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S

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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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4일, 나는 숨을 입안에 모은 후 힘껏 내뱉어  생일 케이크에 꽂힌 3백 개의 초를 껐다 . 유전자 검사 하나로 4~5천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에서 알코올의 흔적을 검출해내는 과학 대질주 시대에, 3백살 먹은 게 뭐 그리 대수로울까 반문할 독자도 있을 거다. 나의 생일이 대수로운 건 내 탄생의 비밀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아직 이탈리아가 하나를 이루지 못한 18세기 초, 포도와 와인을 규정하는 세계 최초의 성문법이 공포되었다. 이날은 나의 귀빠진 날이었고 내가 세상을 볼 수 있게 산파를 맡았던 사람은 나에게 ‘끼안티 클라시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람들은 나의 탄생이 와인 규정을 따른 의도된 출생이며 앞으로 어느 누구도 나의 이름을 위조할 수 없을 거라 했다. 한참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의 고향은 검은 수탉 전설로 유명한 곳이었으며 나와 흑색 조류를 묶어 놓으면 사람들이 비슷한 이름을 듣더라도 나와 동명인을 헷갈리지 않을 거라 했다. 와동일체(와인과 동물)의 아이디어는 공전의 히트를 쳤고 어떤 사람은 나의 이름이 아예 검은 수탉인 줄 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이야기고, 와인을 연구한 이탈리아 학자들은 나의 출생을 다음처럼 들려준다.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탄생 뒷이야기
 

1716년 9월, 피렌체 대공국의 수장 코시모 3세 대공은 한 법령(Bando Granducale)에 서명한다. 대공이 다스리는 피렌체 남부와 시에나 북부 사이에 놓여있는 샌드위치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보호하는 법령이었다. 아직은 이름조차 없는 토스카나 와인이 유명 가도를 달리게 되자 토스카나 공국 국경 밖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유럽에서는 가짜 와인이  제조되어 팔려나가고 있었다. 좀더 국익차원에서 본다면 그 당시 와인 소비대국인 영국에서 토스카나 와인의 인기가 높아지자 경쟁관계였던 프랑스와 스페인 와인과 대결하려면 토스카나 와인임을 부각시켜 국제 체면을 세워야 할 명분도 있어야 했다.
 

대공은 남 피렌체에서 북 시에나 구간의 옛 지명이 끼안티임을 참작해 ‘끼안티’를 와인명으로 채택한다. 끼안티 포도밭과 일반 포도밭의 경계를 가르고 끼안티 경계선 안으로 포함된 마을 지명도 구체적으로 규정에 기록했다. 이로서 원산지가 확실한 자국산 와인을 보호하고 위조 와인을 처벌할 수 있는 명분을 열었다. 대공의 법령은 나아가 현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규정을 낳았고 현대 이탈리아 와인법의 골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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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2013년 이전의 검은 수탉 로고 / 오른쪽: 바뀐 후의 로고>

 

 

검은 수탉이 끼안티 클라시코의 모델이 되기까지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검은 수탉 전설은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검은 수탉은 지구인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검은 수탉이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모델이 된 것은 법령 공포 후 2백 년이 지난 후다. 1932년 끼안티 와인 컨소시엄은 코시모 3세 대공이 의도한 끼안티 지명을 ‘끼안티 클라시코’로 확정한 뒤 그 명칭의 불가침권을 검은 수탉 마크로 굳혔다. 대공 시절에는 토스카나 지역 밖에서 가짜 와인 시비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토스카나 내부에서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끼안티라는 이름의 와인이 무려 6종류나 생겨나 1716년에 인증받은 원산지 자격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묘안이 끼안티 뒤에 ‘원조’를 뜻하는 classico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끼안티 와인 초창기에는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컨소시엄 회원만 검은 수탉 마크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2005년을 기점으로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생산자 전체로 마크 표시 부착 의무제가 확장되었다. 2013년에는 모델 교체도 있었다. 이전처럼 검은 수탉이지만, 민화적 분위기를 짙게 풍기던 모델에서 흑색 실루엣이 대담한 수탉으로 바뀌었다. 가슴을 활짝 부풀린 채 입을 벌리고 힘차게 새벽을 깨우는 수탉. 우리가 아는 사납고 공격적인 수탉의 이미지에 근접한다. 몇 세기 전, 이른 새벽 피렌체 기사를 깨워 시에나까지 단숨에 내달리게 해 모국에 승리를 가져다준 검은 수탉의 위용이 생동감을 준다.


지난 2월 11, 12일  양일 간 피렌체에서 ‘끼안티 클라시코 컬렉션 2019 ‘행사가 열렸다. 막 숙성을 마친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패밀리의  시음 행사다. 수탉이 밤을 깨고 새벽을 불러오듯, 생산자가 몇 년간 품어오던  맛의 비밀을 공개하며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놀라웠던 건 이틀간 개봉된 와인병의 수다. 197군데의 와이너리가 731종의 와인을 가져왔고 9천5백 여 병의 마개가 열렸다. 이탈리아산 단일 와인 시음 행사 중  수량 부문으로는 기네스북에 올려야 할지 싶다. 와인의 저력이 와인 역사의 두께만큼 깊음에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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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은 Annata(안나타, 해마다 생산되는 기본급 와인), Riserva(리제르바, 안나타보다 프리미엄급 와인), Gran Selezione(그란 셀레지오네), Vin Santo(빈산토, 디저트 와인)로 이루어진 빅 패밀리다.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시음행사의 덩치가 큰 건, 패밀리가 4종류로 갈리고 한 종류 당 해마다 출시되는 어린 와인과  숙성된 와인이 동시에 참가했기 때문에 와인 수가 불어난데 있다.


