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몬테풀치아노 기행
 
 
 
글ㅣ사진 조 정 용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고도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는 유명한 관광지다. 그곳으로 와인 여행을 떠나면 토스카나의 풍성한 삶을 체험할 수 있으며, 그 고장의 풍물과 문화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약 두 시간 거리인 이 곳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네 가지 와인을 차례로 만난다. 이 네 가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여행자라면 몬테풀치아노가 주는 잉여의 재미까지 즐길 수 있다.
 
 
‘제우스의 피’로 만들어진 네 가지 와인
 
필자가 말한 잉여의 재미는 다름아닌 네 가지를 순서대로 줄 세우는 즐거움이다. 제대로 세우면 와인이 주는 지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 네 가지는 바로 키얀티Chianti, 키얀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 그리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이다. 이 순서로 와인의 맛이 점점 좋아지며 숙성력의 크리센도가 일어난다. 물론 가격도 점점 더 비싸진다. 이들은 각각 산지오베제로 만든 레드 와인이지만, 해당 지역의 토양, 해발고도, 미세 기후 등에 따라 사뭇 다른 와인으로 태어난다.
 
몬테풀치아노는 로맨틱한 흡혈귀 영화 <트와일라잇>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영화 속에 등장한 붉은 망토를 걸친 주민들의 모습은 마치 이 마을 레드 와인을 상징하는 것 같다. 애석하게도 흡혈귀들은 영화에서 와인을 마시진 않았다. 산지오베제가 ‘제우스의 피’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몬테풀치아노 와인은 속이 내비치지 않은 진한 빛깔에다 묵직한 힘과 긴 여운을 주는 등 맛이 아주 뛰어나, 예로부터 ‘고귀한 와인’이라 불렸다. 그래서 공식적인 와인 이름이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이하 비노 노빌레)’이다. 이름 속에 고귀함을 간직한 세계 유일의 와인이다.
 
이 이름은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 가장 긴 이름으로 유명하다. 초보자들은 와인 강좌에서 이 열두 음절 짜리 와인 이름을 외우는 데에만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익히기 위해 여러 차례 큰 소리로 복창을 한다. 또한 이 이름은 특정인이 이탈리아 와인 애호가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도 활용된다. 이름의 뜻을 제대로 알고 또 이름을 막힘 없이 발음할 수 있다면, 이탈리아 애호가로 인정받는데 손색이 없는 것이다.
 
 
고귀한 와인,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비노 노빌레는 고귀한 이름에 걸맞은 와인이지만, 품질에서 스며 나오는 약간의 허점을 보이는 탓에 토스카나 최고 와인의 자리는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강건하고 풍성한 입맛이 기운차지만 타닌이 너무 두드러지고, 우아한 기미가 약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일반 여행자들은 그런 몬테풀치아노를 오히려 더 오래 기억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나오는 생햄과 치즈가 수준급의 맛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고품질 치즈 브랜드 쿠구지의 치즈 팩토리도 이 곳에 있고, 이탈리아 최고의 맛돼지로 통하는 ‘친타 세네지’도 이 동네에서 많이 기른다.
 
몬테풀치아노는 와인에 있어서 이웃 마을 몬탈치노Montalcino에 열세를 보일 뿐, 다른 분야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둘 다 산성마을이지만, 몬테풀치아노가 몬탈치노보다 약 50미터 더 높아, 약 605미터에 둥지를 틀었다.
 
3.jpg
(사진)우스꽝스럽지만 오케스트라의 면모를 갖춘 디비노케스트라의 연주
 
 
이들의 악기 구성은 여러 종류의 유리 병, 양조장 물청소용 플라스틱 호스, 물동이, 오크통, 나무 망치 등등 매우 다채로왔는데, 이들 대부분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명랑한 멜로드와 리듬을 통해 기묘한 화음을 창출했다.그리고 우스꽝스런 악기들과 진지한 표정들이 이루는 묘한 앙상블 속에, 연주자와 감상자 모두 이 소박한 악기가 주는 음악적 유희와 세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이 조합은 또한 2011년에 재생 나무 인테리어 전시회를 선보이기도 했다. 재료는 용도 폐기된 오크통으로, 장렬하게 분해된 후 새로운 인테리어 소품(아이패드 받침대, 근사한 옷걸이, 의자, 탁자 등)으로 환생하였다.
 
 
2009 빈티지
 
몬테풀치아노 2009년이 올해 출시되었다. 주로 모래 토양에서 자라 무더위에 포도의 싱그러움을 간직하기 힘든 특성이 빈티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프랑스에서는 2009년이 세기적인 빈티지라고 떠들어도 이탈리아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땅과 기후가 다르기 때문이다.
 
와인전문가들은 40 가지 정도의 2009 빈티지 시음을 후딱 헤치우고는 2006 혹은 2007 빈티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비노 노빌레 2009는 오래 기억될 와인은 아닐진 몰라도, 풍부한 향기와 역동적인 질감이 장점이기 때문에 앞으로 약 5 년 이상 고기 파스타나 스테이크에 좋은 반려자가 될 것이다.
 
