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테프리마 아마로네 2017 기간 중 열렸던 마스터클라스에 참가한 아마로네 와인 생산자들>
포도를 극도로 말려 즙을 농축하는 건조 예술의 집약체, 아파시멘토(Appassimento). 원하는 농도를 얻기까지 기울이는 노력과 시간을 가늠하면 아파시멘토는 제2의 수확이라고 해야 마땅하겠다. 의식적으로 농축시킨 고당도의 맛은 우리의 혀를 황홀하게 감싼다. 그러나 뜻밖의 상황에 의한 괴이한 맛이 돌발하면 외면당하기 쉽다. 한 시대의 표준 맛을 벗어났다는 무의식적 합의 때문이다. 이탈리아 프리미엄 레드 와인의 정상을 꿰찬 아마로네(Amarone)도 초창기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나긴 무명시절을 보내야 했다.
2017년 산 아마로네 와인을 전 세계 와인 미디어에 공개하는 자리인 ‘안테프리마 아마로네’가 베네토주 베로나 시에서 열렸다. 행사일인 6월 17일에서 19일까지는 마침 99회 베로나 오페라 축제 오프닝 기간과 겹치기도 해서 원래 이름을‘ 아마로네 오페라 프리마 Amarone Opera Prima’로 변경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폭염의 도가니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어서 2017년 날씨를 반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았다. 2017년 빈티지를 특징짓는 키워드를 줄 세운다면 더위와 가뭄이 맨 앞에 놓인다. 그러나 막상 39병의 아마로네가 개봉되자 모두의 공감을 뒤엎을 만한 뜻밖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99회 베로나 오페라 축제 오프닝 기간에 열렸던 주제페 베르디의 ‘아이다’ 하이라이트 장면>
2017 빈티지 소개에 앞서 잠시 아마로네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자. 아마로네의 정식 이름은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인데, 베네토인들처럼 친근감을 담아 아마로네라 부르기로 한다.
깜빡 실수가 낳은 아마로네
<아파시멘토. 이미지 출처 Masi 와이너리>
내 몸에 딱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운 이름 아마로네, 베네토인들은 이를 알코올 발효를 미처 끝내지 못했다는 뜻의 레초토 스카파(recioto scapa) 또는 무 잔당의 레초토 세코 (recioto secco)라 한다. 즉, 우리가 아는 아마로네는 결과물이고 현지의 아마로네는 무엇을 하려다가 중단된 과정의 와인이다. 아마로네를 알려면 레초토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마로네가 레초토의 종점이기 때문이다.
레초토의 어원은 레치에recie에서 왔고 뜻은 귀다. 귀는 툭 불거져 있어 우리 신체 중 소리를 제일 먼저 듣는다. 나무에 매달려 자라는 포도도 귀의 법칙을 따른다. 포도송이 윗부분은 귀처럼 돌출해 있어 햇빛의 축복을 무한대로 받는다. 당연히 이곳 전통대로 레치에 부분은 따로 말려서 풍미를 재차 농축시켰다. 레치에를 압착한 고농도의 포도즙을 발효할 때가 되면, 효모의 활동과 기능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던 시절엔 농부의 육감과 경험이 묘약이었다. 이들은 발효통에서 흘러나오는 탄산가스 끓는 소리를 들으면서 발효상태를 가늠했다. 발효통을 경내에 가장 서늘한 곳에 두어 효모가 당을 다 먹어치우기 전에 발효를 중단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레초토의 맛이 제자리를 잡을 즈음이면 부활절이 성큼 다가와 있었고 축제주로 올랐다. 또한 원기회복의 특효약으로도 쓰였다.
