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걸 알면서도 그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해를 마무리한다' 던지 할 때 말이죠. 또 이런 말들도 하죠. '좋았던 일, 슬펐던 일 모두 종소리에 묻어버리고 희망찬 새 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주로 보신각 타종 방송 때 아나운서가 자주 쓰는 말이네요. ^^
뻔히 아는 사실이고, 매번 듣는 말인데도 해마다 이맘때쯤 듣는 저런 말들이 아직도 가슴에 와 닿는 건 아마도 우리네 삶이 그다지 심하게 변치 않고 반복되기 때문인 듯도 싶습니다. 좋은 일이겠지요. 이렇게 좋은 한 해를 또 보내면서 와인 한 잔 안 마셔줄 수 없죠. 일찍부터 호메로스찬가 (Homeric Hymns) 에도 이런 구절이 있었거든요.
"신은 유한하게 사는 인간이 근심을 털어버릴 수 있는 최고의 동반자로 와인을 만들었다."
("The gods made wine the best thing for mortal man to scatter cares.") - The CYPRIA
& 샹파뉴를 터뜨려라~
샹파뉴 혹은 스파클링 와인만큼 적당히 기분 좋게 분위기를 띄워주는 술이 또 있을까요? 뽀로로~ 올라오는 세밀한 기포, 눈을 꼭 감고 머리를 한 번 흔들며 입맛을 다시게 하는 산도, 알맞게 볼을 발갛게 만드는 기분 좋은 향과 알코올 덕분에 샹파뉴는 에피타이저 와인으로 그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샹파뉴를 생산하는 곳은 많고 많지만, 아시다시피 ‘샹파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에 한합니다. 이 외의 모든 샹파뉴들은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불리죠. 프랑스의 Champagne, 이탈리아의 Moscato d’Asti/Asti, 캘리포니아의 Napa, Sonoma, Mendocino, Anderson Valley 에서 품질을 인정받은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스파클링 와인의 스타일은 아래와 같이 구분됩니다.
샹파뉴/스파클링 와인은 훈제되거나 염분이 있는 음식과 잘 어울립니다. 약간 높다 싶은 산도가 알맞게 음식을 감싸는 덕분이지요. 이런 연유로 적당히 양념이 강한 아시아 음식도 샹파뉴와 찰떡궁합이라는 평가를 받곤 하지요.
새우, 아보카도를 살사 소스에 절여 속을 채운 피타 빵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연말 파티 때에 내놓으면 좋을 법한 음식입니다.
새우, 아보카도가 주는 부드럽게 무거운 맛을 라임즙, 토마토 등이 중화시켜주거든요. 게다가 « 때땅제 블랑드 블랑 » 이 더해진다면 음~ 가는 해가 아쉽지만은 않을 듯 싶습니다.
Taittinger Comtes de Champagne Blanc de Blancs Brut
섬세한 레몬향에 스파이시한 향이 더해졌다.
다양한 꽃의 아로마가 어우러졌으며 매우 옅게 담배와 차잎 향을 느낄 수 있다. 오래 숙성시켜도 좋을 샹파뉴.
캐비어를 곁들인 굴과 살짝 얼린 조개살 위의 사과
프랑스에서는 새해 전날 굴을 먹습니다. 우리가 새해 첫 날 떡국을 먹는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럼에도 왠지 떡국과 비교하기는 어려운 것이, 든든하게 먹고 한 살 더 먹었다는 느낌을 갖기에 굴은 좀 역부족인 듯 싶기도 해요. ^^) 굴은 특히나 껍데기에 얹어서 낱개로 집어먹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연말 파티용 핑거 푸드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대신, 특별한 날이니만큼 캐비어를 약간 얹고, 굴의 비릿함을 없애줄 아사삭한 사과채를 조금 얹어주면 훌륭하지요.
Dom Pérignon
고급스러운 재료를 썼으니만큼, 곁들일 샹파뉴도 같이 맞춰야겠죠?
신선한 아몬드와 말린 살구의 아로마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최상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신화 중의 신화라고 불리우는 이 샹파뉴는 «샹파뉴의 꿈» 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Dom Pérignon 1995]
& 메인 디쉬에 보르도 와인을 마시고~
이렇게 흥을 돋았으니 그 흐름을 쭈욱 이어가려면, 조금 멋부린 스테이크도 좋을 듯 합니다.
폴렌타 위에 얹은 소고기 스테이크
파머산 치즈와 크림을 듬뿍 넣고 요리한 폴렌타 갈레뜨 위에 스테이크 한 덩어리를 잘 구워 얹었습니다. 소스는 간단하게 조리시 얻은 육즙을 기본으로 했지요. 연말임을 감안해서 체리를 얹어 멋을 내보았습니다. 간단한 듯 보이지만 최대한으로 재료의 맛을 살린 이 메인 디쉬에게 예를 갖추려면 뽀므롤 와인을 등장시켜야겠지요?
Château Pétrus
"오 하느님! 죽기 전에 샤또 페트뤼스(Château Pétrus)를 좀더 마실 수 있게 해주세요!"
("Oh god! I hope I get some more Chateau Petrus before I die!") 라는 울부짖음을 자아낸 뽀므롤 와인 페트뤼스. 특히 페트뤼스 1990 빈티지에 대해 로버트 파커는 100점을 주었을 정도. 92년 빈티지의 경우, 어려운 해였다는 총평을 딛고 일어서 완벽한 메를로와 떼루아의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와인이 아니라 페트뤼스 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Château Pétrus 1992]
뷔쉬(Bûche) 와 Porto 로 마무리하면 !
성탄절에 꼭 빼 놓지 말고 먹어봐야 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뷔쉬 드 노엘(Bûche de Noël) 입니다. '크리스마스의 통나무'라는 뜻의 이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빵가게에 등장하면‘아, 이제
연말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지요.
먹고 마시고, 한해도 다 가니 입안을 달게 마무리하면 좋겠지요~ 그래서 Porto 를 한 번 매치시켜 봤습니다.
Royal Oporto 20 Years Old NV
꿀, 버터스카치, 시럽의 아로마가 느껴지며 옅은 너트향, 바닐라 여운이 남는다. 끝 맛으로 약간의 소금기가 느껴지는 것도 특징. 우아한 포르투갈 産 디저트 와인이다.
와인 스펙테이터 점수 88
맛있게 잘 드셨어요? 2004년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마지막 날 끝내주게(!)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004년 새해에도 많은 얘기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