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베제 와인을 독학으로 마스터하다
- 파올로 오스티 -
동쪽에 버티고 있는 끼안티 산맥(Monti dei Chianti)이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어 올리브, 포도, 곡물이 풍성하게 자라는 끼안티 클라시코 구릉지대. 이곳을 차지하려고 오랫동안 전쟁을 하던 두 앙숙, 피렌체 공화국과 시에나 공화국의 시민들은 지칠대로 지쳤다. 두 공화국의 영주는 지루한 영토전쟁을 끝내기로 하고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양자가 협의한 날에 경마를 벌이는데 두 공화국의 기수가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한다는 무혈방안 이였다. 경마의 시작은 수탉이 우는 시점이었으므로 이에 피렌체 측에서는 검은색 수탉을 구했고, 먹이를 조금밖에 주지 않아 검은 수탉은 항상 굶주렸다. 반면 시에나 측에서는 흰색 수탉을 선택해 금이야 옥이야 키웠고 사료도 배불리 먹였다.
드디어 시합날, 항상 배가 고픈 피렌체 수탉은 이른 새벽부터 훼를 치며 울었고, 이 소리에 잠이 깬 피렌체 기수는 서둘러 말을 몰아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에나 성곽이 어스름히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 이즈음 잠이 깬 시에나의 흰 수탉은 울었고 늦잠에서 깬 기수는 허겁지겁 길을 재촉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에나 기수가 적국 기수를 만난 곳은 시에나가 지척인 폰테루톨리(Fonterutoli) 마을로 이 경마시합은 국경선을 시에나 근처까지 늘린 피렌체 공화국이 압승을 거두게 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이탈리아 와인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었음직한 검은 닭 전설이다. 이 닭은 전설 속에만 살지 않고 현재형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베끼오 궁전 2층에는 “500인의 방”이 있는데 이 방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 중에는 전설의 검은 닭이 등장한다. 또한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병 목에 붙어있는 100원 동전 크기만한 원 라벨 안에도 새겨져 있다.
일단 새 영토를 획득한 피렌체공화국은 끼안티 연맹(Lega del Chianti)을 창설해 이곳을 다스렸고 승리의 일등공신인 검은 수탉을 국기에 그려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끼안티 지역에서 마시던 산조베제 와인은 몇 세기 뒤엔 &apos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다른 끼안티 와인과 구별하기 위해 검은 수탉을 상징으로 정한다.
끼안티 클라시코 언덕의 포도나무, 올리브 숲과 밭 경계에 심어진 사이프러스는 토스카나를 말할 때 우리 의식에 조건반사로 떠오르는 풍경이다. 이 언덕을 와인 관점으로 본다면 9개의 마을, 7천 헥타르의 포도밭으로 고쳐 말할 수 있는데 산조베제 와인으로 성공을 거두고 싶은 와인열혈가들의 붉은 꿈이 자라는 터라 할 수 있다.
파올로 오스티(Paolo Osti)씨는 잘나가던 건축가였다. 우연한 기회에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되어 소믈리에 과정을 했고 이후에는 아예 와인생산자로 전직한다. 1985년 현재의 와이너리 건물 주변의 포도밭을 구입했고 1990년에는 ‘일 타로코 (Chianti Classico il Tarroco)&apos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이 시장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 이후 그는 꾸준히 포도밭을 늘렸고 품종도 산조베제에서 카나이올로, 칠리에졸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으로 다양화했다.

▲파올로 오스티 사장, 토라챠 디 프레수라(Torraccia di Presura) 와이너리의 경영을 맡고 있으며 양조도 그가 담당한다.
현재는 총 32 헥타르의 밭을 소유하며 연 23만병을 생산하는 중견규모의 와이너리로 성장했다. 그의 주력 와인은 끼안티 클라시코, IGT급 수퍼투스칸과 말바시아와 트레비아노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과 스푸만테다.
오스티씨의 와이너리 경내로 들어서면 호흡이 멈출 정도의 목가적인 주변경치에 감탄하게 되고 와이너리 건물 내로 들어가면 시음실 벽을 차지하고 있는 각종 상장과 품질 인증서로 놀라게 된다.

오스티씨의 와인은 각종 국제와인품평회(LA International Wine Competition, Sakura Japan Women’s Award, 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Vienna International Wine Challenge, Selezione del Sindaco)에서 각종 메달을 수상했으며 &apos2016년 코리아 와인 챌린지’에서는 Il Tarocco와 두 종류의 IGT급 와인이 금상 및 동상과 ‘이탈리아 베스트 레드와인(Best Itlay Red)’부문에 당선되었다.
국제와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오스티씨의 산조베제 와인은 양조관련 도서를 독학한 후 그것을 자신의 감각으로 해석한 ‘오스티 상표 와인’이라는 점이 놀랍다. 건축가란 그의 경력도 특이하지만 그의 두 아들도 와인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의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아들 중 누구도 양조학을 전공하지 않는 게 섭섭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가족 중 의사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머쓱히 웃는다. 자식이지만 아버지의 직업을 강요하지 않은 그의 관대함이 좋아 보였다.
오스티씨의 와인은 한마디로 튼튼한 골격으로 요약될 수 있다. 햇빛 잘 드는 양지에서 잘 익은 건강한 포도에서만 나는 섬세한 향과 맛이 골격 사이의 빈 틈을 채우고 있다.
2014년산 끼안티 클라시코 “일 타로코 Il Taroco”는 산조베제와 소량의 카나이올로 네로의 블랜딩 와인으로 오스티씨가 와인업계에 입문한 후 처음 만든 와인이다. 9월 셋째 주에 잘 익은 산조베제와 카나이올로를 섞어 압착한 후 섭씨 28~30도에서 알코올 발효가 이뤄진 뒤 15~18일간 침용을 했다. 소량의 카나이올로가 포함되 있어 그런지 ‘일 타로코’는 청명한 붉은빛이 돈다. 방금 딴 붉은 꽃에서 피어나는 향기와 묽은 적색 과일향기는 황홀하다. 오크통 숙성을 했지만 산조베제 자체의 향기는 변함없으며 부드러움 속에 가려진 날카로운 타닌은 고상하다.

▲ 토라챠 디 프레수라Torraccia di Presura 와이너리가 생산하는 와인의 모든 라벨은 오스티씨의 아내가 디자인했다. 위 와인은 일 타로코 끼안티 클라시코
‘일 타로코’ 가 탄탄하게 지어진 전원주택을 떠올리면, 두 종류의 IGT급 와인은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육중함과 구조감 그 자체다. 단단한 구조 안에 웅크리고 있다 튀어나오는 향기의 사슬은 검붉은 빛 과일, 제비꽃, 이리스가 흐드러지게 핀 숲 속으로 공간이동한 착각을 들게 한다.

▲ 루초라이오 Lucciolaio (산조베제 80%, 카베르네 소비뇽 20%, 알코올: 13.5%)
‘아르칸테Arcante’와&apos루초라이오Lucciolaio’는 오스티씨가 산조베제 와인을 독학으로 배운 후 보르도 품종에 도전하여 성공을 거둔 와인이다. 산조베제의 섬세함을 간직하면서 카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의 강직함에 용해된 토스카나와 보르도의 신선한 결합이다. 아르칸테와 루초라이오를 마시는 내내 두툼하며 중심에 선홍색 피가 고여있는&apos피렌체 스테이크’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필자의 환상일까!!

▲ 아르칸테Arcante (산조베제,메를로,카베르네 소비뇽을 동등한 비율로 블랜딩, 알코올: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