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S

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그림1.jpg

<타리아멘토 강 Fiume Tagliamento>

 

 

여름이 건기라지만 타리아멘토는  강이라 부르기에 무색할 정도로 강바닥을 훤히 들어내 보이고 있었다. 수로와  강변 경계가 사라진 곳은  조약돌이  덮고 있어  폭이 2km나 됨직한 강은 마치 거대한 자갈 사막 같아 보였다.


타리아멘토 강은 중앙유럽을 통틀어  가장 긴 자연 하천이다. 이탈리아 북동부의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주(이하 프리울리 주) 해발 1,195미터  돌로미티 알프스에서 발원한 강은  170km의  평원을 적시다가 아드리아해로 흘러 든다.


타리아멘토의 어원은  ‘피나무’란  뜻의  이탈리아어인 티리오(tiglio)에서 왔다. 6월이면 강둑에 무성한 피나무 군락이 달콤한 아카시아 향을 퍼트려 이곳 와인에도 티리오 향이 진하게 배어있다.


강 사람들의 타리아멘토 사랑은 남다르다. 지명을 지을 때 강 이름을  넣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에 녹였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래톱과 그 가장자리를 굽이치는 물길에서도 사랑은 묻어난다. 만약 개발의 명분이  자연의 본성을  우선했다면 사라질 뻔했던 절대 야성이 도도히 흐른다. 


지금 이 강은 프리울리 그라베 와인과 산 다니엘레 프로슈토의 세계적인  먹거리 산지로  거듭났다. 비결은 강의 천연성을 토종 먹거리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명품 먹거리로 승화시킨 데 있다 . 

 

 


프리울리 그라베 Friuli Grave DOC와인의 비결,
자갈 그리고 강바람

 


타리아멘토  강기슭에 퇴적된 자갈은 카르니카 알프스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석회석과  화산토가 떠내려온 거다. 밭고랑에 듬성듬성 솟아 있는 자갈은 보르도 경관과 흡사해서 이탈리아의 보르도라 불린다. 강의 좌우안은 프리울리 그라베 와인 산지로 지정되어  원산지 보호를 받는데, 다수의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이 벤치마킹 할 정도로 이곳 화이트는 다년간 품질의 선두를 지키고 있다.
         

 

그림2.jpg

<타리아멘토 양안에 위치하는  피타스 와이너리의  포도밭 Rivolto, San Martino al Tagliamento, Passariano.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주의 위치>

 


피타스PITARS 와이너리의 시작은  안젤로 피타스가 아버지가 키워 온 양조장에  합류한 1968년부터다. 부자가  타리아멘토 강 좌안에 있는 산 마르티노 알 타리아멘토를  부지로 정한 데는 강 사람만이 갖고 있는 동물적인 직감을 따른 데 있다. 


포도밭에 듬성듬성 섞여 있는 자갈은  배수성을 향상시키며 밤에는 핫팩 구실을 한다. 즉, 낮에 달궈진 돌은  밤 기온이 떨어지면 열을 방출해 주변 공기를 덥힌다. 땅의 습기 증발 방지 외에도  와인에 구수한 페트롤 풍미를 준다. 남북으로 뻗은 강줄기는 알프스의 서늘한 북풍과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습기 찬 남풍의 통로 구실을 하는데, 이 상반된 공기는 포도밭 상공에서  섞인다.
 


그림3.jpg

<비냐 산 크리스토로Vigna San Cristoforo 포도밭과  피타스 본사>

 


피타스 가족의 첫 와인은 메를로였고 대히트를 거둔다. 이어서,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과 유사한 미세환경을  보이는  산타 체칠리아 밭을 따로 떼어내  소비뇽 블랑에도 도전했다. 소비뇽 블랑은  소비뇽 블랑  와인 품평회(Concours Mondiale su Sauvigno)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제임스 서클링으로 부터 90점을 얻어  피타스의  아이콘 와인으로 떠오른다. 또한 프로세코  붐에 힘입어 성장 속도에 가속이 붙는다. 21세기 초부터는 프리울라노, 페둔콜로 로쏘, 말바시아 이스트리아나(malvasia istriana)등 토착품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피타스는  연 50만 병을 소화하는 양조장과 숙성실, 와인 샵이 있는 산 마르티노 본사와  세 군데 포도밭 등 도합 165헥타르를 거느린  중견 와이너리로 자란다. 와인사업은 역동적이나, 피타스 가족의 영혼은 타리아멘토 강에  빙의했다고  4세대인 니콜라 피타스 마케팅 부장은 강조한다. 

