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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_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AIS 소믈리에)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Osservatorio Aidaf- 유니크레디트은행과 보코니 대학 공동연구자료) 이탈리아 와이너리의 54%는 가족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들 와이너리는 대체로 가장이 운영과 감독을 맡고 부인이 재무를, 자녀가 양조나 판매를 담당하는데, 위 자료에 의하면 이러한 형태는 와이너리 경영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가장이 하는 사업을 소매를 걷어붙이고 도와주지 않을 가족도 있을까 싶지만 비니탈리에 오면 이러한'패밀리 파워’는 평범한 현실에 불과하다.
 
아버지가 고객 상담을 하고 어머니는 안주거리를 내놓고, 양조학교에 다니는 자녀는 관람객들에게 와인을 따라주거나 여러 가지 질문에 성심껏 응답하는 장면을 여기저기에서 목격할 수 있다. 누군가 어려운 질문을 던지면 가장이자 사장인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답변하는 성의도 보인다. 이렇게 똘똘 뭉친 가족제일주의는 이탈리아 남부의 와인 생산자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남부의 뜨거운 태양과 바닷바람을 머금고 태어난 남쪽와인들이 전시된 곳은 비니탈리 마니아들의 끝없는 호기심으로 문지방이 닳는다.
 
마르케(Marche) 주 전시관은 전속 모델이었던 더스틴 호프만과 작별하고, 대신 녹색으로 부스색을 통일해 베르디끼오, 파세리나, 페코리노 등의 토착품종으로 만든 화이트와인과 라크리마, 몬테풀치아노, 산조베제로 만든 레드와인을 진열해 녹색 대지임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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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주도인 라지오(Lazio) 주는 에스트! 에스트!! 에스트!!! 몬테피아스코네(Est! Est!! Est!!! di Montefiascone)와 프라스카티(Frascati) 같은 화이트와인 산지로 알려져 왔지만, 2000년 이상의 재배 역사를 가진 체사네제 다필레 품종으로 만든 체사네제 델 필리오(Cesanese del Piglio) 레드와인으로 찬란했던 로마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하고 있다. 로마남부의 응회암지대에서 자란 말바지아와 트레비아노 품종으로 만든 자가로로Zagarolo, 벨로네 품종으로 만든 넵투노, 프라스카티 와인의 신선한 맛은 마치 트레비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물기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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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잔을 들고 있는 아폴로 신 동상이 반갑게 관람객을 맞는 캄파니아 주 전시관은 그레코 디 투포, 피아노, 파랑기나 등 기라성 같은 화이트와인이 소렌토 바다가 주는 풍만함을 선사했고, 타우라시, 아리아니코, 피에디 로쏘, 샤시노소 같은 캄파니아 레드와인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베수비오 화산의 숨은 힘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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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는, 식전주인 마르살라, 안소니카, 카타라토, 까리칸테 같은 화이트와인, 네로다볼라, 네렐로 마스카레제, 네렐로 카프쵸의 토착 레드와인, 그리고 판테레리아 파시토에 이르는 완벽한 구색으로, 바다와 화산 그리고 평지가 만들어내는 정상급 와인산지임을 과시했다.
 
