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먹방의 시대! 외식과 셰프들의 전성시대다. 모든 방송과 인쇄매체, 온라인과 SNS를 총 망라!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먹방의 기세는 점점 더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전 국민이 유명한 셰프의 이름과 레스토랑을 줄줄이 나열하며 4대 천왕이니 100대 맛집이니 고메위크 레스토랑을 섭렵하며 평가를 하러 다니고, 집에서는 수요미식회나 집밥 백선생의 요리를 따라 하느라 마트의 식재료를 품절시킨다는 이야기는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을 뒤져가며 셰프의 트랙레코드와 계보를 파헤치고, 이 셰프는 왜 지금 이런 요리를 내어왔는가를 한눈에 척! 하고 간파하는 연예인 사생팬 같은 미식가도 있는가 하면, 레스토랑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누구고 배치되어 있는 가구나 테이블에 올린 커틀러리 등의 집기는 어느 나라, 어떤 브랜드, 어떤 디자이너의 것인지를 알아보는 감식가 수준의 고객들을 만날라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전 국민이 이렇듯 음식과 외식, 먹을거리에 열광하고 있는 건, 아마도 단군이래 초유의 일이라 할 만하다. 지금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함포고복의 태평성대가 아닌 것이 그저 유감일 따름이다.
외식 문화의 출발점은 성숙한 예약문화에서부터
시대가 이럴진대 우리나라의 외식 문화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그 이유는 외식문화를 측정하는 잣대 중 첫 번째가 성숙한 예약문화에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예약문화는 아직도 개화기 수준이다. 예약을 하고는 당일이 되어 아예 전화도 받지 않고 안 나타난다는 이른바 노쇼(no show), 예약부도라고 표현할 만큼 험악하다. 심지어 예약하기 어려운 크리스마스 이브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날에는 예약 쇼핑 즉, 몇 군데를 동시에 예약을 하고 그날 교통사정이나 기분에 따라 가는 사람까지 있는 실정이다. 10월 중순에 본 조선일보 이민석 기자의 기사 중 일부다. “우리나라 예약문화 세계 꼴찌… 펑크 선진국 4배”라는 제목으로, 신문사 자체 조사에 의하면 예약 부도율은 평균 15%, 식당 예약 부도율은 20%라고 한다. 10년 전 소비자원 조사(11.2%)의 약 두 배가 되었고, 어떤 식당에선 각종 기념일이나 공휴일에 예약 부도율이 60~70%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10년 전보다 예약하는 사람은 많이 늘었지만 예약 부도율이 높은 게 문제인 것이다. 일단 남보다 먼저 예약부터 해놓고 보자는 소비자들의 잘못된 인식과 문화가 빚어낸 현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신문 기사의 말미에는 “예약 부도의 일상화는 막대한 사회• 경제적 손실을 낳는다. 본지와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서 예약 부도가 낳는 5대 서비스 업종 매출 손실이 연간 4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며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필자 또한 얼마 전 목격한 어느 먹방 블로거의 포스팅을 보고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수준 낮은 행태를 예약 노하우라며 블로거나 페이스북에 자랑하는 사람까지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예약에 맞추어 미리 식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해 놓은 레스토랑의 손실도 막대하지만 유럽의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디파짓(deposit, 보증금) 제도 등 아무런 사회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고, 예약에 대한 신뢰 구축이 요원하다는 점은 외식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레스토랑 문화
레스토랑 문화는 프랑스 혁명으로 봉건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시작되었다. 귀족들의 특권이 사라지면서 어떤 귀족들은 자신의 요리사를 데리고 해외로 망명을 함으로써 외국에 프랑스의 요리와 음식 문화를 전파했는가 하면, 프랑스에 남게 된 실직한 귀족이나 궁궐의 요리사들은 생업을 위해서 자신의 레스토랑을 개업하게 된 것이 레스토랑의 효시라 한다. 이때부터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귀족이나 왕족 같은 고급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에는 돈은 있으나 귀족들과의 신분 차이로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신흥 부자 계급인 부르주아들이 귀족의 빈자리를 점유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점차 귀족 같은 옷차림과 교양, 에티켓을 갖추려 노력했고 귀족의 식사 문화를 향유하려 노력한 것이 오늘날 레스토랑의 귀족적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다. 아직도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종업원들의 복장과 절도 있는 접객 태도에 귀족들을 대하던 예의범절이 강력하게 요구됨과 동시에 고객들에게도 격식 있는 옷차림 규정과 식사 예절을 까다롭게 요구하는 곳이 많은 것은 이러한 전통 때문이다. 레스토랑 문화의 핵심은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친절과 배려’임을 잊어선 안 된다.
