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한 해, 뭔가에 홀린 듯 휩쓸려 살다 보니 연말이 어느새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도 과연 예년과 같은 연말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어둠이 있기에 빛의 존재가 더욱 선명해지듯,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찾아올 거란 희망은 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올 연말에는 축배보다는 위안의 의미를 담아 샴페인 잔을 채워보자.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샴페인 명가, 앙리오Henriot 가문은 빛을 모티프로 샴페인을 만든다. 실제로 앙리오 샴페인은 은은하지만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백의 스타일로 묘사되며 종종 “빛의 샴페인”으로 비유되곤 한다. 여느 샴페인과는 달리 샤르도네 품종의 블렌딩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샤르도네는 샴페인을 만드는데 쓰이는 세 가지 품종(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 샤르도네) 중 유일한 청포도 품종이며, 피노 누아와 함께 가장 고급스런 품종으로 꼽힌다.
리저브 와인의 블렌딩 비율이 높은 것도 앙리오 스타일의 핵심을 이룬다. 다른 년도에 만든 리저브 와인을 섞는 것은, 매년 샴페인의 스타일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꾸준히 높은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정교한 기법이다. 샴페인 앙리오를 국내에 수입, 유통하는 수입사 나라셀라의 신성호 이사의 말마따나 “진정한 블렌딩의 미학을 보여주는 곳은 보르도보다는 오히려 샤토네프 뒤 파프와 샹파뉴다”.
16세기 즈음 샹파뉴에 정착한 앙리오 가문은 1808년에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했고 19-20세기에는 네덜란드 왕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인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왕가애서 샴페인을 공급했다. 앙리오 가문은 2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 8대에 걸쳐 샴페인을 만들어 온, 요즘 보기 드문 가족 경영 샴페인 생산자다. 오늘날엔 샹파뉴뿐만 아니라 다른 와인 산지로도 그 영역을 확장하며 앙리오 그룹으로 거듭나고 있는데, 부르고뉴의 부샤 페레 에 피스(Bouchard Pere & Fils), 샤블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윌리암 페브르(William Fevre) 등이 앙리오 그룹 소유다.
앙리오는 샹파뉴의 꼬뜨 데 블랑(Côte des Blancs) 지역에 위치해 있다. 샹파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품질의 샤르도네가 생산되는 곳이다. 자연히 이곳의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샤르도네 품종으로만 만든 샴페인)은 세계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는데, 신선하고 우아하며 복합적일 뿐만 아니라 오랜 숙성력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샴페인 앙리오 브뤼 수버랭 N/V
Champagne Herniot Brut Souverain N/V
▶ 포도품종: 샤르도네 50%, 피노 누아 45%, 피노 뫼니에 5%
▶ 숙성 기간: 3년
▶ 적정 음용온도: 8~12 ℃
▶ 권장소비자가: 14만원
앙리오는 모든 샴페인에서 샤르도네를 비중 있게 블렌딩하는 반면, 피노 뫼니에의 블렌딩 비율은 매우 낮게 유지한다. 이는 가장 기본급 샴페인인 ‘브뤼 수버랭(Brut Souverain N/V)도 마찬가지다. 향을 맡으면 절로 미소 짓게 되는 이 샴페인은 신선한 산미와 쌉싸름한 견과류의 여운을 남기며, 졸음이 확 달아날 만큼 청량하고 경쾌한 기포를 내뿜는다. 분위기를 띄우거나 식욕을 돋우는 데 있어서 이만한 식전주는 없을 것이다.
샴페인 앙리오 브뤼 로제 N/V
Champagne Herniot Brut Rose N/V
▶ 포도품종: 피노 누아 50%, 샤르도네 40%, 피노 뫼니에 10%
▶ 숙성 기간: 2~3년
▶ 적정 음용온도: 8~12 ℃
▶ 권장소비자가: 20만원
‘브뤼 로제(Brut Rose N/V)’를 만드는 데 쓰인 포도의 대부분은 프리미에 크뤼와 그랑 크뤼 포도밭에서 조달한다. 은은하면서도 화려하게 드러나는 오렌지 껍질, 감귤류, 붉은 베리류의 풍미가 인상적이다. 앞서 살펴본 수버랭이 말끔하고 깔끔한 스타일이라면, 브뤼 로제는 단단하고 다부진 몸매를 가졌다. 이런 스타일의 샴페인은 요리에도 잘 어울리는데 기름기 있는 요리나 크림소스를 사용한 요리 등에 곁들여 보자.
샴페인 앙리오 브뤼 빈티지 2008
Champagne Herniot Brut Vintage 2008
▶ 포도품종: 피노 누아 53%, 샤르도네 47%
▶ 숙성 기간: 최소 6년
▶ 적정 음용온도: 8~12 ℃
▶ 권장소비자가: 23만원
‘브뤼 빈티지 2008(Brut Vintage 2008)’은 프리미에 크뤼와 그랑 크뤼 포도밭에서 수확한 피노 누아, 샤르도네를 사용했으며 피노 뫼니에 폼종은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짙은 황금빛 아우라를 뽐내는 이 샴페인은 견과류, 무화과를 비롯한 말린 과일의 향을 필두로 입안을 갖가지 풍미로 가득 채운다. 여러 다른 와인 사이에서 단연 빛을 발할 만큼 개성 있고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준다.
샴페인 앙리오 블랑 드 블랑 N/V
Champagne Herniot Blanc de Blanc N/V
▶ 포도품종: 샤도네이 100%
▶ 숙성 기간: 최소 4~5년
▶ 적정 음용온도: 9~12 ℃
▶ 권장소비자가: 21만5천원
앙리오 가문은 샤르도네 품종만 사용해서 만든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 N/V)’을 1880년대부터 꾸준히 생산해 왔다. 이 샴페인은 샹파뉴에서 생산되는 블랑 드 블랑 샴페인의 정수라 할 수 있는데,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 밭에서 생산된 포도 80%와 앙리오의 최고 등급 샴페인 ‘퀴베 38’에 들어가는 그랑 크뤼 포도를 블렌딩해서 만든다. 영롱하게 빛나는 금빛을 띠며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기포가 힘차게 솟아오른다. 코끝에서는 잘 익은 배, 꿀, 브리오슈, 흰 꽃 등의 다양한 향이 어우러지며 입안에서는 우아하고 매끄러운 질감과 끝 모를 여운이 느껴진다.
샴페인 앙리오 뀌베 에메라 2006
Champagne Herniot Cuvee Hemera 2006
▶ 포도품종: 피노 누아 50%, 샤도네이 50%
▶ 숙성 기간: 최소 12년
▶ 적정 음용온도: 9~ 12 ℃
▶ 권장소비자가: 59만 2천원
에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태초의 신들 중 ‘낮’이 의인화된 신으로, 밤의 여신 닉스와 대비된다(헤메라와 닉스는 하데스의 나라에 머물며 교대로 지상으로 올라온다). 그 이름 떄문일까, 이 샴페인을 마시는 순간 유쾌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코끝에선 화사한 흰 꽃 향이 퍼지고, 마치 작은 요정들이 입 안을 돌아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샴페인의 기포가 입 안을 경쾌하게 채운다. 에메라의 단단하고 야무진 골격은, 화사하고 생기 넘치는 스타일에 우아한 면모를 더한다.
수입_ 나라셀라 (02 405 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