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하기가 힘든 품종이잖아요. 카베르네와는 달리 아무 환경에서나 못 자라서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만 자라고. 인내심 없이는 재배가 불가능한 품종이죠. 시간과 공을 들여서 돌봐줘야만 포도알이 굵어지고,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오묘한 향이 태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줘요."
와인애호가라면 모를 리 없는 영화 <사이드웨이 Sideways>(2004)에서 주인공 마일즈에게 마야가 피노 누아를 왜 그렇게 광적으로 좋아하는지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피노 누아(Pinot Noir)는 붉은 과일의 싱그럽고 신선한 맛이 풍부하고 생기 있는 품종이다. 실제로 재배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악명 높다. 생산량이 적지만 이는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다. 프랑스의 부르고뉴 와인이 위대한 피노 누아 와인의 전형으로 꼽히며, 캘리포니아, 뉴질랜드, 칠레 등 신세계의 피노 누아 와인은 구세계의 와인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관능적인 스타일로 와인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복합적인 풍미와 훌륭하고 잘 균형 잡히고 질감이 좋은 와인을 만들어 내면서 피노 누아 생산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러시안 리버 밸리(Russian River Valley)에서는 바다 안개로 인한 서늘한 기후의 영향을 받아 포도의 생육 기간이 길고, 포도가 천천히 익음으로써 훌륭한 개성과 뛰어난 밸런스를 겸비한 와인이 나온다. 흥미로운 사실은, 캘리포니아처럼 포도를 농익게 만드는 햇볕을 안개가 방해한다며 재배자들이 이러한 환경을 한때는 기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아함과 밸런스를 갖춘 유럽 와인 스타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서늘한 안개가 만들어 내는 이런 기후 조건은 이제 축복이 되고 있다. 러시안 리버 밸리는 캘리포니아에서도 피노 누아가 가장 늦게 익는 곳으로, 감미롭고 복합적인 피노 누아를 생산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잘 익은 블랙체리의 향이 달콤하고 향긋한 오크 향과 함께 드러난다. 관능적이며, 과일 맛, 산도, 타닌의 밸런스가 뛰어나다. 최상급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_뱅상 가스니에의 <와인 테이스팅 노트 따라하기> 중
러시안 리버 밸리의 ‘라 크레마 La Crema’는 1993년에 잭슨 가문이 인수한 와이너리다. 잭슨 가문은 미국 최대의 가족 경영 와인 기업인 ‘잭슨 패밀리 이스테이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서늘한 기후 지역의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와인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이곳을 인수했다. 러시안 리버 밸리에서 시작하여 소노마 코스트, 몬테레이 등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서늘한 기후 지역으로 점차 포도밭을 넓혀온 라 크레마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 잭슨 패밀리 이스테이트의 와인 포트폴리오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국내에는 수입사 나라셀라를 통해 라 크레마의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와인이 수입, 유통 중이다.
위 사진은 ‘라 크레마 러시안 리버 밸리 피노 누아’. 해가 뜨기 전에 손수확한 포도를 두 차례에 걸쳐 선별한 후 포도밭 구간별로 별도로 양조한 후 최종 단계에서 블렌딩했다. 이후 14개월 동안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쳤으며, 오크통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35%만 새 오크통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와인은 블랙 베리, 체리, 자두의 과일 풍미가 선명하게 드러나며 삼나무의 향긋함이 은은하게 이어진다. 벨벳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타닌, 균형 잡힌 산도, 탄탄한 근육을 뽐낸다.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어떤 요리에도 어울리는 세련된 와인이다. 국내에는 라 크레마의 러시안 리버 밸리 피노 누아와 더불어 몬터레이 피노 누아, 소노마 코스트 피노 누아도 수입되고 있다.
러시안 리버 밸리의 서늘한 기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은 피노 누아 뿐만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샤도네이가 남다를 것이 있냐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면, '라 크레마 러시안 리버 밸리 샤도네이’를 경험해 볼 것을 권한다. 차가운 해류와 뜨거운 태양이 만들어낸 러시안 리버 밸리의 안개는 샤도네이의 산도를 완벽하게 지켜준다. 파삭한 산도는 농축된 과일 풍미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샤도네이 와인을 탄생시킨다. 10개월 간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효모 앙금과 함께 숙성을 거친 ‘라 크레마 러시안 리버 밸리 샤도네이’는 서양 배와 레몬, 부드럽고 달콤한 크렘블레의 향이 코 끝을 간지럽히고 복숭아, 파인애플, 흰 꽃 향이 뒤를 이으며 다채로운 풍미를 자랑한다. 신선한 산미와 관능적인 질감이 미각을 사로잡는 이 와인은 요리와 함께 할 때 더욱 빛을 발하는데,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재료로 한 육류 요리에 곁들이기에도 손색이 없다. 국내에는 라 크레마의 러시안 리버 밸리 샤도네이와 함께 몬터레이 샤도네이, 소노마 코스트 샤도네이도 수입되고 있다.
<바바라 뱅키 회장(가운데)과 그의 두 딸>
오늘날 잭슨 패밀리 이스테이트는 설립자인 제스 잭슨의 부인 바바라 뱅키 회장이 이끌고 있다. 뱅키 회장은 Wine Enthusiast의 ‘Wine person of the Year’에 여성 최초로 선정되었을 정도로(2013) 미국 와인 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뱅키 회장은 와인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친환경 농법과 기술 도입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2019년, 잭슨 가문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와인 가문 토레스 Torres와 함께, 2050년까지 Net Zero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International Wineries for Climate Action (IWCA)>를 공동 설립했다. Net Zero란, 와이너리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상쇄시켜 0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현재 전세계 27개 와이너리가 IWCA 회원사로 활동 중이다.
“We leave big steps to leave small steps.”
_ 바바라 뱅키
뱅키 회장의 리더십 아래, 잭슨 가문은 지난 40년간 지속가능성과 토지 보존에 선도적 역할을 해 왔다. 예를 들면, 부지의 60%를 천연 서식지로 보존하고 있으며 포도밭과 양조장 모두 100% 지속가능경영 인증을 받았다. 또한 재사용 기술을 도입하여 연간 2천9백만 갤론의 수자원을 절약, 2015년부터 탄소배출량을 17.8% 감축했다. 미국 와인 업계 최대 규모인 7천mw급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매년 소비하는 전력량의 30%를 절감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한편, 와인 생산 과정 중 상당량의 자원을 소모하는 부분은 패키지인데, 잭슨 패밀리는 와인 병의 무게를 줄여 와이너리의 탄소배출량을 연간 2-3%, 연간 연료 비용을 50만 달러까지 감축했다.
수입_ 나라셀라 (02 405 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