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밸리 와이너리 기행[10] - 거기쉬 힐스 와이너리>
Grgich Hills Estate
글ㅣ사진 _ 손홍석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 지역은 나파 밸리(Napa Valley)이다. 나파 밸리는 좁은 골짜기를 따라 수백 헥타르(ha)의 포도밭이 50km 이상 길게 펼쳐져 있는 형태이며 특히 프리미엄 와인을 많이 생산하기로 유명하다. 나파 밸리 와인의 역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전에는 와인의 품질이 좋지 못했고, 금주법(prohibition)과 대공황, 필록세라 병충해에 의한 피해를 받으면서 그리 큰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품질이 우수한 와인들이 많이 생산되기 시작하였고, 1976년 우리에게는 “파리의 심판”으로 알려진 시음회를 통해 나파 밸리의 와인이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 유럽과 같이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와인 산업이 부흥하게 된다.
나파 밸리는 지중해성 기후를 기본으로 하지만 지리 조건에 따라 다양한 기후를 보인다. 남쪽의 평평한 지역은 San Pablo 만에 의한 영향으로 비교적 서늘하며 북쪽으로 갈수록 따뜻하다. 또한 폭풍을 동반한 겨울 날씨가 주로 서쪽 지역의 골짜기에 비를 뿌리기 때문에 동쪽 지역이 보다 건조한 기후를 보인다. 현재 나파 밸리는 16개의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 미국의 와인 원산지 명칭)으로 나누어지며, 약 450여개의 와이너리가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피노 누아, 메를로, 진판델을 비롯한 다양한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나파 밸리는 현재 연간 약 오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도멘 카네로스를 처음 본 소감은 그저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프랑스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작고 노란 이 와이너리는 동화에 나올법한 성처럼 언덕 위에 아름답게 위치하고 있다. 긴 계단을 걸어올라 와이너리의 테라스에 다다르면 삼삼오오 앉아서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고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든다. 내려다보이는 포도밭을 바라보며 나파 밸리의 따스한 햇살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한 잔의 스파클링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테라스는 어떤 좋은 레스토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거기쉬 힐스 에스테이트(Grgich Hills Estate)는 커다란 성 같은 벽돌 건물에 붉은색 지붕이 얇게 올려져 있는 구조로, 언뜻 봐도 최근에 지어진 와이너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벽면에는 담쟁이 풀이 자라고 있고 커다란 입구는 금방이라도 중세 기사가 뛰쳐나올 것만 같다.
이곳의 테이스팅 룸은 다른 곳과는 달리 와이너리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오크통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비밀 창고 같은 테이스팅 룸이 나온다. 테이스팅 룸에는 그동안 획득한 많은 상들과 메달이 전시되어 있어 자신들이 훌륭한 와인임을 뽐내고 있는 것 같다.
와이너리는 1977년 Mike Grgich와 Austin E. Hills에 의해 1977년 설립되었으며, 둘의 이름을 따서 와이너리의 이름을 정했다. Grgich는 크로아티아 사람으로 와이너리의 입구와 와인 라벨에서 크로아티아의 국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58년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여 캐나다와 나파 밸리를 거치면서 와인을 만드는 평범한 와인 메이커였다.
그러나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부르고뉴 와인을 제치고 그의 1973년 빈티지 “샤토 몬텔레나 샤르도네(Chateau Montelena Chardonnay)”가 최고의 화이트 와인으로 선정되면서 명성을 얻게 된다.이듬해 그는 포도밭의 소유주이자 사업가인 Hills를 만나 나파 밸리의 심장이라 불리는 러더포드 지역에 Grgich Hills Estate를 설립하였다.
와이너리가 문을 연 직후, 1977년 빈티지의 샤르도네 와인이 시카고에서 열린 와인품평회에서 전 세계 221개의 샤르도네 와인 중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Grgich의 이름은 또 한차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현재는 샤르도네 와인뿐만 아니라 카베르네 소비뇽, 퓌메 블랑, 메를로, 진판델 등의 품종으로도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고 있다.
특히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5주가 넘는 침용 기간과 21개월의 프랜치 오크통 숙성, 보르도 품종의 블렌딩을 통해 풍부하고 복잡한 아로마를 지닌다.
Grgich Hills Estate는 건강하고 품질이 좋은 포도를 생산하기 위하여 유기농법과 생물역학농법을 이용하여 포도를 재배한다. 캘리포니아의 다른 와이너리들은 포도를 다른 포도재배자들로부터 사들이기도 하지만, Grgich Hills Estate는 품질을 위해 직접 재배한 포도만 사용한다. Grgich는 90이 다 된 나이에도 아직도 와인을 직접 만들고 있다. 그의 딸과 조카들이 그와 함께 일하고 있으며, 가족형 와이너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Grgich가 만든와인들은 정상 회담의 만찬주로 사용되는 영광을 수차례 얻었지만, 정작 Grgich는 자신이 만든 와인이 와인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에 특별한 와인으로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와인 셀러 하나하나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돌보는 그의 열정은 왜 Grgich Hills Estate 와이너리가 유명해질 수 밖에 없는지를 말해준다.
글쓴이 _ 손홍석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학사
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 박사
UC Davis Genome center 박사후연구원
고려대학교 와인연구소 연구교수
현) 동신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