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은 자타공인 새로운 시작 혹은 결심의 달이다. 외국어 학원과 피트니스 센터가 일년 중 가장 호황을 누리는 달도 다름아닌 1월이다. 2019년 달력의 첫 장을 펴며 김과장도 ‘뭔가 배워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은근히 음식 맛을 따지고, 고독한 미식가 정도는 아니지만 맛집을 찾아다니는 그는 최근 와인 동호회에 들어갔다는 이대리의 말이 떠올랐다.
요즘 와인이라면 차고 넘친다. 백화점과 마트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와인 세일 중이고 동네 편의점에도 버젓이 한 자리를 꿰차고 있지 않나. 와인이 대중화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와인을 고르는 일은 진땀 나는 일이다. 그동안 직원이 추천하는 와인만 사왔던 김과장은 이거다 싶은 생각에 시작하기로 했다. 바로 와알못 탈출이다.
괜찮아, 와인이야!
“와인은 어려워.”
“와인도 술인데 뭘 공부하면서까지 마시냐?”
와인을 둘러싼 부정 섞인 말들이 무성하지만 성인의 취미로 와인은 매우 만족스럽다. 와인이 어렵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 중 하나는 와인의 다양성 때문이다. 수많은 품종을 비롯해 생산지와 생산자, 빈티지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파고 파도 끝이 없다는 게 맞다. 그래서 와인에 몰두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단 것처럼 와인을 경험하고 공부할수록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읽기도 어려운 품종 이름을 비롯해 개별 생산지의 역사, 지리, 기후와 날씨, 수많은 생산자 등 알아야 할 것이 끝도 없어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데 와인만한 것도 없다. 또한 와인을 깊이 공부하게 되면 타인의 의견이나 결정에서 자유롭고 어느덧 나만의 의견을 펼치게 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은 와인에서도 딱 들어맞는다.
혼술이 대세라지만 와인은 사교적인 술이다. 혼자서 한 병을 비우기도 쉽지 않거니와 왠지 쓸쓸하다. 여럿이 모여 와인을 마시며 느낌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와인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음식문화와 함께 발달해 온 와인은 음식과 조화를 이루며 비로소 최고의 식탁을 완성한다.
한식에 반한 와인
와인 안주라면 뭔가 대단한 걸로 준비해야 할 것만 같지만 불금의 단골 메뉴, 치킨과 피자만으로도 충분하다. 의외로 와인은 한식과도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생선, 해물, 소고기, 채소로 만드는 각종 전과 화이트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건 이미 검증이 끝났다. 불고기와 갈비찜은 레드와인과 잘 어울려 이를 맛본 와인메이커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각종 전에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
이 밖에도 잡채, 족발, 육포, 만두는 물론 심심하게 간을 한 나물무침은 샤르도네 품종을 사용한 화이트와인이나 피노 누아 같이 가벼운 레드와인과 잘 어울린다. 심지어 매운 떡볶이, 매운 닭발과 레드 와인이라는 다소 엉뚱한 조합을 즐기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와인과 한식을 매칭해보면 손쉽게 집에서 뚝딱 만들거나 퇴근길에 세 팩에 만원으로 세일하는 반찬을 사와서 즐길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 특히 와인에 첫발을 내딛는 초보일수록 기존의 규칙과 타인의 의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어차피 개인의 취향이니까. 정답은 없으니 눈치 볼 것 없이 여러 조합을 시도해보라. 그렇다면 와알못 탈출은 시간 문제다.
매워도 너~무 매울 땐
달콤한 스위트 와인
혀가 얼얼해지는 매운 요리를 먹을 땐 과일 풍미가 풍성하고 뇌 속까지 만족감이 퍼지는 듯한 단 맛을 가진 와인이 제격이다. 달콤한 맛은 모든 것을 중화하기 때문에, 위장까지 타 들어가는 듯한 매운 맛을 완화시키는 소방수 역할을 한다. 청포도 품종인 모스카토Moscato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스파클링 와인과 스위트 와인으로 양조되는데, 포도 자체의 맛을 가장 잘 간직한다.
