빈티지
“채 숙성을 마치지도 않은 샤또 페트뤼스가 한 병당 3천 유로를 호가하는 등, 보르도의 2009는 과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럴 때, 지금 당장 마시기에 손색없고 과일의 풍미로 꽉 찬, 병 당 15 유로도 하지 않는 2009 보졸레에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2009 빈티지의 보르도 와인에 대한 (탐욕에 가까운) 인기를 지켜보던 잰시스 로빈슨 MW이, 같은 해의 보졸레 와인들을 시음한 후 남긴 칼럼의 일부분이다. 그녀는 2009년 빈티지야말로, 1980년대 이후 보졸레 누보의 열풍에 가려져 진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보졸레 와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빈티지라고 확신한다(jancisrobinson.com 2010.7).
2009 빈티지가 이토록 뛰어날 수 있는 이유는 온화했던 여름 덕분인데, 포도가 매우 잘 익어 수확이 예년에 비해 일찍 이루어졌고, 더불어 와인의 산미가 너무 튀지 않으며 잘 익고 아삭하며 과즙이 풍부한 과일의 풍미를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20여 년간 보졸레의 와인생산자들이 이룬 품질 향상과 그에 따라 높아진 평판은, 부르고뉴 와인생산자들의 보졸레 지역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투자를 지속해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1996년에 Louis Jadot는 보졸레의 Ch, des Jacques를 인수하였고, 250년 전통의 부르고뉴 와인생산자 Thibault Liger-Belair 또한 보졸레의 포도밭을 인수하여 와인을 생산해 오고 있다. Bouchard Pere et Fils 역시, 2008년에 보졸레의 플뢰리에 위치한 양조장을 인수하여 Villa Ponciago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보졸레 와인의 개성은 가메Gamay라는 포도 품종에서 비롯된다. 보졸레 와인은 달콤한 블랙체리와 블랙라즈베리, 복숭아, 제비꽃, 장미 향이 펼쳐지고 이어 후추 향이 엷게 감돈다. 가메는 원래 타닌 성분이 적기 때문에 풍부한 과일 맛이 더욱 도드라진다.
가메라는 품종 외에도, 보졸레 와인의 특수한 양조방법-탄산가스 침용이라는 전통적인 방법도 보졸레의 개성을 드러내는데 일조한다. 이 과정에서는 포도송이를 통째로 발효조에 넣는데, 발효는 말 그대로 포도 한 알 한 알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이런 방법은 가메와 같이 과일 맛이 풍부한 포도에 적용된다.
아래 지도에서 보여주듯, 보졸레에는 열 개의 마을(크뤼)이 있으며 병 레이블에 생산자와 크뤼 명칭을 표기한다.
시루블 Chiroubles
가장 전형적인 보졸레를 생산하는 크뤼로, 해발 400m의 화강암 지형에 자리잡고 있다. 모란, 은방울, 아이리스, 제비꽃 등의 향들이 잘 어우러지며 맛이 세련되고 과일향이 풍부하다.
브루이 Brouilly
브루이는 아름다운 브루이 산기슭에 위치하며, 보졸레 크뤼 중 가장 큰 아펠라시옹이다. 짙은 루비 색을 띄며 자두, 복숭아의 붉은 과일 향과 미네랄 풍미를 지니고 있다.
레니에 Rehnie
1988년에 크뤼로 지정된 레니에는 보졸레 크뤼의 막내라고 할 수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짜임새 있고 보랏빛 기운을 띄는 체리 색상에 블랙커런트, 블랙베리, 산딸기의 향이 풍부하다.
플뢰리 Fleurie
보졸레 크뤼 중에서 가장 여성적인 크뤼로, 풀뢰리 와인은 봄이면 꽃으로 덮이는 플뢰리 지방의 모든 특성이 녹아있다. 벨벳의 부드러움, 우아함 그리고 아이리스, 제비꽃, 마른 장미꽃의 향과, 복숭아, 블랙커런트, 붉은 과일의 향이 은은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풍미가 깊어가는 와인이다.
생타무르 St. Amour
보졸레 크뤼 중 가장 북쪽에서 생산되며, 활기차고 섬세하고 균형이 잘 잡힌 와인을 생산한다. 체리로 담근 술, 향신료, 물푸레 나무의 향을 은근히 느낄 수 있다.
꼬뜨 드 브루이 Cote de Brouilly
보졸레에서 유일하게 화강암과 편암이 균일한 토양인 산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신선한 포도와 아이리스 향이 나는 와인으로, 충분한 숙성을 거친 후 마시면 우아한 맛을 입안에서 느낄 수 있다. 숙성된 꼬뜨 드 브루이 와인에서는 아몬드와 익힌 과일향이 난다.
쥘리에나 Julienas
쥘리에나의 포도밭은 경사가 급하고 일조량이 풍부하다. 복숭아와 붉은 과일, 꽃향이 어우러져 기분 좋은 부케를 만들어낸다. 점토질의 토양에서 생산되며, 햇포도주로 마셔도 좋을 뿐만 아니라 몇 년 숙성시킨 뒤 마셔도 세월이 주는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쉐나 Chenas
쉐나는 화강암처럼 온화하고 참나무 숲처럼 우아해서, 입안에서 미각을 일깨워 준다는 평을 듣는다. 루이 13세가 아꼈던 와인 중 하나로, 보졸레 크뤼 중 가장 귀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입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특징이다. 같은 언덕에서 생산되어 형제 포도주라고도 불리는 물랭 아 방 Moulin-a-Vent과 함께 보졸레의 보물로 꼽힌다.
모르공 Morgon
모르공은 부스진 바위와 부서지기 쉬운 편암으로 구성된 토양에서 생산되며, 입안에 꽉 찬 느낌을 준다. 짙은 석류 빛깔을 띄며, 잘 익은 체리, 복숭아, 살구, 자두의 향을 낸다. 힘있고 풍성한 느낌의 모르공은 몇 년간 보관한 후 마셔도 좋다.
물랭 아 방 Moulin-a-Vent
물랭 아 방은 풍차라는 뜻으로, 마그네슘이 풍부한 화강암 토양 덕분에 귀족적인 포도주로 여겨지고 있다. 아이리스, 마른 장미, 향신료, 잘 익은 과일 향을 내며 짜임새가 뛰어나 명품 포도주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이러한 이유로 물랭 아 방을 ‘보졸레의 제왕’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