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음식 궁합에도 논리가 있다
글 엄경자 l 사진 에스터하지 와이너리
와인과 음식 사이에는 상극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찰떡 궁합인 경우도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한식과 전통주의 궁합에서 예를 찾아 보자.
뼈가 연골로 구성되어 있는 연골 어류인 홍어와 탁주의 결합인 ‘홍탁’은 너무나 잘 알려진 찰떡 궁합이다. 홍어는 체내에 질소 화합 물질인 요소, 암모니아, 트리메틸아민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발효시키면 화장실 냄새와 같은 암모니아 성분이 농축이 된다. 막걸리의 탁주와 발효된 홍어를 찰떡 궁합이라 하는 것은, 발효된 홍어의 암모니아(알칼리 성분)를 중화시키는 유기산(산성 성분)이 탁주에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궁합의 뒤에는 항상 논리적 이유가 있다.
생선과 레드 와인…노? 노. 노!
필자는 생선과 레드 와인을 좋아한다. 그래서 ‘뭐 아무려면 어때’ 하면서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즐기는 편이며 본인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구라도 수산물과 레드 와인의 궁합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와인의 성분과 식재료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육류에는 레드 와인이, 생선에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 전형적인 좋은 궁합이다. 실제로 입 안에서 음식의 단백질은 레드 와인이 함유하고 있는 타닌(Tannins)의 쓴 맛과 떫은 맛(Astringency)를 줄여주고,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의 신맛을 줄여준다.
일반적으로 수산물과 레드 와인을 권장하지 않는 것은, 생선과 함께 했을 때 레드 와인에서 비린 맛과 쓴 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또는 드라이한 쉐리주는 고등어나 연어에 어울리는 동반자이다.
일반적으로 염분을 많이 함유한 수산물과 레드 와인을 같이 먹게 되면 레드 와인 속의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과 소금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레드 와인의 쓴맛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하므로 가급적이면 서로 만나는 것을 피하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소금에 절인 굴비, 간 고등어, 간장 게장, 젓갈류 등의 수산물에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함유된 레드 와인을 마시면 상극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소금성분이 많이 함유된 음식에는 타닌이 적으며 과일 향이 풍부한 화이트 와인을 추천한다.
왜 생선에 레드 와인을 마시면 비린 맛이 날까
음식과 와인의 궁합은 지극히 주관적인 맛 감각의 경험에 근거한다. 필자의 경우도 항상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과 아로마를 근거로 음식과 와인의 궁합에 대한 기호를 찾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산물과 레드 와인은 상극’이라는 통념에 대해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생선과 레드 와인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왜 그러한지, 왜 일반적으로 생선과 화이트 와인의 궁합이 맞는지에 대해 명쾌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레드 와인의 어떠한 성분이 생선과 충돌하는지, 입안에 남아 있는 유쾌하지 않은 비린 맛은 어떤 원인 때문인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
메르시앙(Mercian Corporation)이라는 일본의 대형 주류 회사가, 2009년 9월에 발간된 `농식품 화학저널(Journal of agriculture and food chemistry)’ 에 ‘수산물과 레드 와인의 부조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과학적 증명을 바탕으로 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26가지 화이트 와인과 38가지 레드 와인을 준비하여 모든 와인을 가리비와 매칭하여 맛 평가를 하였다. 비린 맛이 느껴질 때 마신 와인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비린 맛의 강도와 와인의 철 이온(ferrous ion)의 강도 사이에서 깊은 상호 관련성을 찾았다. 게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비린 맛의 강도는 와인에 철 이온을 추가하였을 때 증가하였다. 즉 비린 맛의 근본적인 이유는 와인의 철분 함량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약 2 mg/l 이상의 철분이 함유된 와인과 함께 마셨을 경우 불유쾌한 향과 비린 맛이 느껴졌고, 물론 가리비의 맛도 상쇄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의 결합은 나쁜 향과 맛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확인했다. 불포화 지방산의 화학 반응으로 수산물에서 느껴지는 비린 맛은 와인이 가지고 있는 철분과의 충돌 때문이다.
즉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보다 더 많은 철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레드 와인과 수산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물론 모든 와인의 철분 함유량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와인의 종류에 따라서 철분 함유량 또한 차이가 있다. 포도 품종, 토양, 원산지 그리고 양조 방법 등에 따라서 와인의 철분 함유량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감각 기관에만 의존하였던 ‘화이트 와인에는 생선 또는 해산물’, ‘레드 와인에는 육류’라는 궁합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와인과 음식 사이에도 상극이 있을 수 있고 찰떡 궁합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와인과 음식은 서로의 향과 맛을 해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어야 상생 작용을 한다. 그러나 개인의 기호와 입맛의 궁합 또한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글쓴이 _ 엄경자(인터컨티넨탈 호텔 수석 소믈리에)
저 서_ 와인노트: 세계 57개 도시를 따라 떠난 소믈리에 엄경자의 와인에 관한 기록
한국 경제 ‘엄경자의 와인 이야기’ 칼럼 기고
각종 신문 및 잡지 등에서 와인칼럼니스트로 활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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