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는 시음회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매년 하반기에 열리는'UGCB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는 와인업계 종사자들의 최대 축제로 불리어도 무방할 정도로 매년 뜨거운 관심과 참여 속에 진행되고 있다.
올해 12월에 개최된 UGCB 시음회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2009년에 이어 세기의 빈티지라 점쳐지는 2010 빈티지에 대한 기대감, 올해로 10회를 맞는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 40주년을 맞은 보르도 그랑 크뤼 연합과 신임회장 올리비에 베르나르의 첫 인사까지. 시음회 안팎으로 뜨거운 열기를 보였던 본 행사는 역대 최대 규모인 107개 샤토가 참여하며 더욱 뜻깊었다.
2010년에 무슨 일이?
와인오케이닷컴은 앞서[세계 유명 와인평론가들의 2010 보르도 빈티지 재평가 결과]와 [와인전문가 김 혁의 2010 보르도 빈티지 시음기]를 통해 2010년 빈티지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 바 있다. 특히 첫 번째 글은 와인 평론가들이 엉 프리뫼 이후 2년 뒤인 와인이 병입되는 시점에서 재평가한 2010년 보르도 빈티지에 관한 글이다. 와인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은 2009년 빈티지 재평가 당시 9개 와인에 100점을, 2010년 빈티지 재평가 때에는 총 11개 와인에 100점 만점을 부여했다. 한편,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퐁테 카네, 오 브리옹, 라투르, 보세주르, 페트뤼스, 파프 클레망, 르 돔, 라 비올렛트, 슈발 블랑, 르 팽에 100점을 매겼다. 이 내용만으로 추측해 보자면, 2010년 빈티지는 2009년 못지 않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해의 빈티지 2009 VS 달의 빈티지 2010
2010 보르도 그랑 크뤼 시음회에서 만난 샤토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2010년 빈티지에 거는 기대가 2009년 못지 않다는 점이다. 각 샤토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할 때 모두 같은 의견은 아니지만, 성공적인 빈티지로 평가 받는 2009년 분위기를 2010년이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자면, 2009와 2010 모두 기록적인 알코올 농도와 타닌을 지니나, 2010년 빈티지가 보여주는 좀더 높은 산도는 장기 숙성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두 빈티지의 차이는 단연 기후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가장 크다. 2009년에는 따뜻하고 건조한 여름과 가을을 통해 풍만하고 숙성된 와인이 탄생했다면, 대체로 낮은 온도와 비교적 추운 저녁이 이어진 2010년에는 더 높은 산도를 얻었다. 이로 인해 타닌은 더욱 드라이하고 산은 거칠게 느껴진다. 그러나 시음회에 참여한 전문인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성공적인 빈티지 2009의 출현이 2010 빈티지에 기대감을 실어주었지만, 높은 산을 동반하여 장기 숙성이 가능한 2010은 지금 시음하기에 그 가치를 적절히 평가하기가 어렵고 자칫 가볍고 균형 잡히지 못한 밸런스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 페삭-레오냥 화이트!
시음회에서 압도적으로 호응이 좋았던 지역은 페삭-레오냥(Pessac-Leognan)이다. 페삭 레오냥은, 레드 와인과 함께 탁월한 품질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데, 특히 2010 빈티지의 페삭 레오냥 화이트 와인은 더욱 눈 여겨 볼만하다.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은 이미 이 지역 화이트 와인에 대해 성공적인 빈티지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높은 산도가 강렬하고 거친 드라이 화이트 와인에 좋은 영향을 끼쳐, 최고의 해로 평가 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2009년에는 따뜻한 기후 덕분에 꿀과 부드러운 열대 과일 풍미가 돋보이는 마시기 편하고 부드러운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었다면, 2010년 빈티지는 청량한 산과 더불어 라임과 감귤류의 상큼한 풍미를 지닌다. 대표적으로 샤토 카르보니유(Chateau Carbonnieux)는 쌉쌀한 배와 살구 향, 레몬 터치의 산이 완성도 있는 균형감을 보여주며, 도멘 드 슈발리에(Domaine de Chevalier)는 말린 무화과와 자몽 향이 새콤달콤한 사탕 같은 매력을 보인다. 샤토 오베르데 또한 화이트 계열의 꽃 향 뒤로 짜임새 있는 오렌지의 말린 향, 샤토 말라르틱 라그라비에르(Chateau Malartic-Lagraviere)는 같은 지역 와이너리에 비해 둥근 질감과 풍성한 과일 향을 선보인다.
