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이는 테레네레의 전경 @www.tenutaterrenere.com>

새로운 와인, 새로운 와인생산지를 만나는 건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곳이라면 기대감은 더욱 커진다. 이탈리아 최남단에 위치한 시칠리아 섬의 에트나 화산은 3,350미터의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화산이며 제주한라산과 달리 세계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활화산이다. 불과 얼마 전 지난 12월 13일에도 폭발하여 그 무서운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다. 이런 험악한 에트나 화산이 어떻게 이탈리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와인 생산지로 떠올랐을까? 시칠리아판 골드러쉬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와인 생산자들이(유명한 안젤로 가야도 참여) 에트나 화산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유는 뭘까? 수많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처럼 우리 앞에 온 에트나 와인의 첫 장부터 펴보자. 

위대한 와인 생산지의 첫 장

시칠리아 섬의 동쪽에 위치한 에트나 화산의 포도밭들은 500~600미터의 높은 지대에 위치한다. 8월이라도 밤이 되면 추울 정도로 서늘한 기후를 유지한다. 대부분 포도밭들은 동쪽을 향하고 있어 일조량이 풍부하다. 교과서에서 강조한대로 온화한 낮은 포도의 완숙을 돕고 서늘한 밤은 포도의 신선한 산도를 지킨다. 토양은 용암과 화산재로 구성되어 매우 척박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척박한 토양덕분에 에트나의 포도밭들은 무시무시한 필록세라의 침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무암 자갈과 검은 재로 이루어진 토양(위 사진)은 다른 토양에 비해 흙 자체의 결합력이 약해 해충이 살아서 포도나무의 뿌리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래서 에트나엔 필록세라 이전부터 존재했던 포도밭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은 70-80년이며 최고 100년 이상의 포도나무들도 있다. 
수많은 화산의 폭발 때문에 세부 토양의 종류가 다양한 것도 에트나 테루아의 특징이다. 이오니아해와 가까워 미세기후가 발달했고 포도밭 관리에 기계를 사용하기 힘든 지형이라 손 수확이 기본이다. 1990년대부터 이런 에트나의 테루아에 매료된 와인 메이커들이 에트나로 향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와인 파라다이스”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1968년에 에트나는 DOC로 지정되었고 에트나의 포도밭은 전체 3000헥타르가 넘는다(20019년 기준). 그 중 DOC 포도밭은 950헥타르로 점점 늘고 있다. 에트나 DOC에서 개성이 뚜렷하고 우수한 포도밭들을 선별, 구분하여 포도밭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콘트라다 Contrada로 정했다. 콘트라다는 중세시대에 작은 거리의 이름 앞에 붙이는 명칭에서 유래한다. 콘트라다의 개념은 부르고뉴의 그랑크뤼 포도밭 체계와 비슷하며 바롤로의 크뤼보다 한발 앞서 도입한 것으로 에트나 와인의 고급화에도 한몫 했다. 현재 에트나의 콘트라다는 133개에 달한다. 와인 레이블에 이 콘트라다 혹은 포도밭 이름이 추가로 인쇄되어 있다면 고급 와인임을 기억하자. 
 

<네렐로 마스칼레세 @www.tenutaterrenere.com>

에트나 와인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효자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세 Nerello Mascarese는 시칠리아 토착품종으로 DNA 검사 결과 산지오베제의 후손으로 밝혀졌다. 이름도 어려운 네렐로 마스칼레세를 두고 피노 누아의 섬세함과 네비올로의 묵직함을 겸비했다고들 한다. 붉은 베리류의 향미와 선명한 산도, 탄탄한 구조를 갖춰 우수한 숙성 잠재력을 기대하게 한다. 보조 품종으로 네렐로 카푸초 Nerello Cappuccio를 사용하는데, 짙은 색상과 좋은 산미를 가지고 있다. 에트나 로쏘 DOC의 품종으로 네렐로 마스칼레세 80% 이상, 네렐로 카푸초 20% 이하 기타 품종 10% 이하를 허용한다.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카리칸테 Carricante는 에트나에서 매우 중요한 청포도 품종이다. 기분 좋은 산미, 시트러스 풍미, 시원한 허브의 성격을 가지고 수확량도 많아서 양과 질 모두 생산자를 흡족하게 한다. 카리칸테와 단짝, 카타라토 Catarratto는 낮은 산도와 레몬, 풀의 향미를 가진다. 에트나 비앙코 DOC의 경우 카리칸테 60% 이상, 카타라토 40% 이하, 기타 품종 15% 이하를 허용한다. 