매운 닭발에는 달콤한 와인을 곁들여 보자.
청량음료처럼 보이는 패키지의 ‘벤락 스테이션 모스카토 Banrock Station Moscato’는 호주의 대표적인 와인기업 하디Hardy’s에서 만들었다(아래 사진, 홈플러스 판매). 신선한 포도, 레몬, 패션 프룻, 파인애플 향이 나고 가벼운 탄산이 상쾌함을 선사한다. 입 안에선 달콤한 맛이 기분 좋게 퍼지고 매운 맛을 씻어낸다. 모스카토 와인은 맵거나 짠 음식을 먹을 때의 필수템이다.
고소한 튀김요리엔
드라이 화이트와인
대표적인 맥주 안주인 치킨을 비롯해 피자, 꼬치, 감자튀김 등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요리의 경우 청량한 느낌의 드라이 화이트와인이 상당히 잘 어울린다. 기름 덕분에 맛이 풍부하고 고소해진 음식들을 마지막 한 조각까지 질리지 않게 먹으려면 깔끔한 맛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튀김요리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보자.
산도가 높고 과일 맛이 풍부한 소비뇽 블랑은 튀김 요리와 좋은 궁합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BR 더 와인 머천트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BBR The Wine Merchant’s New Zealand Sauvignon Blanc’은 영국의 유서 깊은 주류 기업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BBR)에서 선보인 대중적인 와인이다(아래 사진, 홈플러스 판매). 뉴질랜드의 말보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이 와인은 신선한 구즈베리, 갓 자른 풀, 패션 프릇의 향기가 풍성하다. 상큼 새콤하고 달지 않아 볶음 혹은 튀김 요리와 잘 어울린다.
강한 신맛이 부담스럽다면 적당한 산도를 가진 화이트 와인의 여왕, 샤도네이를 강추한다. 호주의 ‘하디 노타지힐 샤도네이 Hardy’s Nottage Hill Chardonnay’는 열대과일, 멜론 향이 풍부하고 오크 느낌이 살짝 나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입 안에서 부드럽고 산도가 적당해서 마시고 나면 산뜻하고 깔끔하다(아래 사진, 홈플러스 판매).
초보자를 위한
부드러운 레드와인
와인의 종류는 무궁무진해서 타닌이 강한 와인에서 부드러운 와인까지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와인에 입문할 땐 맛과 가격 모두 부담스럽지 않은 와인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대형 브랜드의 와인들이 여러모로 적당한 편으로 두 가지 레드와인을 추천한다.
프랑스에서 1,300명의 와인생산자들이 모여 만드는 Terre de Vignerons의 ‘시크릿드 베르티코 루즈 Secret de Berticot Rouge’는 장점을 골고루 갖춰 흠잡을 데 없다(아래 사진, 홈플러스 판매).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해서 잘 익은 블랙베리, 체리, 자두의 향과 맛이 풍부하고 타닌이 부드러워 목넘김이 편안하다. 언제 어디서나 제 모습을 잘 드러내는 와인으로 대한항공 이코노미클래스의 기내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 와인대회에서 플래티넘 매달을 수상한 바 있는, 초보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고스트파인 진판델 Ghost Pines Zinfandel’은 이미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성비 갑 와인’으로 알려진 와인이다.(아래 사진, 홈플러스 판매) 캘리포니아의 루이 마티니Louis Matini에서 만든 대중적인 브랜드 와인으로 과일 풍미가 가득한 품종답게 색상부터 진한 빨강에 블랙베리와 같이 잘 익은 과일, 모카, 구운 견과류의 향이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있고 질감은 매우 부드럽다. 소고기 스튜, 스테이크, 미트볼 파스타 같이 진한 고기요리와 잘 어울리고 한식에선 불고기, 양념 갈비구이와 매칭해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