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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표

비싼 와인이 다 맛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와인은 비싸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실 분이 많을 것이다. 고급 인력, 최첨단 시설과 새로운 오크 통들 그리고 장기 숙성으로 인한 보관 비용 등 오랜 숙성이 가능한 최고급 와인들은 실로 가격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높은 생산비용을 물론 좋은 빈티지나 보관 상태 그리고 유명한 와인 전문가의 평가에 따라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 수 있어 와인이 투자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샤또 레오빌 바르통(Ch. Leoville Barton)은 투자 가치 보다 즐거움을 주는 와인이다.

달리 말해 셍 쥘리앙의 일등급 와인에 버금가는 품질과 함께 투자자를 위한 가격이 아니라 소비자로 하여금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가격을 제시하는 와인이다.

전세계적으로 작황이 좋았고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는 해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2000년 빈티지를 예로 들어보면 이렇다. 다른 와이너리들과 같이 샤또 레오빌 바르통에서도 좋은 와인이 생산되었으며 로버트 파커는 이 와인을 극찬하며1 최상의 점수에 가까운 96점을 주었다.

2000년 특수, 그리고 파커의 인증. 다른 와인 생산자들에게는 와인 선물가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겠지만, 샤또 레오빌 바르통에서는 다시 한번 합리적인 수준에서 가격을 제시했다. 샤또 레오빌 바르통 2000년 빈티지 선물가는 99년 대비 10% 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샤또 레오빌 바르통 와인보다 못한 평가를 받은 곳들도 가격을 수배씩 인상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레오빌의 인상폭은 뉴스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파커는 그의 잡지 Wine Advocate을 통해 샤또 레오빌 바르통의 엔서니 바르통을 “성자(saintly)”라 칭하였고, 바르통과 친분이 있는 샤또 랭쉬바쥐의 장 미셀 카즈(Jean-Michael Cazes)는 샤또에 전화 걸어 성 바르통씨를 바꿔달라며 장난을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Leoville Barton을 이끌고 있는 Anthony Barton▶

앤서니 바르통은 자신의 포도원 운영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남 좋으라고 일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 와인의 가격이 합리적인 것은 이 사업을 장기적으로 할 계획이고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우리의 와인을 마시게끔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2

한번의 이익을 위해 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고객들이 떨어져나가기 일 수 이고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때 그에게 와인 생산자와 네고시앙, 와인 상인 그리고 소비자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관계인 것이다.

와인 상인과 소비자는 와인생산자에게서 좋은 와인과 가격을 기대하고 생산하는 와인 중개상과 소비자에게서 좋은 와인을 만들 자금을 얻게 된다. 이처럼 와인 생산자들과 와인 상인 그리고 소비자들 간의 관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작은 이윤에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샤또 레오빌 바르통의 오랜 역사와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1722년 27살의 젊은 나이로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 프랑스에 도착하여 3년 만에 와인 수출 사업을 시작한 젊은이가 있었고 그가 토마스 바르통(Thomas Barton)이다.

고향 땅보다 프랑스에 너무도 잘 적응한 그는 “French Tom”이라는 별명을 받게 될 정도였고 그가 모은 재산을 기반으로 그의 손자 휴 바르통(Hugh Barton)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비엔지/ 바르통 에 게스티에(Barton & Guestier)”라는 이름으로 네고시앙 사업을 시작한다.

그의 파트너가 된 다니엘 게스티에(Daniel Guestier)는 휴 바르통과 단순히 구두로 동업자가 되지만 둘 사이에는 깊은 신뢰가 쌓이게 되고 영국과의 전쟁으로 바르통이 프랑스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는 동안에도 게스티에는 둘 몫의 사업을 맡아서 한다.

한때는 휴 바르통이 일등급 와인 샤또 라피트(Ch. Lafite)를 구입하고자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그렇게 되었다면 샤또 라피트가 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지만) 휴 바르통의 와인 사랑은 1821년 구입한 샤또 랑고아(Ch. Langoa)와 1826년 구입한 샤또 레오빌 바르통으로 실현된다.

당시 프랑스는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팽배한 시대여서 영국인 바르통 가문에 대해서 시선들이 곱지 않았다고 한다. 급기야는 싸늘한 감옥에서 휴 바르통이 일년을 보내야 했는데, 잡히면 처형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내가 숨겨 들어온 옷으로 여장을 하고 도망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두 포도원에 정성을 쏟는 것을 막지 못했고 이 두 포도원은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1855년에 각각 3등급과 2등급으로 분류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

▲Ronald Barton

여러 세대를 건너뛰어 1902년, 로날드 바르통(Ronald Barton)이 이 두 샤또를 맡아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2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포도원은 황폐해질 데로 황폐해졌고, 전쟁이 끝날 때에는 레오빌 바르통의 포도원은 3/4로 줄어 있었다.

하지만, 로날드는 새로 포도 나무를 심기보다 있는 포도나무들을 다시 관리해 토양의 특성을 잘 담은 와인을 양조했다. 그 결과 샤또 레오빌 바르통의 1940년대와 50년대 와인을 다른 와이너리들 보다 특출한 맛을 담을 수 있었다.

그는 개혁보다 전통을 고집한 사람으로 1950년대 들어서 다른 와이너리들이 새로운 오크 통과 최첨단 기계와 양조 방법을 도입하는 것을 “실험이나 하는 사람들의 잘 모르고 하는 말들을 쫓는 것”이라며 생각하고 반대해서 결과적으로 샤또 레오빌 바르통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뒤쳐지게 했었다.

그의 조카 앤서니 바르통(Anthony Barton)이 진두지휘하게 되는 1986년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1930년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앤서니 바르통은 1951년 프랑스로 와 삼촌 밑에서 와인을 배운다. 그가 일을 배우는 동안 삼촌 로날드는 샤또들의 운영이 어렵게 되자 그 동안 가업으로 이어져 온 네고시앙 사업인 “바르통 에 게스티에”를 씨그램(Seagram)에 1958년 매각한다.

