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새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말이라는 이 시간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달력을 되돌려 올 한해 참석했던 시음회와 각종 와인 관련 행사들을 정리하고 내년도 달력을 넘기며 계획된 일정들을 채워 넣다 보니 벌써 마음의 시간은 2016년 7월에 다다른다. 가만... 7월에는 이탈리아 바롤로 지역에서 개최되는 음악, 문학 그리고 와인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축제 Collisioni Festival (콜리시오니 페스티벌) 행사가 있는데 내년에도 참석하게 되려나 잠시 생각해본다. 내년 축제에 엘튼 존의 공연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만, 비교적 규모가 적은 와인 행사에 대한 계획은 아마도 몇 달 후에나 들을 수 있겠지 싶다.
콜리시오니 페스티벌은 2009년 첫 회를 시작으로 피에몬테 주에서 매해 개최되는 대규모 축제로, 와인 부분은 ‘The Wine Project’ 라는 이름으로 올해 2015년 행사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탈리아 와인전문가인 이안 다가타Ian D’Agata 씨가 총괄, 7월 17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이번 와인 프로젝트 행사에 필자 역시 세계 여러 나라의 와인 전문가들과 함께 Experts Panel로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다.

30도를 훌쩍 넘는 뜨거운 날씨에 행사 기간 내내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페스티벌의 열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지만 와인 행사, 특히 시음회를 진행하기에는 다소 무리라 느껴질 만큼의 더위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본격적인 와인 관련 행사는 첫 회 였던 만큼 진행상 다소 미흡하거나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어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도 간혹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Wine Project에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참석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쉽게 접하기 힘든 다양한 이탈리아 와인, 특히 토착 포도품종으로 만든 와인에 대한 각종 세미나 및 시음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참가자들 즉, 초대 받은 각 국의 와인 전문가들은 Experts Panel로서 예외 없이 4-5회의 시음회 내지는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해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고 다른 패널 및 참가자들과 소통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나 1인 혹은 몇몇 전문가 및 생산자가 이끌어가는 시음회나 세미나가 아닌, 다양한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토론에 참가하며 교류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일까? 가령 아시아 시장을 주제로 한 공개토론 형식의 세미나에서는 중국 중산층에 대한 기준을 두고 패널들끼리 팽팽히 맞서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의 대표주자, 베르디키오Verdicchio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필자가 The Wine Project에 다시 참석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이탈리아 토착품종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하여 와인을 시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특히 마르케Marche지역에서 생산되는 베르디키오Verdicchio 와인을 집중 시음했는데 매우 인상 깊었다. 이안 다가타 씨의 주도 아래 두 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된 세미나에는 베르디키오 와인 생산자들도 참석했으며, 패널들과 일반 참석자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오가며 현장에 생동감을 더했다. 베르디키오가 소아베Soave를 만드는 베네토 지역의 가르가네가Garganega 품종, 그리고 캄파니아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피아노Fiano품종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화이트 와인 품종이라고 목청 높여 설명하던 지난 3월 이안의 빈이태리 와인아카데미 강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베르디키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 품종은 베네토Veneto 지역의 Trebbiano di Soave 그리고 롬바르디Lombardy 주의 루가나Lugana 지역에서 자라는 Turbiana(Trebbiano di Lugana라고도 불림)와 동일한 품종이다. 가령'Turbiana를 주요 품종으로 Lugana지역에서 만든 화이트 와인’이라고 라벨에 표기되어 있으면 베르디키오 품종으로 만든 와인인 셈이다. 움브리아, 라치오, 토스카나 등 기타 이탈리아 지역에서도 베르디키오가 소량 재배되고 있는데, 이 중 마르케Marche 주의 두 가지 DOCG 와인'Verdicchio dei Castelli di Jesi’와'Verdicchio di Matelica’가 품질 높은 와인으로 인정 받고 있다. 좀더 내륙에 위치한 Matelica 지역의 베르디키오가 Jesi 지역의 그것에 비해 산도가 대체로 높고 약간 날카로운 뉘앙스가 감돈다고는 하나, Jesi지역의 와인들도 세부 지역에 따라 Matelica지역과 비슷한 성격의 와인을 만들기도 하고 그 차이가 크다고 한다.
콜리시오니 세미나에서는 총 25 종의 베르디키오 와인을 시음했는데, 빈티지의 차이는 물론 오크통 사용 여부 및 오크통 숙성 기간에 따라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여 주어 더욱 흥미 있었다. 마르케의 베르디키오 와인은 주로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리즐링 와인에 비유되곤 하는데, 높은 산도, 꽃 향과 스파이시한 풍미, 효모와의 접촉 등 그 연결고리에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 시음회에 패널로 참석했던 필자가 현장에서 소견을 피력했듯이, 몇몇 와인은 리즐링보다는 아주 잘 만든 프리미에 크뤼 혹은 그랑 크뤼급 샤블리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Santa Barbara의 Stefano Antonucci 2013년 빈티지가 그러했다. 시음했던 25종의 와인 모두 좋은 품질을 보여주었지만, Santa Barbara의 와인과 함께 Garofoli의 2010년산 Serra Fiorese Classico Riserva와 Sartarelli의 2013년 산 Verdicchio Tralivio가 최고의 인상을 남겼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고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베르디키오 와인, 2016년에는 한국 및 영국을 포함, 전세계의 많은 와인 소비자들이 이 맛있는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을 마주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개인적으로는, 필자가 아직 가보지 못한 마르케의 두 DOCG지역들을 방문해 다양한 와인생산자들을 만나고, 무엇보다도 오크통 사용 여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 나누고 함께 시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