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도르 김주용 대표
“국내 와인샵, 위기상황 대처능력 높여야”
국내 최고의 와인 샵, 세브도르
한국의 와인문화 성장은 와인 샵의 성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와인 시장이 성장하던 초기에 주류백화점과 와인수입사의 직영 와인 샵들은 소비자에게 와인을 공급하는 주요 경로였고, 이러한 샵의 증가는 곧 시장의 성장을 의미했다. 경제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와인시장은 성장을 거듭했으며, 세브도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인업계가 한창 호황이던 때, 세브도르의 매출은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고 세브도르 명동점도 문을 열었다. 김주용 대표는 특히 와인 포트폴리오 특화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고, 세브도르가 갖춘 와인의 구색은 가격뿐만 아니라 다양성 면에서도 와인애호가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이러한 세브도르의 성공을 바탕으로 ‘와인 샵 창업 및 성공 노하우’를 담은 책을 내려고도 했다. 그만큼 세브도르는 국내 와인 샵들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객 관리만큼 중요한 직원 관리
“대형 마트가 기성복을 파는 백화점이라면, 세브도르는 맞춤형 고급 양복을 파는 테일러라고 보시면 됩니다.”
세브도르가 국내 최고의 와인 샵이라 불리는 데에는, 와인 포트폴리오뿐만 아니라 김주용 대표의 철저한 고객 관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세브도르의 고객 관리는 철저한 직원 관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면 이는 곧 고객에 대한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브도르의 직원이라면 단골 고객의 와인에 대한 취향과 자주 방문하는 시기 등을 꿰고 있어야 한다. 다시 방문한 사실을 알아주고 취향을 기억해서 그에 딱 맞는 와인 한 병 추천해 준다면 고객 입장에서도 고마운 일이다.
와인의 종류만큼이나 고객의 취향 또한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입맛을 지닌 고객들 각각에게 적합한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에 대한 와인 교육은 필수적이다. 직원들이 와인을 제대로 익혀야 고객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고 그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 응대의 질을 높이기 위해 김주용 대표가 실시하는 직원 교육은, 웬만한 기업의 중역들이 받는 수준만큼 심도 있고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세브도르의 위기 타계법
계속해서 성장가도를 달리던 와인시장은, 불행하게도 3년 째 계속되는 경제 위기 앞에서 안전하지 못했다. 경제 위기는 와인업계에 칼바람을 몰고 왔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와인 샵과 레스토랑들은 매출 부진과 폐업을 겪었다.
김주용 대표는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유연성을 들었다. 경제 위기라는 폭풍우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그는 세브도르의 몸집을 줄이고(와인 비스트로 세브도르를 닫았다) 내실을 더욱 다져나갔다. 따라서와인 비스트로 세브도르의 경우 ‘문을 닫았다’라는 것보다 ‘다운사이징’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고객 관리에 더욱 중점을 두고, 세브도르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수한 와인들을 포함하여 와인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나갔다.
경제 위기로 와인시장의 성장이 잠시 주춤해 보이는 것 같지만, 김주용 대표는 와인이 한국인들의 삶의 일부분으로 이미 자리를 잡은 것 같고, 과거와 같은 급진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와인소비자층을 세분화하여 각 카테고리에 맞는 구체적인 마케팅 전술로 공략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수입사는 와인을 들여올 때부터 각 와인의 소비층을 구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에 맞는 유통 경로로 와인을 공급해야 합니다. 사실 국내에서는 이러한 토대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것 같아요.”
이 때문에 김주용 대표는 세브도르의 와인 포트폴리오가 특별해야 한다고 믿는다. 쉽게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와인보다는, 특별하게 만들어져 희소하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소비자들이 원할 만한 와인들을 갖춤으로써 세브도르를 차별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와인 샵이 아니다
김주용 대표는 시장이 다각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매년 주기적으로 홍콩이나 프랑스 등을 방문하여 넓은 시각으로 시장을 파악하고자 한다. 시장의 범위를 국내로 한정시켜서는, 서로 눈치보기에 바쁘고 제 살 깎아먹는 샵들 사이의 경쟁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시야를 넓히면 와인업계의 생태계가 제대로 파악된다고 말하는 김주용 대표, 그가 요즘 들어 염려하는 현상은 수입사-유통-소비자의 삼각 구도에서 유통의 거대화가 가져오는 생태계의 불균형이다.
이미 상당량의 와인 판매가 대형 마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함께, 그는 지역 상권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super-supermarket)의 등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만약 기업형 슈퍼마켓까지 와인 유통 및 판매 구도에 적극 가세하게 된다면, 와인 샵의 존속 여부는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다.
김주용 대표는 한국 와인업계의 생태계는 아직 미숙하고 경쟁력이 약하며 불안정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지금의 와인업계에서 필요한 것은 상호 협력하는 체계이며, 이는 구성원들의 유대감과 결속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급격하고 예측 불허한 시장변화에 대해 구성원들이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협력 체계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는 김주용 대표의 메시지는, 서서히 데워지는 물 속에서 죽음을 예견하지 못하는 개구리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