 

 

<피타스 와이너리 소개 동영상. 피타스 가족과 타리아멘토강의 결속이 단단한지 보여준다>

 

 

 

타리아멘토가 낳은 또 하나의 명품, 산 다니엘레 프로슈토

 


피타스 와이너리에서 북쪽으로 21km  가면 산 다니엘레 마을에 이른다. 산  다니엘레는 프로슈토 생햄으로 알려져 있어서 원래가 지명이었다면  다들 깜짝 놀란다. 산 다니엘레는 피렌체처럼 시 소유의 두오모도 있으며 시장도 선출한다. 경기도 구리시( 33.3 km2)와  면적이 비슷한 지정 구역에서 제조되는 생햄만이 산 다니엘레로 인정받는 대표성도 지닌다.
     

 

그림4.jpg

<산 다니엘레 마을 관광명소( 좌) 산 안토니오 아바테 성당 프레스코화 일부. 펠레그리노 다 산 다니엘레 화가가  1497년에서 1522년 사이에 제작했다. 예술성과 디테일이 뛰어나 프리울리의 소 시스티나 성당이란 별명을 얻었다. (우) 산 다니엘레  과르네리아나 시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단테작 신곡 채색 필사본.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두 명의 공증인이 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슈토의 시작은 로마인이 돼지고기에 소금을 뿌려 먹기 시작한 때로 본다. 포스투미아 로마가도(Via Postumia)에 자리잡은 산 다니엘레 마을은 천일염이 흔했다. 이미 돼지 사육이 발달했던 이곳에 소금이 들어오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프로슈토 제조가 번성한다. 1453년 이곳 출신 의사가 돼지고기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환자에게  돼지다리를 염장한 프로슈토를 먹으라고 처방을 내릴 정도로 건강식품으로 여겨졌다. 1789년 나폴레옹 군이 침입했을 때는 보석과 함께  전리품으로 취할 만큼 진귀품으로 여겨졌다.


옛적부터  햄의 재료는 세 가지였고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최상등급 돼지 넓적다리, 천일염, 타리아멘토 강 기후다. 천일염과 강 바람은 부패에 취약한 돼지고기의  천연방부제 역할을 한다. 최소 13개월 강바람을 쐬며 곰삭은 속살은 장밋빛 붉은색을 띤다. 짭조름 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며 무화과와 곁들이면 짭짤한 맛이 단맛과 환상의 짝을 이룬다. 고기 탄력성이 햄의 신선도를 좌우하는데, 살코기를  누르면  빠르게 원래 위치를 회복해야 신선도가 높은 것이다.
 


그림5.jpg

<라 그라체레 프로슈티피초 입구.  마을 석빙고 옛터를 햄 숙성실로 개조했다>

 


산 다니엘레 중심가, 보르고 소프라 카스텔로에 자리잡은 라 그라체레  프로슈티피초( La Glacere Prosciuttificio) 제조장을 방문했다. 엄격한  선별검사를 통과한 후 인증서를  받은  31개의  프로슈티피초 중 하나다. 라 그라체레 자리는 인근 호수에서  잘라낸 얼음을 보관하던  마을 석빙고였다. 


일개 돼지 부위가 명품 프로슈토로 신분상승하는 과정을 알아보자. 일단 원재료인 돼지는 이탈리아 10개 주에서 사육한 라지 화이트, 랜드레이스,루록 품종(순종 혹은 개량종)에 한한다. 잡곡과  유청 사료를 먹고 자란 돼지의 무게가  160 kg(오차율 10%)에 이르면 지정된 도축장으로 보낸다. 도축해서 얻은 넓적다리는 120시간 내에  인가받은  프로슈티피초로 보낸다. 