지역 별로 살펴 본 2010 빈티지 특성
2010년의 기후적인 특징 덕분에,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을 주로 사용하는 생테밀리옹 지역의 경우 중후하면서도 거친 타닌, 도드라지는 산도를 보여준다. 샤토 피작(Chateau Figeac)은 거친 타닌과 입안을 가득 채우는 질감이 안정적이었고, 샤토 그랑 맨(Chateau Grand Mayne)의 경우 굳건한 바디와 파워풀한 타닌의 균형이 조화로웠다.
포므롤의 경우 생테밀리옹보다 메를로의 비중이 높아 보다 신선한 산과 부케가 잘 드러났다. 샤토 가쟁(Chateau Gazin)은 산의 밸런스가 매우 훌륭해 잠재력을 엿볼 수 있고 과일 풍미가 돋보인다.
물리 엉 메독은 석회암과 자갈밭 토질에서 느껴지는 미네랄 풍미를 보다 섬세하고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다. 샤토 샤스 스플린(Chateau Chasse-Spleen)은 다소 도드라지는 산미가 아쉽지만 화려한 꽃 향이 강렬하다.
오 메독은 개화기에 해가 길었고, 특히 여름이 길어 포도알맹이가 알차고 조밀하게 잘 익을 수 있었다. 숙성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모습을 지니는데, 샤토 카망삭(Chateau Camensac)에서 이런 결과가 잘 보여진다. 코 안에 퍼지는 향이 적당한 볼륨과 균형감을 드러낸다.
마고는 전체적으로 풀 바디의 한결 가벼워진 타닌, 산과의 균형은 한쪽으로 치우치며 대체로 짧은 여운을 선사한다. 샤토 브란 캉트냑(Chateau Brane-Cantenac)은 다른 샤토들에 비해 입안을 강하게 조이는 타닌의 힘이 느껴지고, 샤토 지스쿠르(Chateau Giscours)는 산미가 치우쳐 균형 잡히지 못한 모습이다. 반면 샤토 시랑(Chateau Siran)의 경우 밝고 경쾌한 마고 스타일로, 섬세하고 우아한 메를로의 캐릭터가 돋보인다. 샤토 로장 세글라(Chateau Rauzan-Segla)은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바디와 함께 둥근 질감의 타닌이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포이약의 2010년은 온난한 기후에 일조량이 최적의 상태여서 토양이 받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던 해이다. 샤토 바타이에(Chateau Batailley)는 2009의 경우 건조한 여름 덕분에 완벽한 균형의 포도를 얻었다면, 2010에는 상대적으로 습한 기후 때문에 즙이 많고 산도가 높은 포도를 수확했다. 샤토 클레르 밀롱(Chateau Clerc Milon) 처음에 집중력 있는 산도를 보이다가 점점 떨어지는 모습이다.샤토 그랑 퓌 라코스트(Chateau Grand Puy Lacoste)는 부드러운 여운의 타닌과 바닐라 향의 오크 터치를 남긴다. 2009년 빈티지는 산미가 약간 부족한 반면 2010년은 산도와 알코올 농도가 짙고 균형이 잘 잡혀 있어, 와이너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빈티지로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샤토 피숑 롱그빌 콩테스 드 라랑드(Chateau Pichon Longueville Comtesse de Lalande)는 2009년의 경우 밝고 따뜻한 느낌과 잘 매칭되는 부드러운 타닌이 특징이라면 2010년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잠재력이 높아 숙성 정도도 더 깊고 산도 더 강하다고 한다.
생테스테프는 2009년의 경우 보기 드물게 잘 익고 풍부한 과즙의 포도를 수확하여 클래식하고 우아한 와인을 생산한 반면, 2010년에는 2009년과 비슷한 산도를 보이나 보다 집중력과 힘을 갖춘 신선한 와인이 생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