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에 대하여


글 _ 정휘웅(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얼마전 국내에서 인문학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공전의 히트를 친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사실 필자는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수많은 공정성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진일보하기 위한 하나의 고통스러운 절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늘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해대는 저자가 사회의 공정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의아해 하겠지만, 필자의 전공은 인지과학이고, 그 이전에는 정치학이다. 정치학의 근간은 경제학이며, 경제학의 근간은 철학과 수학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주 만물의 비밀을 밝히고 있는 물리학 역시 그 근간은 보게 되면 철학과 수학이라는 것이다. 이 학문들이 던지는질문은 간단하다. 바로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결과를 보고 이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가장 난해한 것 중의 하나는, 이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데 있어 “모든”이냐 혹은 “어떤”이냐를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과학은 참과 거짓을 관찰과 수학의 힘을 빌려서 풀려하고, 인문은 이것을 관념의 세계로 넘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자. “와인은 과학인가, 인문인가?”(물론 침대는 과학이다. 틀림없다.) 여기에 대한 질문은 아마도 지금 시점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데 있어서 늘 어떤 정확한 “기준”을 원한다. 그리고 그 기준이 공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늘 논쟁과 화두를 던진다. 과연 우리는 이 모든 이슈에 대해서 공정한가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는“인간은 공정한가 아닌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던지게 된다. 적어도 필자의 생각에 인간은 공정하지 않다. 숫자는 인간을 통계학의 범주에 던져넣어 표준편차의 범주 이내에 묶어두려 하고, 심리학은 인간을 실험용 쥐 마냥 측정하곤 하며, 다시 숫자를 들이밀어 통계학적인 경향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에 따라서 인간의 성향이 고정점 편이(Anchoring Bais)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이 고정점 편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세상이 바로 와인일 것이다. “고정점 편이”란 어떤 한 사람이 “이러이러하다”라고 정의를 내리면 그 정의가 기준점이 되어서 전체의 의견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고정점에 대한 설득의 기제가 더 높으면 높을수록 이 고정점 편이는 강해진다.예를 들어와인 시음에 대한 고정점 편이는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와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매기는 평점에의존하여 자신이 어떤 특정한 행동 경향을 보이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가령 어떤 와인 숍에 갔을 때, 로버트 파커의 점수가 95점인 와인 1병이 5만원에 팔리고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이 와인은 엄청난 와인일 것이라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필자도 이 고정점 편이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고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파커는 공정한가” 그리고 “와인 스펙테이터는 공정한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마셔본 다음 그 맛의 기준이 우리의 생각을 벗어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에 대한 공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물리학에서는 우리가 100%라고 믿어왔던 모든 진실마저도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그 진실의 저 너머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또다른 진실이 존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실험의 힘으로 극복하려 노력하고, 인문학자들이나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인간의 사고에 의한 논리의 힘, 그리고 여러 정황으로써 증빙하고자 한다.

파커가 공정한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공정한지는 어쩌면 인간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전제 하에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필자의 생각에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공정할 수 없다. 아마도 한 집단 내에서는 공정성의 경향을 보일 수 있겠지만 만물에 대해서, 모든 것에 대해서 공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파커나 와인 스펙테이터에 대해서 고정점 편이를 뛰어넘는 공정성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것에서 발생하는 고정점 편이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밤 와인 한 잔 하면서 고민할 거리가 또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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