프로슈티피초에 상주하는 전문 식별가는 넓적다리의 상태,  최소 무게(12kg 이상)와 최소 지방 두께 ( 15mm)를 육안 검사한다. 이 검사를 통과한 넓적다리는 염장실로 갈 준비를 마친다.


영상 0~3도로 맞춰진 실내에서 넓적다리를 천일염에 묻어둔다. 염장 기간은  넓적다리 무게에 비례하며  최소 24시간에서 최대 48시간이다. 염장한 고기 위에 무거운 고체를 올려놓는데 눌리는 힘에 의해 소금 맛이  골고루 스며들고 육질은 탄력을 얻는다. 덤으로 산 다니엘레 특유의 기타 모양이 잡힌다.


영상 4~16도, 습도가 70~80%인  실내에서 4개월간  휴식기를 갖는데 이때 고기 안에 남아 있던 습기가 빠져나온다. 물로 세척한 프로슈토는 자연 숙성실에서 13개월을 지낸다. 숙성실 내부는 타리아멘토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순환하면서 이상적인 (영상 15~24도) 기온과 습도를 맞춰준다. 이 기간 동안 고기 내부에는  효소작용이 일어나면서 특유의 풍미와 담백한 맛이 배어든다.
 

 

그림6.jpg <라 글라체레  숙성실 내부. 산 다니엘레 전통에  따라  피나무로 만든 선반에 프로슈토를  걸어놓고 숙성한다>

 


7개월이 지나면 수냐투라(sugnatura) 할 때가 된다. ‘수냐를 도포한다’는 뜻인데, 수냐는 돼지비계, 쌀가루, 후추를 섞어 만든 반죽이다.  도축할 때 잘린 부분에 바르는데  고기 결이 푸석해지는 걸 막기 위함이다. 전문 감별사는 주기별로 말의 뼈로 만든 바늘을 고기에 찔러 넣어 맛과 향을 확인하며  탄력도를  측정한다.  


13개월 후 최종 관능검사에 합격한  프로슈토는 기타 모양의  컨소시엄 마크가 새겨진다. 프로슈토 껍질에 찍힌 마크들은 돼지 신분증이나 마찬가지다. 넓적다리가 주요 공정을 통과할 때마다  마크가 늘어나는데 사육자, 도살장, 프로슈티피초 입고일을 표시했다. 


프로슈토가 가장 맛있을 때는 잘라낸 직후다. 남은 것은 냉장보관(영상 1~7도) 하되  12시간 이내 먹는 게 좋다. 플라스틱 팩에 개별 포장된 것도 마찬가지다. 진공포장된 덩어리를 개봉하면 잘린 부위를 랩으로 잘 싼 후  냉장보관한다.


현지인들은 산 다니엘레 프로슈토를 프리울리 그라베 화이트 와인과 즐겨먹는다. 와인 아로마가 육즙의  깊은 맛을 살려주고 와인 산미는 쫄깃함을 도드라지게 한다. 프로슈토의 짭짤함과  단맛을 잘 이어줄 만한  피타스 가족의  화이트  와인을 소개하겠다. 
               

                그림7.jpg


리볼라 잘라 스푸만테 Brut


배, 라임, 청사과 향이 산뜻하다. 구운 빵과 페트롤의 고소한 향이 침샘을 자극한다. 버블 줄기가 지속적으로  힘차게 솟아오른다. 톡 쏘는 산미, 세련된 크리미함이 혀를 감싼다.

 

 

소비뇽 블랑 브라이다 산타 체칠리아 DOC Friuli 2018


백장미, 재스민, 바질, 샐비어, 야생초, 자몽 아로마가 매혹적이다. 첫 향기는 개별 향기가 또렷하나  잠시 놔두면 조화로운 아로마 꽃을 피운다. 예리한 산미,  쌉쌀한 여운이 입안에 기분 좋은  풍미를 준다.

