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르넬로, 카운트다운 돌입
"자연과 인간의 공조가 빛나는 2018빈티지"
이전 칼럼에 이어지는 글로 몬탈치노 기후와 토양에 진심인 카사노바 디 네리와 포데레 조도 와이너리를 소개한다.
카사노바 디 네리 와이너리는 밭의 토양과 해발 고도의 다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실현에 그들의 반생을 바쳤다. 다시 말해, 부르넬로의 차별성이 응집하는 장소를 간파하는 능력을 스스로 증명해왔다. 물론 선별에만 그치지 않고, 발굴한 속성을 진심이 담긴 와인으로 풀어내려 했다. 카사노바 디 네리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 부르넬로가 거기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조반니 네리는 곡물 유통업자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는 사업차 몬탈치노에 자주 왕래했고 그러던 차에 한 농장이 그의 눈에 띄었다. 여러 농작물을 혼작 하는 농가로 와인은 부차 품목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포도가 심어진 언덕은 토양, 일조량, 해발 고도의 조건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밭이면 조반니가 유년기부터 마음속에 그리던 와인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48세가 되던 1971년, 그는 농장을 인수했고 와이너리를 출범시켰다. 이름은 자기 성을 따 카사노바 디 네리라 지었고 네리 가족(Di Neri)의 새 집(Casanova)이란 뜻이다.
농장 시절에도 와인을 양조하긴 했지만 생산자 표기 없이 저가로 시장에 풀렸다. 조반니는 당장 생산을 중단하고 포도밭 수종부터 바꾸었다. 토질 조사를 세부적으로 벌인 뒤 토양별로 밭을 구분하고 산조베제 클론을 매칭시켰다. 첫 실적은 6년 후에 나왔는데 Vino Rosso Dai Vigneti di Brunello(부르넬로 밭에서 나온 레드 와인이라는 의미)라는 긴 이름의 와인이었다. 라벨을 부착하고 병입되어 판매용으로 나온 와인으로는 최초다. Vino Rosso Dai Vigneti di Brunello는 로쏘 디 몬탈치노의 전신으로 아직 해당 와인 규정이 제정되려면 6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카사노바 디 네리의 시그니처 부르넬로. 조반니 네리, 테누타 누어바, 에티케타 비앙카>
1978년에 첫 부르넬로인 에티케타 비앙카(Etichetta Bianca)가 시판에 들어갔다. 에티케타 비앙카는 다채로운 미세기후와 토양의 묘미를 이끌어낸 블랜딩 부르넬로다. 당시는 색이 짙고 묵직한 보디와 알코올이 타닌의 거친 맛을 보완하는 파워가 대세였다. 조반니가 시도한 부르넬로가 30년이 흐른 뒤에 유행하고 있으니 그의 결정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에티케타 비앙카는 데뷔 이래 부동의 아이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곧 40번째 빈티지가 시판 예정이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에티케타 비앙카 2018
와이너리 인근의 피에솔레 밭과 포데르누오보 밭의 조화미가 돋보인다. 포데르누오보는 2000년에 인수했으며 해발 450미터로 카사노바 디 네리의 밭 중 포도가 가장 늦게 익는다. 풍화에 민감한 점토와 석회암 기반 토양을 밤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육안검사와 광학 렌즈 검사대를 통과한 완벽한 포도송이만 양조장에 보낸다. 원추 모양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25일간 발효와 침용을 했고 침용 시 펌핑 오버 해서 성분을 우려냈다. 슬라보니안 오크통으로 옮겨 42개월, 병에서 6개월 숙성했다. 체리, 자두, 말린 오렌지, 넛맥 향기가 밝은 분위기를 낸다. 타닌은 조밀한 짜임새가 주는 탄탄함과 균형감이 이루는 완성도가 높다. 산미에 아삭한 맛이 돌며 입안을 과일향기로 채운다.