레스토랑 예약 시 점검할 사항들
편하게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과 집 밖에서 식사를 사먹는 행위인 외식(外食)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식하는 경우 고객에게는, 레스토랑에서 전문적인 셰프의 요리와 소믈리에나 서비스 전문인력들의 수준 높은 접객 서비스를 접함으로써 특별함, 각별함 같은 특정 심리를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레스토랑 식사 문화의 출발점은 바로 예약하는 전화로부터 시작한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식사를 원하는 날짜와 시간, 그리고 좌석의 확보, 원하는 공간이나 자리, 정찬이나 와인 등의 가격을 안내 받고, 원하는 식사 메뉴와 기피하는 음식이나 음식 알레르기 등을 꼭 알려주어야 한다. 또한 와인 애호가라면 미리 와인 반입 가능 여부와 코르키지(레스토랑에서 와인 글라스 서브와 와인 병을 오픈하고 서빙해주는데 부과하는 요금) 등도 체크해야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사전에 논의하지 않은 와인을 들고 왔을 때 기분이 상하고 즐거운 식사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이러한 사전 상의와 협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서 와인 주문하기
우리나라는 안주를 곁들인 술상을 즐기지만, 서양은 메뉴마다 어울리는 반주를 곁들이는 방식으로 음식을 즐긴다. 보통 식전주(aperitif 아페리티프)는 키르 같은 와인칵테일이나 드라이하고 산도가 높은 화이트 와인 또는 샴페인 같은 스파클링 와인을 주로 마시며, 이탈리아에서는 캄파리, 미국에서는 칵테일을 즐기는 편이다. 식사 중에는 주로 드라이한 레드 와인을 음식과 매칭시키는데,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스테이크에는 레드 와인 같은 천편일률적인 조합보다는 소믈리에와 상의하여 좀더 창의적인 조합을 경험하려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식후에는 달콤한 디저트 와인이나 코냑, 칼바도스, 그라파 같은 고알코올의 술을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러한 순서를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이 존중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한 만큼, 상황에 따라 즐거운 식사를 진행토록 하자.
누구라도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낯선 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면 난처하고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처음 방문한 레스토랑에서 낯선 와인들이 적혀 있는 와인리스트를 건네 받으면 같이 있는 사람들은 와인 공부한 사람이 와인을 고르라면서 슬그머니 발을 뺀다. 이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장 먼저 전략을 짜야 한다. 가격대를 염두에 두고,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와인 스타일 또는 와인산지와 품종을 고른 후, 나눌 만한 스토리가 있어서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와인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은 실행 단계이다. 일단 아는 와인부터 고르자. 잘 알려진 와인들을 찾아보면 그 레스토랑의 와인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지 비싼지 대충 감이 잡힌다. 마침내 가격 좋은 와인을 발견하면 와인통으로 인정을 받는다. 단, 본인이 독단적으로 와인을 고를 것인지, 아니면 소믈리에를 불러 스무고개 하듯이 몇몇 와인을 추천 받은 후 그 중에서 고를 것인지 정해야 한다. 와인리스트가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며 (일반적인 레스토랑은 100개, 전문적인 와인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라면 200개~300개 정도의 와인리스트를 갖춘 곳이면 일단 합격이다). 와인글라스와 와인 셀러 등의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으며, 와인을 담당하는 소믈리에가 있는 곳이라면 굳이 자신의 독단으로 와인을 결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지간히 경험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소믈리에와의 대화를 통해 큰 위험 없이 와인을 고르는 것이 낫다. 설령 잘 모르는 와인을 권유 받았더라도 당황할 것 없다. 그 와인은 당신이 원하는 몇 가지 조건을 이미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와인을 접한다는 대단한 즐거움을 선사할 테니까.