한국에서 카리냐노와 카노나우 와인으로 알려진 사르데냐 섬은 이탈리아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여름 휴양지로 손꼽히는데, 이 때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와인은 관광객들의 수요를 충족시켰던 지역와인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몇몇 생산자의 노력으로 한국 와인샵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띄게 되었다. 사르두스 파터(Sardus Pater) 와이너리가 위치한 안티오코 섬은 필록셀라의 파괴적인 손길이 피해갔던 곳으로, 대목이 아닌 예전의 뿌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카리냐노 품종 포도나무가 재배되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수령이 150년이나 된다. 이렇게 오래된 골동품 같은 포도가 만들어 낸 드라이 레드와인과 파시토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비니탈리 관람객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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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탈리 기간 중 열리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눈 여겨 볼 만한데 이 중 VIVIT는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했다. VIVIT는 VIgne(포도밭)- VIgnaioli(포도재배농부)-Terroir(토양, 기후)의 약자로, 세계적으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유기농, 바이오 다이나믹 와인에 집중한 행사이다. 이 행사에는 총 120개의 유기농 와이너리가 참여해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한 와인을 소개, 홍보하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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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소믈리에이자 와인전문가인 루카 마로니(Luca Maroni)씨가 비니탈리 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Trendy Oggi Big Domani”에는 30개 이상의 와이너리가 참여해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이 행사는, 마로니씨가 엄선한 신생 와이너리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는 알기 쉽고 명쾌한 화법으로 품질 대비 가격이 좋은 와인을 고르는 비법을 소개해 관객의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좋은 와인은 음식과 함께 하면 진가를 발휘한다. 이때 함께하는 음식의 품질이 인증된 것이라면 금상첨화다. 최상품 식자재를 선보이는 식품전시회 “Sol & Agrifood” 가 이탈리아의 340여 개 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전시장 규모(3,355평방미터), 참여업체 수 등은 와인과 비교할 수 없으나,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객이 늘어나고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비니탈리 축제에서의 그 비중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전시품목으로는 수제 맥주, 파스타, 각종 소스, 올리브 오일, 리조, 발사믹식초, 육류와 햄(프로슈토), 치즈, 커피, 초콜릿, 시리얼 등 다양하다. 원래 이 전시회는 올리브오일 생산업체에만 개방되었으나 다른 식품분야가 추가되어 일반 농산물전시회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원래의 창립취지는 남아있어, 올리브오일은 본 행사의 홍일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참가업체의 40%인 135개 업체가 올리브오일 생산자이다. 부스마다 다양한 오일을 와인 잔에 담아두어 관객들이 올리브오일 향을 맡을 수 있게 배려했고 한쪽에는 오일에 적신 빵을 시식할 수 있게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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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스들도 목격할 수 있었다. 마르케 주의 어떤 올리브오일 생산자는 부스 전체를 마치 올리브나무 밀림처럼 꾸몄고, 나무 아래에 테이블을 놓고 각종 올리브오일 병을 놓아두어 방문객들이 부담 없이 원하는 제품을 시음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올리브 오일 Self –Tasting Area가 마련되어, 올리브오일 경연대회(Sol d’Oro)에서 입상한 제품을 자유롭게 시음할 수 있게 해놓았다. 또 한 켠에 준비된 세미나실에는 매 시간 이탈리아의 여러 주에서 온 오일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올리브오일 설명회와 시음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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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4월 8일 열렸던 “리구리아 주, 토스카나 주, 사르데냐 섬의 올리브오일 비교 시음회”는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 시음회에는 주최측이 개최한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올리브오일들이 소개되었는데, 일반인들이 올리브오일에 좀더 다가갈 수 있었던 유익한 기회였다. 가장 먼저 등장한 올리브오일은 리구리아 산으로, 타제스카(taggiasca), 라바니나(lavagnina), 라졸라(razzola), 피뇰라(pignola)를 혼합하거나 타제스카 품종 100%로 만들었다. 옅은 푸른빛이 도는 노란색에 섬세한 과일 향이 나며 은은하게 매운 맛과 쓴 맛이 입안 가득 조화롭게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두 번째 시음한 오일은 사르데냐 산으로 보사나(bosana), 세미다나(semidana), 톤다 디 칼리아리(tonda di cagliari) 품종을 사용했고, 옅은 녹색을 띠며 풀 향과 골든 사과, 아몬드, 토마토 향이 났다. 첫 맛은 부드러웠으나 이윽고 리구리아 산보다는 좀더 강한 쓴 맛과 매운 맛이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시음한 오일은 토스카나의 마렘마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올리바스트라 세쟈네제(olivastra seggianese)’ 100%로 만들었고, 이전의 두 올리브오일보다 향이나 맛이 강했다. 짙은 녹색이 돌며 아티초크, 아몬드, 덜 익은 바나나, 여러 가지 향신료 향이 선명하고 강해서 한 번 맡으면 모두 분별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코로 맡은 향기를 입에서도 재확인할 수 있었고 코가 시큰할 정도로 매운 맛과 뒤에 남는 쓴 맛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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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명 커피회사들의 다양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시음할 수 있었던 “Coffee Experience”와 “ Costa Doro 코스타 도로 커피” 부스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Cooking Show Area에서는 주 별로 유명 셰프가 등장해 관객 앞에서 자신들의 요리법을 공개하고 직접 요리한 음식을 시식하는 등 관객들과 교류를 나눴다. 매회마다 모든 좌석이 매진되는 바람에, 일부 관람객들이 예약담당자에게 공석이 생기면 문자로 통보해달라고 사정하는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비니탈리는 24시 축제이다. 전시장을 다 돌아본 후에도 뭔가 여운이 남고, 아쉬우면 곧장 베로나 중심가에 있는 '피아짜 브라(Piazza Bra) 광장’으로 직행하면 된다. 이 광장은, 로마시대에 세워졌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꼿꼿하게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아레나(콜로세움)로 유명하다. 광장 한편에 있는 '그란 과르디아 Gran Guardia 궁’에서는 “Vinitlay for you”라는 장외축제가 밤 늦게까지 열린다. 낮에 못다한 와인, 올리브오일, 음식과 잔잔한 라이브뮤직의 마리아주를 시도해보는'나이트 비니탈리’에 참여해보는 것도, 와인축제를 멋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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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_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AIS 소믈리에,
이탈리아 와인 유학 및 여행 전문 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 근무.
( baeknanyoung@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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