조반니는 포도밭 인수에 박차를 가한다. 다음은 에티케타 비앙카 밭에서10 km 동쪽으로 치우친 체레탈토 밭으로, 이는 싱글 빈야드 부르넬로의 개막을 알리는 전령사다. 그리스 원형극장의 관중석 형태로 구부러진 밭을 철, 마그네슘, 석회석이 덮고 있으며 그 동쪽은 아쏘 강이 흐른다. 체레탈토는 화이트 트러플 자생지로도 알려졌는데 화이트 트러플은 오염된 땅에서는 포자를 퍼트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서 체레탈토의 청정도는 증명된 셈이다. 작황이 좋은 해에는 품질과 아로마의 순도가 특출해 와인의 오크 숙성을 36개월로, 병 숙성 기간을 24개월로 늘린다. 병 숙성을 리제르바 보다 길게 하니 리제르바로 불러야 마땅하나 조반니는 싱글빈야드로 남기로 했다. 2017년은 작황이 네리 가족이 정한 싱글빈야드 기준에 못 미쳐 아쉽게도 체렐타토를 포기했다.
1991년 조반니 네리는 세상을 떠났고 아들 자코모가 가업을 물려받는다. 부전자전이라고 후계자의 땅에 대한 애착은 고인 못지않다. 현재 카사노바 디 네리 소유의 포도밭은 총 63헥타르에 이르며 이를 7개로 세분해 관리하고 있다. 자코모는 일곱 개의 다이아몬드라 부르며 보석처럼 다룬다. 각 다이아몬드마다 와인을 지정했고 토양별로 클론을 매칭했다. 클론마다 오크 원산지와 사이즈가 다르다. 예를 들면 에티케타 비앙카는 섬세함과 우아함이 생명인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 슬라보니아산 오크를 골랐다. 타닌이 강해 떫은맛이 나는 테누타 누오바와 조반니 네리 밭은 타닌 결을 유연하게 다듬기 위해 5백 리터 프랑스산 오크를 사용한다.
남동쪽에 위치한 체티네 Cetine밭은 세 번째 부르넬로에 헌정했다. 자코모의 남동지역 진출을 기념하는 뜻깊은 밭이라 이름을 새(Nuova) 농장(Tenuta)이란 뜻을 지닌 테누타 누오바로 지었다. 해발 300~350m의 포도밭 아래로 빌베리, 타임, 금작화Genisteae, 노간주 같은 지중해 허브 숲이 펼쳐진다. 검붉은 과실과 꽃 아로마에 지중해 허브와 짭짤한 내음이 더해져 향기가 깊어진다. 감베로 로쏘는 1997년 빈티지를 두고 “몬탈치노의 엘리트 생산자들은 자코모 네리와 그의 와이너리를 더 이상 제외시킬 수 없다”라고 실었다. Wine Spectator는 2001 빈티지를 올해의 100대 와인으로 선정했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테누타 누오바 2018
남부의 풍부함과 원만함, 이회토, 점토와 석회암 파편, 화산토, 자갈밭이 주는 힘이 전달된다. 육안 검사와 광학 렌즈를 통과한 신선한 포도를 원추형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안에서 24일 간 발효와 침용을 거쳤다. 이어 프랑스산 5백 리터 오크통과 병 숙성 기간을 도합 48개월 가졌다. 단단한 구조가 중심을 잡고 있으며 타닌이 입에 닿는 순간 긴장감이 번진다. 산미가 경쾌하며 구조는 마치 실뜨기한 것처럼 섬세하다. 케이퍼, 빌베리, 스파이시, 블랙 체리, 블랙베리가 농밀함과 원숙함을 발한다.
