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접할 수 없는 와인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반가움이다. 지인이나 시댁 가족들은 필자가 와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것을 알기에 런던을 방문할 때마다 와인을 선물하곤 한다. 선물하는 사람은 무엇을 살까 고민하지 않아서 좋고 받는 사람은 언제나 기쁘고 설레므로,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다.
1년 전 독일에서 와인공부를 마치고 룩셈부르크에 터를 잡은 아끼는 후배로부터, 독일 모젤 지역에서 생산된 피노 블랑 화이트 와인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지인을 초대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 와인을 열면서, “룩셈부르크에도 모젤 강을 중심으로 소량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고 그 중 Ehnen 지역에 위치한 Harmillen이라는 생산자의 와인은 꽤 인기가 있다”는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가볍고 상쾌해서 마시기 좋은 와인이니 맛보라던 그녀의 미소와 함께.
그녀의 말이 옳았다. 가볍고 상쾌하며 마시기 좋은 이 화이트 와인은, 입안에 머금은 직후 당도가 살짝 높은 감이 있었지만, 예리한 산도가 긴 여운을 남겼고 부드러운 질감 속으로 단맛이 슬며시 사라지면서 깔끔한 뒷맛을 제공했다. 그리고 12.5% 정도의 적당한 알코올 도수 덕분에 가벼운 식전주로 마시기에 제격이었다.
향이나 맛에서 확연한 개성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피노 블랑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종종 낭패감을 안겨준다. 또한 중성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비슷한 품종들 사이에서, 예를 들면 오크 숙성하지 않은 샤르도네 또는 피노 그리(피노 그리지오)- 헷갈리기도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노 블랑만의 숨겨진 개성이 분명히 있다. 품종별로 그 특성을 기록해 놓은 파일을 뒤져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피노 블랑(Pinot Blanc): 중성적인 스타일, 중성적인 과일 풍미, 수줍은 또는 연약한 샤르도네(Chardonnay) 같은 모습. 서양배, 가벼운 꽃 향, 잔당으로 인해 단맛을 감지할 때도 있음, 페놀 성분(쌉싸름한 또는 씁쓸한 뒷맛을 주는)과 기분 좋은 산도. 북부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가벼운 스타일의 화이트와인과 프랑스 알자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풍만한 스타일의 화이트와인으로 구분 가능. 구수한 보리를 연상시킴.”
사실 필자가 연상해 낸 구수한 보리를 제외하고는, 역시 뚜렷한 개성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더 열심히 마셔보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