여기까지 아파시멘토는 이 기법으로 만든 여느 파시토 와인과 행적이 같다. 그러다 1936년 네그라 와이너리 조합의 양조가 아데리노 루케제(Adelino Lucchese) 에게 일어난 우연이 두 와인을 갈라놓는 계기가 된다. 발효가 끝난 와인을 다른 통에 옮기다가 그중 한 개를 실수로 비우지 않은 거다. 몇 년 후 깜박했던 그 통을 발견한 그는 통 안에 묵혀있던 와인을 맛 보았는데 맛이 괜찮았나 보다. 그의 입에서는 “이 와인은 쓴 정도가 아니라 매우 쓰다’ Questo vino non è amaro, è un amarone“는 말이 흘러나왔고 아마로네는 대표 이름이 되는 자격을 얻는다. 여기서 ‘쓰다’란 이탈리아 동사의 유효성은 본뜻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음료 세계는 약간 달거나, 단맛이 안 나면 쓴 맛이다. 설탕을 넣지 않은 차, 에스프레소, 무염 음료를 맛본 이탈리안의 혀는 쓴 맛으로 인식한다. 최초의 아마로네는 1938년, ‘아마로네 엑스트라’ 라벨을 부착한 병에 담았으나 시판되지는 못했다. 1958년에 이르러 첫 상업적인 판매가 이루어졌으나 레초토의 단맛에 길들여진 입맛에 맞지 않아 판매실적은 바닥을 쳤고 가격도 형편없었다.
1968년 발폴리첼라 와인이 DOC로 지정됐을 때도 법 조항은 아마로네를 단지 드라이한 레초토(recioto asciuto)로 명기했다. 그러다 1980년대를 맞이해 주제페 퀸타렐리와 로마노 달 포르노 같은 생산자들이 와인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나서야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이탈리아 와인 컨설팅 기관 Nomisma Wine Monitor’s 리포트에 따르면 2021년도 발폴리첼라 와인 판매액은 5억 유로이고 이중 50%가 아마로네 판매에서 온다고 발표했다.
아마로네가 만들어지기 까지
아파시멘토는 겨울이 길고 혹독했던 시절에 포도 나무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폴리페놀 숙성과 아로마 부족을 보완하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서늘한 기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알코올 도수의 한계치 (15도)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탈수와 아로마 농축을 반복하는 동안 테르펜 꽃향기 분자와 사과산은 감소하지만 주석산, 폴리페놀, 당분, 글리세린 등 구조와 풍미에 깊이를 주는 성분의 증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스파이시한 향을 내는 로툰도네 분자와 숙성한 와인에서 발견되는 타바코와 커피향을 담당하는 타바논 분자가 만들어진다. 1.8 시네올 분자는 와인이 숙성되면서 발삼, 쑥(terragon), 오레가노, 월계수, 민트향으로 변한다. 항산화 효능이 뛰어나고 심장에 좋다는 레스베라트롤도 증가한다고 하니 아파시멘토의 능력은 전능하지 않는가!
주품종인 코르비나Corvina는 최소 45%~최대 95%까지 사용할 수 있다. 코르비나는 와인의 구조를 단단하게 하며 아로마가 향기롭고 식감을 부드럽게 하는 유연효과가 뛰어나다. 우아한 매력을 발산하는 와인 중에는 코르비나 함량이 우세하다. 코르비노네 Corvinone 품종의 함량비율은 코르비나와 동일하다. 사워 체리, 향신료, 허브향의 복합미를 주며 타닌 결이 다소 거칠다. 결이 부드러워지고 멋진 풍미를 내기까지는 긴 숙성 시간이 필요하다.
블랜딩 품종으로는 6종류가 있으나 론디넬라와 모리나라가 선호된다. 론디넬라 Rondinella는 최소 5%~최대 30%까지 블랜딩 할 수 있다. 병충해에 강하고 착색효과도 우수하다. 와인의 미네랄 풍미, 꽃과 붉은 과실 아로마를 증폭시킨다. 모리나라 Molinara의 허용량은 최대 10% 다. 산도가 높아 신선도를 높이며 미네랄과 결합해 밸런스에 기여한다.
아파시멘토 기간은 최소 100 일~ 최대 120일이다. 원래 크기의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매트 위에 한 겹으로 펼쳐놓고 말린다. 규정은 아파시멘토 기간의 하한선을 12월 1일로 못박아 놨다. 단 , 불가항력의 기상 조건으로 인해 날짜를 변경하려면 먼저 발폴리첼라 와인 컨소시엄이 정부기관에 날짜 변경을 요청하고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숙성기간은 최소 2년의 오크 숙성과 최소 2년의 병 숙성을 권장하나 3~ 4년이 일반적이고 리제르바는 5~6년까지 늘어난다.