2021년은 카사노바 디 네리 창립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조반니 네리의 후손들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2017년에 인수한 토치 Tocci 밭을 창립자에게 헌정하기로 뜻을 모았다. 토치 밭이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가 된 사연은 이렇다. 밭주인이 밭을 판다는 소문이 돌자 구매 의사를 밝힌 후보자가 꽤 있었다. 하지만 카사노바 디 네리가 다른 후보를 제치고 밭의 임자가 되었다. 땅 주인이 네리가족이 몬탈치노 출신임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몬탈치노 남부 산탄젤로 인 콜레와 카스텔누오보 델 아바테 중간에 위치한 토치 밭은 해발 390미터에 점토와 석회석 혼합토가 부스러진 자갈, 화산토가 섞여 있다. 무엇보다 수령이 창립 연도와 같은 50년이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조반니 네리 2018
첫 데뷔라 관심이 모아진다. 구조감이 출중하며 높은 산미, 강직한 타닌은 5백 리터 프렌치 오크에서 30개월, 병 숙성을 18개월 거치면서 부드러움을 얻었다. 숙성 전에 이중 선별한 산조베제를 원추형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24일 놔두면서 발효와 침용을 했다. 초콜릿, 자두, 딸기, 말린 오렌지 껍질의 달콤함과 블랙티, 바이올렛, 감초, 발사믹 여운이 매혹적이다. 산도의 전체적인 느낌이 원만하며 예리함도 잊지 않는다. 풀 보디와 단단한 구조, 미네랄의 쌉쌀함이 밸런스를 이루며 레드 과일의 잔향으로 마무리된다.
포데레 조도 와이너리
물속을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수면에 불쑥 솟는 잠수함처럼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는 와이너리를 종종 본다. 포데레 조도가 그 경우인데 2002년 출범한 이래 모든 리소스를 고품질 전략에 집중해 온 결과다.
포데레 조도는 카를로 페리니 Carlo Ferrini가 탄생시킨 프로젝트 와이너리다. 카를로는 양조 컨설턴트를 30년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가 협업한 와이너리 중 인지도가 출중한 곳을 들면 카사노바 디 네리, 카스텔로 디 폰테루토리, 바로네 리카솔리, 탈렌티, 폴리지아노, 마샤렐리를 손꼽을 수 있다.
카를로의 오너 와인메이커로서의 입문은 밭 물색부터 시작됐다. 그가 몬탈치노 남동쪽 산탄젤로 인 콜레 Sant’Angelo in Colle에 이르자 명당 밭 감지 본능이 작동한다. 남동을 바라보며 점토와 석회석 자갈, 이회토로 덮인 해발 3백~4백 미터 구간은 그가 동경하던 밭과 일치했다. 산탄젤로 인 콜레에서 발원한 구릉지는 산탄티모, 카스텔로 델 아바테로 이어지는데 이를 두고 이탈리아 현대 양조학의 아버지, 자코모 타키스는 “계란의 노른자”로 명명했다.
까를로는 후보지로 포도가 자란 적이 없는 처녀지를 고집했다. 와인메이커로 일할 때 그의 손에 고품질의 와인을 안겨준 8개의 산조베제 클론을 식재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선별한 클론들은 포도알 간격이 넓고 직경이 좁아 소출량이 많지 않았다. 활력이 적당하고 두툼한 과피는 해충, 곰팡이 번식을 어렵게 했다.
2009년에 조도의 첫 부르넬로가 등장한 이래 고득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빈티지는 제임스 서클링이 100점, 로버트 파커 98점, Tastingbook.com은 99점, Decanter 95점, Doctor Wine 이 98점을 주면서 조도는 국제 와인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포데레 조도의 조도GIODO는 카를로의 어머니 GIOvanna와 아버지 DOnatello 성함의 첫 발음의 합성어다. 양조는 카를로 페리니가 맡고 있지만 유능한 팀이 그를 보조하고 있다. 수구선수 출신이자 농업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딸 비앙카가 2020년에 합류했고 포도재배와 관리는 비온디 산티에서 영농가를 지냈던 주제페 핏제리(Giuseppe Pitzeri)가 전담한다. 팀 구성은 40대 이하로 각자 임무가 정해져 있으나 양조장 일이 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특성상 경계를 나누지 않고 서로 협업하는 팀워크 체제를 유지한다.