 


쿤트레빈 베네치아 줄리아Cuntrevint Venezia Giulia IGP 2019 


라벨이 독창적이다.  라벨의 흰 종이를 벗겨내면 덮여 있던  이미지가 드러나는데 타리아멘토 강을 상징한다. 연간 생산량이 단 7백 병인 피타스의 야심찬 소비뇽 블랑이다. 짙은 복숭아, 패션푸르트, 서양배, 샐비어, 잔디, 야생초 향기가 오래 지속된다. 구조감이 우수하며 깊은 맛이  미각에 감돈다. 경쾌한 산미와  짠 맛이 선사하는 밸런스가 뛰어나다 .
  

그림8.jpg
<쿤트레빈 베네치아 줄리아 Cuntrevint Venezia Giuglia IGP 와인. 스티커를 떼어내기 전과 후>

 

 


- 저작권자ⓒ WineOK.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1. [;와이너리 탐방] 사르데냐 전통 탈 로고에 숨겨있는 의미

    <주제페 세디레수 셀러에서 숙성중인 카노나오 와인. 와이너리는 사르데냐 섬 내륙 마모이아다 산촌에 자리하고 있다> 휴가 홀릭인 이탈리아인들이 누리는 가장 긴 휴일은 언제일까. 필자는 성탄절 이브에 막이 올라 다음 해 1월 6일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연...
    Date2021.11.22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2. 카스텔로 디 멜레토, 중세 고성의 와인 전통을 이어가다.

    <성의 존재가 최초로 확인된 1256년 이후, 한 번도 파괴된 적이 없는 카스텔로 디 멜레토 성은 중세 토스카나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토스카나에는 형태가 온전하거나 성채 일부만 남은 성이 160여 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60여 채는 남 피렌체에...
    Date2021.11.12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3. 루케RUCHE 하나로 아로마와 레드,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된 몬페라토 언덕. 루케, 모스카토, 브라케토 같은 아로마가 두드러지는 와인의 산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아로마 언덕이란 별명으로도 알려졌다> 와인의 향을 맡으면 금방 식별되는 향기들이 있다. 이렇게 직관적인 향을 발산하는 와인...
    Date2021.11.04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4. <와이너리 탐방>  상록 참나무가 맺어준 와인과의 인연

    <라 레차 와이너리의 트로이카. 파올라,시빌라, 안젤라 자매. 라 레차는 여성이 오너인 와이너리가 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다> 이탈리아 해안가에 가면 상록 참나무 숲이 눈에 많이 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참나무는 라틴어로 Quercus Ilex, 영어로 Ho...
    Date2021.10.21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5. 중앙 유럽 유일의 천연 강이 낳은 명품 먹거리

    <타리아멘토 강 Fiume Tagliamento> 여름이 건기라지만 타리아멘토는 강이라 부르기에 무색할 정도로 강바닥을 훤히 들어내 보이고 있었다. 수로와 강변 경계가 사라진 곳은 조약돌이 덮고 있어 폭이 2km나 됨직한 강은 마치 거대한 자갈 사막 같아 보였다. ...
    Date2021.10.01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6. 위험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볼카노 와인

    볼카닉 와인 협회1 에 따르면 전 세계 화산지형 면적은 1억 2천4백만 헥타르로 한국 면적보다 12배나 넓다. 이는 지구 면적(148.940.000 km² )의 1%에 불과하지만 지구촌 인구 10%의 생계를 책임진다. 단 한 번의 폭발로 평생 일구었던 모든 것이 일순간...
    Date2021.09.23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7. [와이너리 탐방] 최근 한국 진출한 까사 팔라딘 CASA PALADIN

    1962년 베네토주 동부 모타 디 리벤자 마을. 포도밭과 와인 밖에 모르던 전 발렌티노 팔라딘 회장은 양조장을 개업한다. 양조장 설립 동기는 팔라딘 회장의 신념과 맥을 같이 한다. 미래는 가족, 땅, 전통문화 같은 베네토인 의식 저변에 흐르는 믿음을 딛고 ...
    Date2021.09.06 글쓴이백난영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 23 Nex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