와인과 음식의 조화: 향기
일본이 낳은 세계 최고의 소믈리에 다사키 신야는 “요리와 와인의 조합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향”이라고 그의 저서 ‘와인생활백서’(2008, 바롬웍스)에서 언급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일에서 너무나도 당연시하여 간과하고 있는 기본적인 바를 이야기한 것이다. 와인은 기본적으로 향을 맡는 음료이며 와인의 향은 대부분 과일 향이 차지하기 때문에, 그 향과 어울리는 요리를 곁들이면 되는 것이다. 화이트 와인은 일반적으로 감귤류, 자몽, 풋사과 향이 나며 레드 와인은 체리, 산딸기, 블랙베리 같은 향이 난다. 이러한 와인의 향이 입안에 남아 있을지,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셨을 때 음식과 와인의 향이 서로 부딪칠지 아니면 잘 어울릴지를 고려해야 한다. 젓갈이 들어간 음식에는 딸기보다 레몬이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단순히 와인의 향과 어울리는 요리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와인-음식 조합의 감각을 익힐 수 있다.
와인과 음식의 조화: 색
와인과 요리의 색을 맞추는 것도 좋은 조합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이나 칠레의 리슬링, 남호주의 리슬링 와인처럼 그린 패턴(감귤류의 상쾌한 향이 나며 노란색이 짙지 않고 녹색이 감도는 새싹 색)을 띠는 와인은, 요리에 허브를 사용하거나 그린에 가까운 이미지의 요리(닭고기를 익혀 잘게 찢은 후 크레송(물냉이)을 올리고 라임과 올리브 오일을 뿌려 샐러드처럼 만든 요리)가 제격이다.
또 다른 예로 이탈리아의 소아베 품종 화이트 와인이나 부르고뉴의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처럼 옐로 패턴(달콤한 과일 향이 나며 노란색이 짙은 황금색)을 띠는 와인은, 닭고기에 계란을 섞어 피카타를 만들거나 빵가루를 묻혀 버터구이로 구운 음식 등과 잘 어울린다. 로제 와인은 어떨까? 닭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굽거나 소테로 만들어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오렌지색 요리라면, 약간 시원하게 해서 마시는 어떤 나라의 로제 와인이든 무난하다.
피노 누아, 보졸레, 이탈리아의 키안티 와인처럼 가벼운 레드 패턴(밝은 붉은색)의 와인은, 간장이나 굴 소스에 재운 닭고기를 중화요리 풍으로 볶거나 튀겨 밝은 갈색을 띠는 요리와 같이하면 좋다. 카베르네 소비뇽, 보르도 블렌딩, 호주의 쉬라즈, 이탈리아의 바롤로나 몬테풀차노처럼 풀보디하고 색이 어둡고 짙은 와인은, 레드 와인을 사용해서 만든 스튜나 닭고기 데리야키, 스테이크 등 갈색 요리와 잘 어울린다.
레스토랑의 음식과 와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박현진의 파리에는 요리사가 있다(BR미디어, 2014)를 읽다가 책에 등장하는 48개의 레스토랑과 요리사 중 첫 번째로 소개된 윌리스 와인 바의 사장 윌리엄슨의 음식과 레스토랑에 대한 철학을 읽고는 깜짝 놀랐다.
"레스토랑은 즐거움을 갖기 위한 자리이고, 즐거움이란 모든 요소가 종합적으로 발현될 때 느껴질 수 있는 것이죠. 레스토랑은 행복을 파는 곳이에요. 단순한 음식, 서비스, 인테리어, 와인의 수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어떤 식당을 회상할 때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고, 마셨던 와인의 향이 계속 코끝에서 느껴지는 것 같고, 지배인의 얼굴도 아른거리는, 그런 곳이 좋은 레스토랑 아닐까요."
요즘 같은 셰프들의 전성시대에 잘나가는 몇몇 셰프들은 해방기에 완장을 찬 누구처럼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그들에게는 윌리엄슨 사장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읽어보고 좀더 깊이 있는 사고와 철학을 가져보라 말해주고 싶다.
"음식은 흥미로워야지 지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식탁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 음식이 끼어들어, 쉬지 않고 음식만 먹고 있어야 하는 그런 식당은 싫더라고요.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가 있더라도, 그 사람의 음식만 감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죠. 우리가 식당에 가는 것은, 음식에 대해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식탁 위에서 인생의 달고 쓴 이야기도 나누고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