<에트나 화산이 보이는 눈 덮인 테레네레 포도밭 @www.tenutaterrenere.com>

에트나 와인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테누타 델라 테레네레'

현재 와인세계에서 가장 핫한 생산지, 에트나 와인의 현재는 두 명의 선구자, 안드레아 프랑게티 Andrea Franchetti(파소피시아로 Passopisciaro)와 마르코 디 그라치아 Marco di Grazia(테누타 델라 테레 네레 Tenuta delle Terre Nerre)의 선택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검은 땅의 포도원’이란 뜻의 테누타 델라 테레네레(이하 테레네레)는 현지인들도 버리고 떠난 땅의 잠재력을 믿고 마르코 디 그라치아가 2002년에 설립한 와이너리이다. 

테레네레는 에트나 화산의 북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총 포도밭은 27헥타르로 38헥타르로 확장할 예정이다. 포도밭의 해발고도는 700~800미터로 극한작업의 무대라고 볼 수 있다.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은 50~100년이며 130-140년 된 포도나무들이 자라는 프리필록세라 포도밭도 소유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에트나 화산의 영향으로 형성된 다양한 토양들의 분포와 해풍, 서늘한 산 바람, 적절한 온도와 일교차 그리고 충분한 일조량 등 매우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에트나의 테루아를 두고 마르코는 ‘지중해의 부르고뉴’라 표현한 바 있다. 

테레네레는 6개의 크뤼급 포도밭(콘트라다) Calderara Sottana, San Lorenzo, Bocca d’Orzo, Santo Spirito, Guardiola, Feudo di Mezzo를 소유하며 설립 때부터 모든 포도밭에 유기농법을 적용했다. 그 중 페우도 디 메쪼는 남성적이고 풍만한 타닌과 미네랄이 특징이라면 산 로렌조는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칼테라 소타나에서 나오는 프레필록세라는 포도나무 수령이 대부분 130년 이상 올드 바인이기 때문에 밀도와 구조, 균형감은 말할 수 없이 섬세하며 완벽하다.

단일 포도밭 와인 외에도 DOC에서 생산되는 에트나 로제, 화이트, 레드 와인들도 있다. 에트나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기 위해 노력해 온 테레네레의 와인들이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 전해지면서 명성을 쌓아갔다. 2018년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에서 에트나 와인 중 최초로 테레네레의 에트나 산 로렌조 2016가 95점으로 9위를 차지해 공히 에트나 와인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제 에트나 주변은 외지에서 온 와인생산자들로 빼곡하다. 각자의 철학대로 와인을 생산하지만 무엇보다 “에트나를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양조자가 좋은 와인을 만들 것”이란 마르코의 조언에서 에트나 테루아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에트나 로자토 2018

Etna Rossato 2018

생산지: 이탈리아 > 시칠리아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 100%
알코올: 13%

에트나 화산의 북쪽, 해발고도 600-900미터에 위치한 포도밭의 포도로 만든다. 수령은 25-60년이 되고 부드럽게 압착한 후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저온 발효한다. 양파껍질과 같은 색상이 띤다. 딸기와 체리, 라스베리의 향미가 은은하게 나고 신선한 산미가 돋보인다. 마실수록 향기롭고 잘 익은 과일의 맛이 잘 난다. 식전주로 활용하거나 해산물로 만든 전채 요리, 생선전, 호박전 등 비교적 순한 맛의 요리와 잘 어울린다. 

에트나 비앙코 2019

Etna Bianco 2019

생산지: 이탈리아 > 시칠리아 
품종: 카리칸테 70%, 카타라토 20%, 기타 품종 10%
알코올: 12.5%

에트나 화산의 북쪽, 해발고도 600-900미터에 위치한 포도밭의 포도로 만든다. 수령은 5-50년이 고 로자토와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압착한 후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저온 발효한다. 옅은 짚 색상에 광택이 난다. 열대과일, 시트러스, 바닐라의 향이 나고 신선하며 시원한 느낌이다. 깔끔하고 미네랄 뉘앙스가 잘 살아 있다. 입 안에서 매끄럽게 넘어간다. 식전주로 활용하거나 해산물 샐러드, 흰 살 생선 버터구이, 가벼운 치즈, 담백한 채소 찜과도 잘 어울린다. 