특히 그란 셀레지오네를 눈여겨 봐야 한다. 2012년에 처음 세상에 선을 보인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패밀리의 막내다. 형인 안나타와 리제르바에 비해 원료인 포도의 출처가 분명하다는 게 그란 셀레지오네의 정체성이다. 프랑스어로 말을 바꾸면 크뤼 밭이고 한국어로 하면 와이너리 주인과 포도밭 주인이 같다는 얘기다. 이 와인이 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와인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고품질을 지향하는 리제르바가 이미 있는데 그란 셀레지오네의 등장은 고급 와인 남발로 인한 시간, 자원 낭비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탄생 후 6년이 지나 유치원생이 된 그란 셀레지오네의 평판에 변화가 있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최소 80%로 산조베제 품종 함량을 묶어놨지만 사실상 상당수 생산자들은 산조베제만 사용해  토스카나의  순수혈통을 고집한다. 또한 셀러에서 와인을 6개월 더  숙성시켜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패밀리의 전체 이미지를 고급화한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끼안티 클라시코의 자연환경과  숙성의 힘을  교묘히 결합시켜 국제적인 와인 입맛에 적중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그란 셀레지오네 와인 생산량의 80%가 수출된다는 통계 숫자가 이를 반영한다.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패밀리에는 빈산토 디저트 와인도 포함돼있어  족보를 정리하다 보면 머리가 혼란스러워 진다. 3층으로 세운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피라미드는  머릿속을 깔끔하게 교통정리해준다. 끼안티 클라시코 지역은  넓이가  총 7만 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지역이다. 이 면적은 숲, 올리브 밭, 작물 밭이 포함되며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포도밭 등록부에 등록된 면적, 즉 검은 수탉 라벨을 달 수 있는 와인은  정작 7천 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온다. 7천 헥타르의 포도밭은 다시 9군데 마을에 나뉘어 분포한다.  라다 인 키안티, 그레베 인 키안티, 가이올레 인 키안티, 카스텔리나 인 키안티 등 18세기 법령이 만들어질 때 엮인 4군데 마을과 그 이후 추가된 5군데 마을이다.


유의할 점은 이 피라미드는 와인을 품질로 구분한 성적표가 아니라 음식 친화적인 와인을 고르는데 유용한 도구로 삼으면 될 것 같다. 음식과 같이 하면 두 맛이 동반 상승하는 누이좋고 매부 좋은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피라미드 계단을 한층 한층 올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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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타 타입


품종과 블랜딩 비율: 산조베제는 전체 와인 양에서 최소 80%를 차지하며, 나머지 20%는  콜로리노, 카나이올로, 카베르네 소비뇽, 멜롯, 시라를 생산자의 재량으로 섞는다. 숙성기간은 최소 12개월이다. 나머지 두 타입도 품종과 비율은 비슷하며 숙성기간에 차이가 있다. 


 어린 산조베제가 발산하는 제비, 장미꽃 향기와 체리, 허브의 풋풋함이 신선하다. 산미가 경쾌하며 타닌의 근육이 덜 풀려 긴장감이 전달되지만 순수하고 깔끔한 느낌이 든다. 버터나 올리브 오일에 버무린 파스타, 프라이 팬과 숯불에 구운 고기요리는 게눈 감추듯  와인을 순식간에  동나게 한다. 

 


리제르바 타입 
 

24 개월(병 숙성 3개월 포함)의 숙성기간.  품질이 우수한 해에 품질 좋은 포도송이를 선별해서 만든 와인이다. 안나타보다 조금 더 완숙되고 세련된 캐릭터를 드러낸다.  말린 꽃다발, 달콤한 자두, 블랙베리 향기와 감초, 후추 향기와 숙성된 산조베제의 타바코, 젖은 숲의  개성이 섞일 때 향의 향연이 펼쳐진다. 타닌과 산미는 어느 정도 다듬어져 차분함이 느껴지며 원만함의 바다에  힘의 물결이 잔잔히 인다.  안나타와 그란 셀레지오네의 개성이 적절히 섞인 중도적인 느낌이다.

 


그란 셀레지오네 타입 


최소 30개월(병 숙성기간 3개월 포함)의 숙성기간. 원래 뜻은 ‘극도의 선택’이다. 테루아를 와인에 실현하기 위해  포도를 극도로 제한했다는 의미이다. 집중과 농축, 힘이 그란 셀레지오네의 언어이며 어린 와인이라도 스위트한 과일, 허브, 감초, 계피 , 후추 향을 진하게 발산한다. 풀 보디의 묵직함과 함께, 산도는 깔끔하면서도 정신이 바짝들게 명쾌하다. 나비의 움직임처럼 천천히 잇몸을 조이다가, 어느 순간 벌처럼 입 안 전체를 점령하는 타닌의 강약 연기가 수준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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