 
▶몬테풀치아노 관광 가이드
 
베스트 양조장 -폴리차노Poliziano, 보스카렐리Boscarelli, 아비뇨네지Avignonesi, 데이Dei, 발디피아타Valdipiatta
 
4.jpg
(왼쪽 사진) 폴리차노 양조장의 간판 와인인 아지노네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와인들 중에 손가락에 꼽히는 고품질을 자랑한다. (오른쪽 사진) 양조장 데이(Dei)의 지하 셀러
 
 
베스트 포토샷- 몬테풀치아노 성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 잠시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 본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면 동그란 돔의 교회가 보인다. 이름하여 산 비아지오 교회(Tempio di San Biagio). 이는 몬탈치노의 산탄티모 교회에 비할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오전이라야 광선을 제대로 받은 모습을 찍을 수 있다.
 
16.JPG
(사진) 산 비아지오 교회. 군데 군데 보이는 흰색은 미처 녹지 않은 눈이다.
 
 
베스트 커피 카페 폴리차노(www.caffepoliziano.it) - 커피 맛뿐 아니라, 식사도 근사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탁월한 전망이 압권이다. 1868년에 오픈한 유서 깊은 카페.
 
7.jpg
(사진) 역사적인 카페 폴리차노
 
 
베스트 치즈 가게 쿠구지 (www.caseificiocugusi.it) - 토스카나의 양젖 치즈 페코리노를 맛있게 만들어 판다. 숙성을 하지 않은 생 페코리노부터 해를 넘기고 넘긴 숙성 페코리노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갖추고 있다.
 
8.jpg
(사진) 쿠구지의 치즈와 함께 선보인 것은 마을 최고의 소시지들
 
 
베스트 레스토랑 아콰케타(www.acquacheta.eu) – 만화 주인공 같은 안경을 쓴 주인장이 보스 노릇을 한다. 아주 향토적이며 명랑한 식당이다. 혼자 들어가도 된다. 하지만 식탁은 공유한다.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몬테풀치아노의 향토 음식을 즐기므로 이방인이라도 금새 친구가 되는 곳이다. 예약은 전화로만 가능하다. 고기 메뉴가 대부분이다. 한번 들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는 전통 식당이다.
 
9.jpg
(사진) 토속 식당 아콰케타의 입구
 
 
베스트 아그리투리스모* 카발리에리노(www.cavalierino.it) - 밀라노 출신 주인이 넓은 대지 위에 유기농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잠자리까지 제공한다. 아침 식사에는 직접 사육하는 맛돼지 친타 세네지로부터 만든 생햄이 제공된다. 아주 맛이 좋아 몇 덩어리를 선물로 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그리투리스모란 농가 민박집을 일컫는다. 간소한 잠자리지만, 시골 정취를 맛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이탈리아 전역에 이런 아그리투리스모가 발달해 있다. 호텔에 비해 편의시설은 부족하지만, 먹고 자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글쓴이 _ 조정용
와인칼럼니스트, <올댓와인>과 <라이벌 와인>의 저자, 세계 일보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연재

- 저작권자ⓒ WineOK.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1. [독일] 모젤(Mosel)의 특급 포도밭

    독일 모젤Mosel의 특급 포도밭 글, 사진 _ 박찬준 와인법을 국제적으로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한다 게르만 식 와인법과 로마 식 와인법.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게르만 식 와인법을 따르는 대표적인 와인 생산국이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로마 식 와인법을 ...
    Date2012.05.21 글쓴이박찬준
    Read More
  2. [이탈리아]토스카나의 고도, 몬테풀치아노 기행

    토스카나 몬테풀치아노 기행 글ㅣ사진 조 정 용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고도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는 유명한 관광지다. 그곳으로 와인 여행을 떠나면 토스카나의 풍성한 삶을 체험할 수 있으며, 그 고장의 풍물과 문화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피렌체에...
    Date2012.04.27 글쓴이조정용
    Read More
  3. [크로아티아] 플라바츠 말리의 나라

    플라바츠 말리의 나라 크로아티아 글, 사진_조정용 크로아티아가 나라 이름인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잘 몰랐던 우리는 요즘, 지중해 최고의 관광지 두브로브니크를 배경으로 벌이는 고현정의 커피 광고를 보고 그 곳이 참 아름다운 동유럽 나라란 걸 알게 되었...
    Date2011.07.18 글쓴이조정용
    Read More
  4. [이탈리아]네비올로, 열정과 인내를 말하다

    네비올로, 열정과 인내를 말하다 글 조정용ㅣ 사진 조정용, 신동와인(위, Angelo Gaja) 알바(Alba,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의 소도시)에서 맛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순수하고 단단한 포도 품종 네비올로Nebbiolo에 대한 이야기는 타닌이란 무엇인가로 시작되...
    Date2011.06.21 글쓴이조정용
    Read More
  5. 십자가 있는 포도밭과 와이너리

    십자가 있는 포도밭과 와이너리 글, 사진 고재윤 금년 무더운 여름날 샹파뉴 중심 도시인 랭스(Reims)와 에페르네(Epernay)를 찾았다.에페르네에서 랭스에 이르는 지역은 `샴페인가도 (Les Routes du Champagne)`로 샴페인의 재료가 되는 포도가 재배되는 곳...
    Date2010.08.05 글쓴이고재윤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