에트나 로쏘 2018

Etna Rosso 2018

생산지: 이탈리아 > 시칠리아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 95%, 네렐로 카푸쵸 5%
알코올: 14%

에트나 화산의 북쪽, 해발고도 600-900미터에 위치한 포도밭의 포도로 만든다. 포도나무의 수령은 25-60년이고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낮은 온도에서 발효한다. 이후 10-3-헥토리터의 큰 프랑스산 오크 통에서 16개월 동안 숙성한다. 루비 색상을 띠고 잘 익은 과일, 꽃, 향신료의 향이 난다. 붉은 과일, 특히 체리의 맛이 잘 드러나며 과일의 농축미와 부드러운 타닌 그리고 산뜻한 산미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단정한 맛의 와인으로 파스타, 해산물을 얹은 피자, 닭고기와 잘 어울린다. 

에트나 로쏘 페우도 디 메쪼 2018

Etna Rosso Feudo di Mezzo 2018

생산지: 이탈리아 > 시칠리아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 98%, 네렐로 카푸쵸 2%
알코올: 14.5%

테레네레의 크뤼급 와인으로 재배면적은 1.5헥타르에 불과하고 작은 자갈이 섞인 화산토로 구성되어 있다. 포도밭의 해발고도는 700-750미터로 포도나무의 수령은 40-80년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28-30도 사이에서 발효한다. 225리터와 500리터 프랑스산 오크 통에서 16-18개월 동안 숙성한다. 밝은 루비 색상을 띠고 잘 익은 과일, 향신료의 향이 풍부하고 집중력 있다. 견고한 타닌과 복합적인 과일의 농축미와 신선한 산도가 드러나며 교묘하게 밸런스를 잘 잡고 있다. 붉은 육류 요리, 진한 소스의 파스타, 양념한 돼지고기가 잘 어울린다. 평균 생산량은 6천병이다. 

에트나 로쏘 산 로렌쪼 2018

Etna Rosso San Lorenzo 2018

생산지: 이탈리아 > 시칠리아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 98%, 네렐로 카푸쵸 2%
알코올: 14.5%

테레네레에서 그랑크뤼급 대우를 받는 와인으로 2018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중 9위에 랭크된 바 있다. 포도밭 면적은 8헥타르이며 에트나 화산의 북쪽, 해발고도 700-750미터에 위치한다. 포도나무의 수령은 50-100년이며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28-30도 사이에서 발효한다. 225리터와 500리터 프랑스산 오크 통에서 16-18개월 동안 숙성한다. 밝은 루비 색상을 띠고 농축된 과일, 말린 베리류, 딸기, 체리, 꽃, 향신료의 향이 풍부하다. 베리류의 맛이 나며 타닌의 느낌은 매우 촘촘하고 견고하다. 산미는 생동감 넘치고 목 넘김도 실크처럼 매끄럽다. 여운은 깊고 부드럽게 이어진다. 제임스 서클링 점수 94

에트나 로쏘 프레필록세라 2017

Etna Rosso Prephylloxera 2017

생산지: 이탈리아 > 시칠리아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 98%, 네렐로 카푸쵸 2%
알코올: 14.5%

테레네레 양조장 근처에 위치한 이 포도밭은 19세기 전 유럽을 덮친 필록세라의 재앙을 피해 살아난 몇 안 되는 포도밭이다. 덕분에 130년된 포도나무에서 생산된 중후하고 세련된 네렐로 마스칼레제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다. 올드 바인의 생산성은 매우 낮은 편으로 1년에 6000병도 채 안 되지만 오랜 시간의 지혜와 생각을 담은 듯 깊이 있어 아름다울 정도다. 오래오래 입안에 머무는 여운이 일품이다. 

에트나 북쪽 경사면의 해발 600미터에 위치하며 재배면적은 1헥타르이다.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은 100-120년이다. 발효와 숙성방식은 산 로렌쪼와 거의 비슷하다. 밝은 루비 색상을 띤다. 이국적인 향신료 특히 검은 후추, 민트, 설탕에 절인 라스베리와 체리, 발사믹, 카카오의 풍미가 진하게 퍼진다. 단단한 타닌과 계피, 감초의 맛이 느껴지며 신선한 산미가 돋보인다. 풍부하고 복잡한 향과 맛이 나는 정말 화려한 와인이다. 붉은 육류 요리, 스테이크, 오래 숙성된 하드 치즈 등 강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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