아마로네 테루아의 다양성
아마로네 원산지는 베로나 북쪽에 공작새 깃털처럼 활짝 펼쳐진 발폴리첼라 언덕이다. 깃털 북쪽에 몬테 레시니 산이 솟아있고 여기서 뻗어져 나온 계곡이 발포리첼라 언덕을 지나 베로나 쪽으로 하강하면서 낮은 지대와 만난다. 3만 헥타르의 포도밭이 비탈길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완만하게 경사진 곳에 19개의 자치마을이 들어앉아 있다.
발폴리첼라는 극서쪽의 가르다 호수와 접하는 클라시코 지역, 발판테나 지역을 지나 동 발폴리첼라를 관통한다. 앞의 두 지역은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와 레초토 델라 발폴리첼라 DOCG에 지정되어 있고 동발폴리첼라 지역은 DOC에 선정되었다.
<발폴리첼라 언덕이 원산지인 와인들. 서에서 동족으로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지역, 발판테나 지역, 동발폴리첼라 지역>
클라시코 지역의 형세는 마치 손가락을 쫙 펼친 손처럼 다섯 개의 계곡이 뻗어 있으며 각 계곡마다 고유의 토양과 와인이 나온다. 먼저, 가르다 호수변과 접하는 산 탐브로지오 디 발폴리첼라는 호수의 미풍과 몬테 레시니에서 남하하는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뒤섞인다. 기온이 온화하여 일교차는 심하지 않다. 해발은 4백 미터로 높고 석회석과 퇴적토로 된 혼합토는 와인에 단단한 구조와 산미, 미네랄 풍미를 부여한다.
남쪽에 자리잡은 산 피에트로 인 카리아노는 지형이 평평하며 고도가 제일 높은 곳은 172미터( 카스텔로토)다. 배수력이 뛰어난 퇴적토는 와인에 매력적인 발삼과 민트향을 선사한다.
푸마네 계곡은 산세가 가파르고 기후가 서늘하기로 유명하다. 석회석 기반의 암석층과 토아리(toari)로 알려진 화산토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풀 보디의 힘 있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라노 디 발폴리첼라 계곡은 몬테 레씨니에서 기원한 차가운 바람을 등지고 남향에 조성된 언덕 풍경이 인상적이다. 포도는 경사도를 십분 활용한 계단식 밭에서 자란다. 토양이 현무암 기반이라 경작이 쉽지 않다. 가르다 호수에서 가장 먼 네그라 디 발폴리첼라는 북풍의 세기가 계곡 전체기후를 좌우 하는 척박한 곳이다. 주된 토양은 미사와 점토의 혼합토다.
발판테나 계곡은 클라시코 지역과 동 발폴리첼라 사이에 끼어 있어 폭이 좁다. 비좁은 통로로 쏟아지는 공기의 흐름이 빠르고 일교차가 심하다. 암석층과 석회토의 지표층이 두껍다. 1970년대 로마노 달 포르노 와이너리에 의해 테루아적 역량이 알려지면서 개발 붐이 일었다.
2017빈티지에 대한 평가 돌아보기
2017년은 2009-2011- 2015년도에 이어 기록적인 더위가 맹위를 떨친 해다. 2017년의 봄은 온화한 기온과 부족한 강수량으로 시작했다. 4월에 기온이 급격히 하강한 적이 있었으나 페르골라 기둥에서 싹을 틔운 열매는 냉해 피해를 별로 입지 않았다. 페르골라는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있는 Y자 형태의 목기둥과 기둥 사이에 걸쳐있는 철사 줄을 합한 구조물이다. 포도덩굴은 철사를 타고 뻗어나가다가 열매를 덩굴 아래에 맺기 때문에 직사광선에 노출될 염려가 없다. 또한 덩굴과 지표 간격이 170cm 떨어져 있어 습기, 지열, 서리 피해를 덜 받는다. 클라시코 지역에서 소출된 포도의 재배형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75%가 페르골라에서 자랐다.
