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송이버섯처럼 유럽에선 트뤼플(Truffle, 송로버섯)이 최고의 버섯으로 미식가들을 사로잡는다고 합니다. 와인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는 이 트뤼플에 대해 알아볼까요.
1‘송로의 세계는 비밀스럽다. 하지만 외지인이라도 카르팡트라 부근의 마을에 가면 송로를 슬쩍 엿볼 수 있다. 그 지역 까페에서 마르와 칼바도스를 곁들인 아침식사 시간에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낯선 얼굴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웅성대던 대화가 갑자기 중단된다.
까페 밖에서는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서, 조심스레 건네진 흙투성이 흙덩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냄새를 맡아보며 무게를 가늠한다. 마침내 돈이 전달된다. 1백 프랑, 2백 프랑, 5백 프랑은 됨직한 두툼하고 때묻은 돈뭉치가 오가고, 엄지에 침을 묻혀가며 몇 번이고 헤아린다. 외부인의 눈길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영국인이자 잘 나가는 광고계 인사였던 피터 메일이 프로방스에서 정착하면서 썼던 ‘나의 프로방스’
(원제: A year in Provence) 에서 밝힌 ‘비밀스런 트뤼플의 세계’입니다. 여기서 ‘흙투성이 흙덩이’가 바로 트뤼플이죠.
▶ 흑색 트뤼플 (Tuber Melanosporum)과 흰색 트뤼플(Tuber Magnatum) |
우리나라 말로 송로 버섯이라 하지만 소나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숲 속 떡갈나무나 개암나무 뿌리에 붙어 자랍니다. 향과 맛은 어디 비할 데가 없다고 하며 온갖 노력을 다해도 프랑스인들은 아직까지 트뤼플의 인공재배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죠.
이런 저런 이유로 트뤼플의 가격엔 날개라도 달린 듯 치솟는 겁니다. 트뤼플은 캐비어, 푸아그라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손꼽히며 미식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트뤼플은 땅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절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남 프랑스에선 매년 10월부터 트뤼플 채취를 하는데, 돼지나 개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돼지의 뛰어난 후각능력 때문에 트뤼플을 찾을 때 돼지를 이용했지만, 요즘은 훈련 받은 개가 대신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돼지가 천성적으로 트뤼플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개보다도 트뤼플 냄새를 쫓는데 귀신이지만, 트뤼플을 캐낸 즉시 돼지는 먹으려고 필사적으로 달려듭니다. 이쯤 되면 개를 선호하게 된 이유가 분명하겠지요.
로마제국 시대부터 먹기 시작한 트뤼플은 미식가였던 루이 14세도 즐겼다고 합니다. 모두 30여종이 있는데 그 중 프랑스 페리고르산 흑색 트뤼플 (Tuber Melanosporum)과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흰색 트뤼플(Tuber Magnatum)을 최고로 칩니다.
트뤼플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버섯이라, 향이나 맛이 짐작이 안가는 건 당연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트뤼플향은 신선함 땅 내음과 야생의 숲 냄새라고 합니다. 가끔 와인 테이스팅 노트를 보면 트뤼플향 이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품질 좋은 Pomerol 레드 와인에서는 이 트뤼플 부케가 난다고 합니다. Pomerol 지역의 땅 속, 하부 토양에 있는 철 산화물 석재가 이 트뤼플 부케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겁니다.
▶Vieux Château Certan 2000 |
Pomerol의 뛰어난 와인 중 하나, Vieux Château Certan 2000을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풀바디 와인이면서도 우아하고 잘 익은 포도와 좋은 오크의 조화가 완벽할 정도인이 와인의 부케에서 바이올렛, 트뤼플, 모카, 바닐라, 가죽향이 난다고 합니다.
트뤼플 향이 나는 와인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과연 그럴까 하며 시음한 결과, 굉장히 축축한 땅의 냄새과 비슷하지만 딱히 그것이라 말할 수는 없는 향이 느껴졌습니다. 이건 달다, 맵다라는 요리나 인공적인 향들을 모두 날려버릴 정도로 신선한 향이었습니다.
‘자연 본연의 향이다.’라고 평하면서, 트뤼플의 향이란 것은 자연의 신선함 그대로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때 육각수나 이온수 열풍이 불었던 때가 있었죠. 어떤 음료보다 맹물이 더 몸에 좋으며 어떤 물을 마시느냐가 중요하다고요… 과도한 색과 향, 맛에 지친 현대인의 식생활에서 그 어떤 것도 가미(加味)하지 않은 순수함을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가 봅니다. 자연스럽고 신선한 맛을 가진 트뤼플을 선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 피터메일(Peter Mayle), ‘나의 프로방스’(원제: A year in Prov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