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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âteau de la Terriere의 대표 Gregory Barbet와 와인메이커 Frédéric Maignet)

 

 

2009년, 보헤미안을 자칭하는 누나는 가족모임에 와인 한 병을 들고 왔다. “이게 바로 내추럴 와인이라는 거야, 인위적인 작업 없이 토양에서 나오는 그대로 만든 와인이래.” 와인을 맛본 가족들의 반응은 이랬다. “이런! 맛이 왜 이래? 거름처럼 퀴퀴한 냄새에 균형도 안 잡혔고.” 이후로 아버지와 나는 누나를 만날 때마다 그 와인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담을 다시 언급하며 비아냥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10년이 지난 지금 나 자신이 그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후발주자지만, 시험삼아 내추럴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Château de la Terrière 샤또 드라 테리에르의 대표인 그레고리 바베 씨를 방문했을 때 그가 털어놓은, 오늘 소개할 와인의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그는 최근 내추럴 와인이 주목을 받고 있어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와인을 만들게 된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샤또가 소유한 밭 중에 3헥타르 규모의 Siberie(시베리)라는 밭이 있는데, 병충해의 피해가 없어 오래전부터 유기농 농작의 가능성을 보여왔다.

 

이 밭의 포도나무들은 대부분 1911년에 심어진 100년생 고목이라 수확량이 적다. 하지만 포도의 껍질이 두껍고 고도로 농축된 풍미를 지녀 양조자인 페드릭 매그네 Frédéric Maignet의 제안으로 2009년에 첫 빈티지 와인을 실험적으로 생산했다. 와인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로, 주요 거래처에서 관심을 갖고 주문을 해왔으며 반응이 예상외로 좋아 지금은 생산량을 늘려야 할 정도다. 각종 품평회나 미디어에서 자주 거론되어 좋은 평을 받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02.jpg(와인의 레이블은 보졸레 지역 출신의 디자이너가 제작했다.)

 

 

와인의 레이블은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자연스런 갈색 바탕에 불곰이 와인병을 들고 서있고 빨간 색으로 와인 이름이 심플하게 적혀 있다. 와인 이름인 Vin Sauvage à poil(뱅 쇼바지 아 포알)을 뜯어보면 ‘뱅’은 ‘와인’, ‘쇼바지’는 ‘야성/자연적인’, ‘아 포알’은 ‘누드/맨몸’을 뜻한다. 내추럴 양조 방식을 지향한 와인메이커의 의도가 잘 표현되어 있다. 웹사이트에는 불곰 커플이 눈 내리는 호수에서 낚시를 하다 와인을 낚아 마시는 내용의 재미난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뱅 쇼바지 아 포알 와인은 보졸레의 10개 크뤼 지역 중 하나인 레니에Regnié에서 나온다. 3헥타르 규모(축구장 3개 정도)의 포도밭, 시베리에서 자란 Gamay Noir가메이 누아 품종으로 만든다. 환경친화적으로 포도밭을 관리하지만 인증을 받은 것은 아니다. 양조 단계에서는 개입을 최소화하며 와인을 병입할 때 산화방지제인 이산화황을 넣지 않는다. 단, 발효 단계에서 시행하는 리몽타쥐(와인의 위, 아래를 섞어주는 작업)와 여과 작업은 내추럴 와인의 무간섭 원칙에는 벗어난다는 것이 글쓴이의 개인적인 견해다.

 

 

03.jpg(보졸레 크뤼 레니에 Régnié에 속한 La Siberie 시베리 포도밭)

 

 

레니에 크뤼에서 나온 와인은 과일 풍미가 도드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오래 숙성시켜 마시기보다는 빈티지로부터 2-5년 내에 꽃과 과일 풍미가 생생할 때 즐기는 것이 좋다. 이 와인 역시 과일향이 풍성하며 여기에 미네랄 터치가 더해진 순수한 와인이다. 와인평론가 Antonio Galloni 안토니오 갈로니는 이 와인을 “붓꽃, 작약, 체리 등의 풍미가 풍부하게 느껴지고 후추 같은 향신료 터치가 미각에 여운을 더한 균형이 잘 잡힌 와인”이라고 평했다.

 

이 와인은 수입사 아베크 와인을 통해 한국에도 수입, 유통되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도 시베리에서 온 와일드한 누드 와인을 한번 만나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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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_ 원정화(WineOK 프랑스현지특파원)

 


대학에서 경영학 전공 후 런던 금융지구 City에 위치한 투자 회사에서 11년 근무했다. 전세계 와인이 모이는 런던에서 식문화이면서 비지니스 문화인 와인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와인을 그냥 마시지 말고 알고 마시기 위해 다양한 와인 강좌에 문을 두드렸으며. 2009년 런던 WSET School 본원에서 Advanced Certificate(Level 3)를 취득했다. 하지만, 머리로만 아는 것인 아닌, 직접 산지를 방문하고 생산자와 다양한 와인을 많이 만나봄으로써 와인을 알아가고자 하는 여정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2010년 결혼과 동시에 북쪽으로는 부르곤뉴와 보졸레, 남쪽으로는 론지방, 와인산지로 둘러싸인 프랑스 리옹으로 건너오면서 와인인으로서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하는가 했지만 현재 국제 경찰 기구인 인터폴 금융부서에서 한국 여성으로서 농민적 근면성을 바탕으로 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1년 6개월간 휴직 중 프랑스 요리 학교 Institute Paul Bocuse에서 단기 직업과정을 수료하고 음식과 와인 매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10개 크뤼 보졸레에 열정을 담아 ‘ 10 크뤼 데이’행사를 기획 진행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리옹와인>의 '리옹댁'으로 활동 중이며 WineOK 프랑스 리옹 특파원으로 현지소식을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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