앤서니는 씨그램사에서 몇 년간 더 일을 배운 후 자신의 네고시앙 사업을 시작하고 이름을 “Les Vins Fins Anthony Barton”으로하고 오늘날까지 딸과 함께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샤또의 운영에 있어서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을 1986년. 전통을 고수하던 삼촌을 답답하게 여기던 그이기는 했지만, 그의 혁신 또한 전통을 기반으로 한 그런 것이었다.

샤또의 운영을 맡게 된 그는 당시 한창 도입 중이던 온도 조절이 되는 스테인레스 스틸 통으로 대체 할까도 고려했지만, 와인의 전체적인 맛을 위해서는 오크의 사용이 중요했고, 이것을 이용하면서도 온도 조절이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나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렸다.

그의 예상을 적중했고 오늘날에도 샤또 레오빌 바르통에서는 200 헥토리터 들이 오크 통에 와인을 양조한다. 다른 샤또들에서 포도송이를 잘라주어 전체 소출량을 조절하는 방법과 달리 겨울에 가치치기를 많이 해 처음부터 포도송이가 많이 열리지 않게 하는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앤서니 바르통에 의하면 여름에 포도송이를 반으로 줄여주어도 결국 대부분이 수분인 남는 영양분들이 포도송이가 크게 열리게 하고 총 수확량은 절반 보다 많은 65%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 수확량을 제한할 목적으로 많은 와이너리에서 도입하고 있는 그린 하베스팅(green harvesting)보다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던 가지치기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Ch. Leoville Barton의 입구

이렇게 전통을 고집함과 동시에 포도의 선별 과정을 보다 엄격하게 했고, 숙성에 사용되는 오크 통의 사용을 늘려 양조하는 그랑뱅(Grand Vin)으로 양조되는 것의 절반은 새로운 오크 통에서 숙성시키고 있다.

근래에는 새로운 파지기(destemmer)와 압착기(presser)을 들여와 세심한 블랜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밖에도 샤또 레오빌 바르통에서는 샤또에 소속된 양조자를 고용하기보다는 시간을 정하고 방문하여 관리해주는 양조 컨설턴트인 쟈크 보스노(Jacques Boissenot)를 기용하여 와인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와인 양조와 포도 재배에서의 혁신을 이야기했지만 신기하게도 샤또 레오빌 바르통에는 양조장이 없다. 샤또 레오빌에는 포도원과 샤또 건물 그리고 주변의 멋진 숲과 정원 밖에 없다.

처음부터 샤또 레오빌 바르통의 와인들은 샤또 랑고아 바르통의 양조장에서 샤또 랑고아 와인과 같은 방식으로 양조되었다. 양조장에 도착한 각 포도원의 포도들은 5일간 발효되며, 2주간의 침용 기간을 거쳐서 씨와 껍질 그리고 포도즙이 분리된다. 그리고 감산 발효가 있은 수 20개월 동안 오크 통에서 숙성된다.

▶Ch. Langoa Barton의 전경


두 포도원은 같은 자갈 토양과 점토질의 하층토를 가지고, 재배하는 포도 품종의 비율도 동일하다. 까베르네 소비뇽 72%, 메를로 20% 그리고 까베르네 프랑 8%. 하지만 랑고아 바르통 와인의 맛이 레오빌 바르통 보다 가볍고 오랜 숙성 기간이 없이도 그 특성을 쉽게 들어낸다고 한다.

품질면에서 실제로 레오빌 바르통이 2등급이고 랑고아가 3등급인 것이 맛에서 증명된다고 한다. 하지만 둘 중 어느 한 와인도 다르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바르통은 말한다. 그의 와인은 블록버스터 와인일 필요 없다. 샤또 레오빌 바르통은 맛의 섬세함과 우아함을 갖기 때문이다.

▲ 3등급 와인, Ch. Langoa Barton

1855년 보르도 와인들의 등급이 매겨지던 그때와 같은 가문에 남아있는 와인너리는 고작 셋에 지나지 않는다. 샤또 디켐. 샤또 무통 롯드쉴드 그리고 샤또 랑고아 바르통과 레오빌 바르통. 이중 샤또 레오빌 바르통은 오랜 시간과 경험을 통해서 직접 와인 생산자, 상인 그리고 와인을 즐길 줄 아는 와인 애호가, 소비자가 되어 보면서 진정 최고의 와인이 갖추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와인의 맛의 균형과 장기 숙성 가능성이 맛의 척도이긴 하고 가격의 결정에 중요한 기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와인을 진정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아닌가 싶다. 시대의 유행이나 눈앞의 이익을 쫓지 않고 진정 즐길 수 있는 맛을 추구한 샤또 레오빌 바르통. 앞으로도 그리고 오래도록 지금의 맛과 멋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길 바란다.

_이석기_


1. Absolutely spectacular from bottle, but frightfully closed and backward, with massive power and structure, the saturated purple-colored 2000 Leoville Barton is one of the greatest wines ever made at this estate. The wine has smoky, earthy notes intermixed with graphite, camphor, damp earth, jammy cassis, cedar, and a hint of mushroom. Enormous, even monstrous in the mouth, with tremendous extraction, broodingly backward, dense flavors, and copious tannins, this should prove to be one of the longest-lived wines of the vintage and one of the most compelling Leoville Bartons ever made. … Anticipated maturity: 2015-2040.

2. “ I’m not a complete philanthropist. If I keep prices at a reasonable level it’s because I’m in the business for the long haul and because I want people to drink my wine” (“Shining Example”, Decanter. Jan. 0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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