2020년에 완성한 와이너리는 지속가능 공법의 총아다. 주변의 올리브, 참나무 언덕의 연장선처럼 보이게 건물을 산자락에 배치했다. 수확한 포도의 초기 공정인 파쇄, 압착 동선만 빼고 생산라인은 지하로 숨겼다. 밖으로 노출된 부분은 낮은 담장으로 둘렀는데 주변 환경과 어울리게 밭 개간 시 불거져 나온 암석을 쌓았다. 지붕은 포도밭과 같은 높이를 유지하며 꼭대기는 시칠리아에서 공수해 온 현무암 자갈을 깔았다. 셀라 동선은 현대적이며 발효탱크와 오크통 모양은 카를로가 직접 디자인했다. 연 생산량(2만 5천 병)에 비해 탱크가 많아 보였는데 밭을 6개로 구분해 개별 양조를 하다 보니 탱크 수가 많아졌다고 한다.
조도 와인은 오직 부르넬로와 IGT 토스카나 로쏘만 만든다. 리제르바와 싱글빈야드를 따로 두지 않는 전략상 이유로 최상의 포도는 모두 부르넬로를 겨냥하고 있다. IGT급 토스카나 로쏘는 2헥타르 밭에서 나오며 다섯 번째로 식재한 밭이라 ‘라 뀐타 La Quinta’란 예명이 붙었다. 부르넬로와 동일한 클론을 사용하며 수령만 어리다.
앞서 얘기한 와이너리 지붕을 덮은 현무암은 조도가 시칠리아에 소유한 에트나 밭에서 캐낸 것이다. 구조와 아로마가 출중한 열매가 열리는 콘트라다 람판테 언덕, 700~950 미터에 위치한 1헥타르도 안 되는 현무암 토다. 몬탈치노의 선택과 집중 원칙은 에트나 밭에도 적용된다. 에트나의 정수인 네렐로 마스칼레제와 카리칸테 품종만 식재했다. 네렐로 마스칼레제는 나이가 80~100년으로 원 뿌리에서 자란다. 에트나가 원산지니 에트나를 쓰는 게 옳지만 포도밭 표고가 에트나 규정이 정한 고도 제한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라벨에 Sicilia DOC으로 표기한 점도 흥미롭다.
<라 뀐타 Toscana IGT 2021와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2018>
라 뀐타 Toscana IGT 2021
라벨을 차지하는 중앙 원은 와인 세계를 상징하고 원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 중간 정도의 단단한 토질과 자갈이 섞인 밭에서 수령이 6~10년 사이의 포도로 만들었다. 밭은 해발 4백 미터에 자리하고 남동향을 바라본다. 원추 모양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알코올 발효와 침용 기간을 20일 가졌다. 와인을 7백 리터 오크, 2500리터 보테, 2700리터 암포라에 삼분할 해서 1년 숙성했다. 암포라를 사용한 것은 미세 산화를 돕기 위함이다. 블랜딩 한 와인을 시멘트 용기 안에서 잠시 안정시킨 후 병 숙성을 6개월 했다.
잔 속에 루비색이 출렁이며 라즈베리, 체리, 장미의 순수한 향이 향연을 벌인다. 산미는 과일을 한 입 가득 물었을 때의 아삭함과 청량감을 발한다. 타닌은 미네랄, 산미와 밸런스를 이루며 잔향이 밝은 분위기를 낸다. 타닌은 섬세한 면모와 긴장감도 갖추고 있어 즐겁게 마시기에 그만이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DOCG 2018
라벨에는 산조베제로 상징되는 사람이 와인 세계를 받치고 있다. 카를로가 2002년 인수한 밭으로 3백 미터 높이에 남동을 바라보며 점토와 석회석 혼합토, 자갈로 이루어졌다. 원추 모양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9일간 발효했고 이어 침용을 20일간 했다. 5백 리터, 7백, 2천5백 리터 오크에 나누어 30개월 숙성했다. 블랜딩 한 와인을 시멘트 탱크에서 잠시 안정시킨 다음 병입해서 18개월 숙성했다.
체리, 아니스, 바이올렛, 장미, 스파이시와 타바코, 가죽의 부케가 감돈다. 낙엽, 라벤더, 레드 오렌지 향이 세련미를 더한다. 미네랄과 산미의 예리함이 화음을 이루며 산도가 과일 향기에 생기를 돌게 한다. 타닌은 또렷한 구조를 표현하며 밀도있게 입안을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