2017년 작황으로 돌아가면 싹트임, 개화, 착색기와 겹치는 5~8월의 기온이 평균치를 추월해 수확일도 열흘 빠른 9월 4일에 개시했다. 결국 12월 1일로 묶여있던 알코올 발효 탱크 첫 가동일도 보름 앞당긴 11월 15일로 변경됐다. 아파시멘토 의무기간도 100일에서 60일로 줄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페놀성분, 사과산,주석산, 당도의 적정 수치를 제어하면서 완숙도를 높이려는 안전장치다.
2017년 산 레드 와인은 향기가 짙고 알코올 기운이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산도가 낮아 신선미가 약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아로마가 농밀하고 또렷한 반면 타바코나 가죽 같은 숙성 부케가 발현되는 시기가 빠르다. 2017년 아마로네는 보편적 평가라도 모든 와인에 일률 적용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즉, 과하지 않은 알코올과 경쾌한 산도가 우아한 기품을 발하며 보디도 튀지 않아 섬세한 구조와 조화를 이뤘다. 색상은 검붉은 색을 띠지만 어둡지 않고 주변은 영롱한 루비색을 두르고 있다.
아마로네와 어울리는 4가지 메뉴 추천
맛과 향의 경중만 따져 페어링 메뉴를 짠다면 스테이크, 스튜, 가금류 같은 무거운 음식이 아마로네와 단짝이다. 이 페어링은 고전적인 믿음으로 아마로네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지역 와인에 머물던 아마로네가 1990년대에 글로벌 인기 급류를 탄 것은 묵직하고 풀보디한 맛의 조합 덕분이다. 그러나 아마로네라는 기본값은 다품종 블랜딩, 아파시멘토 기간, 오크 숙성의 변수를 만나면 뜻밖의 페어링의 묘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번 안테프리마의 부가 행사로 베로나 소재 2스타 미슐랭 레스토랑 ’ 라 페카 디 로니고( La Peca di Lonigo)’의 니콜라 포르티나리 셰프는 과감한 페어링 메뉴를 선보여 아마로네의 경계선을 확장했다. 아마로네를 네 가지 스타일로 구분했고 이와 조합을 완성하는 4대륙의 음식을 제안했다.
<아마로네 와인 네가지 스타일과 매칭한 4대륙 메뉴. 맨위쪽에서 시계방향으로 북유럽 요리,남동아시아 요리, 중부유럽 요리, 북미대륙 요리>
북유럽 요리와 신선한 스타일의 아마로네 페어링:
굴소스에 곁들인 대서양산 관자구이 , 발효한 아스파라거스, 절인 사슴 카르파초가 나왔다. 와인은 어리지만 밸런스가 잡혔고 잔당이 없는 모던한 스타일로 페어링했다. 와인은 감초, 체리, 라즈베리, 신선한 향신료향이 선명하며 유쾌한 산미와 부드러운 타닌이 출중해 식전주로도 손색없다.
남동아시아 요리와 레초타타 스타일 아마로네 페어링:
수분을 제거한 수박 조각을 얹은 뱀장어 숯불구이, 매콤한 앙고스투라 소스가 곁들여졌다. 디저트 와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 단맛이 강한 레초타타 풍 아마로네와 매칭했다. 레초타타는 1990년대와 2천년 초반에 유행을 선도했던 맛으로 현재는 호불호가 심하다. 셰프에 따르면 보디는 무겁지만 긴 숙성력을 과시하는 클래식한 아마로네다.
중부 유럽 요리와 강건하며 우아한 스타일의 아마로네 페어링:
프레즐 라비올리 주변을 크라우트, 서양 고추냉이 소스, 겨자 소스, 돼지 그래비소스로 둥그렇게 장식했다. 장엄한 구조와 우아함이 대조를 이루며 단맛이 살짝 와닿는 아마로네가 선보였다. 산미와 타닌의 모서리를 아파시멘토의 복합적인 풍미와 실키한 타닌이 감싼다.
북미대륙 음식과 파워가 돋보이는 아마로네 페어링:
장시간 익힌 돼지고기 뽈 소를 넣은 파이와 파워를 뽐내는 부케의 와인과 매칭했다. 아파시멘토로 인한 깊고 묵직한 맛과 숙성 부케가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와인초심자에게는 쉽지 않은 맛이나 숙성력이 발하는 깊은 맛과 보디의 힘이 강렬하다.
아래는 아마로네 안테프리마에 출품한 2017 빈티지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와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