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지식에 목마른 애호가들, 대전에 모이다
▲ <아시아 와인트로피> 마지막날. 국내외 20개국에서 온 125명의 심사위원과 독일와인 마케팅사 직원들의 기념사진
10월 30일 오후 7시, 그들의 통상적인 저녁식사 시간에 비하면 조금 이른 듯 하지만 이날 밤 식사가 마지막이니만큼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구운 마늘과 쌈장,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 한 점을 넣은 상추쌈을 소주와 같이 곁들였다. 뜨거운 삼겹살이 비집고 나오는 상추쌈을 먹는 스페인 친구를 보면서 그들은 모처럼 활짝 웃었다.
지난 7일간 행사를 치루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빴던 유럽에서 온 동료들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한식을 먹으며 타지에서 맺어진 우정을 돈독히 했으며, 가까운 미래에 다시 보게 되리란 묵언의 재회를 다짐했다.
이들이 회포를 푸는 장소는 한국 와인 축제의 허브, 대전. 지난 10월 24일부터 30일까지 아시아 와인 트로피(Asia Wine Trophy)와 대전국제와인페어가 열려 한국의 와인 전문가, 애호가 및 일반인이 모여 한바탕 와인 축제를 벌이던 곳이다.
대전 와인 축제는 와인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사전 행사격인 아시아 와인 트로피와 본행사인 대전국제와인페어로 이어지는 릴레이식 와인 행사다. 행사 기간 내내 와인 발효 냄새가 진동하는 와인양조장을 방불케했던 대전무역전시관, 대전컨벤션센터, 한빛탑 광장 일대는 약 7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1969년 한국에서는 최초로 서양식 와인인 ‘선리 포트 와인(Sunry Port Wine)’ 생산 시도의 전력이 있는 대전에서 와인문화 보급 및 정착을 위한 와인축제의 접목 후 거둔 의미 있는 성과이다.
대전국제와인페어는 24일 국내외에서 온 130명의 심사위원들이 모인 가운데 국제와인기구의 심사 규칙을 설명하는 브리핑으로 막을 올렸다. 심사위원들은 와인심사가 열리는 나흘 동안 30개국 와인생산자들이 보내온 3,869여 종의 와인을 평가했고, 이중 그랜드 골드 메달 18종, 금메달 868종 그리고 은메달 309종을 가려냈다.
집계 결과, 1개의 그랜드 골드와 23개의 금메달이 중국와인에 돌아가 심사위원들을 적잖이 놀래켰다. 그 놀람에는 MADE IN CHINA 상표를 단 중국 공산품의 맹기세 이후 이번에는 중국와인이 그 자리를 이어가지 않겠느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또한 한국와인도 처음 출품해 구신대륙 와인과 승부를 겨루었는데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 개를 얻으며 선전했다.
아시아 와인트로피에서 경쟁을 치루던 와인은 행사가 끝난 후 다음날 시작된 대전국제와인페어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국제적인 와인품평회에 출품된 수준급 와인의 향과 맛을 느끼려는 이들의 높은 관심은 대전무역전시관 중앙에 설치된 “와인 트로피관” 주변을 겹겹이 에워싼 인간사슬 줄에서 알 수 있었다. 트로피관 주변에 설치된 비지니스존에는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는 16개 나라의 와인생산자 129명이 보내온 우수한 와인을 만날 수 있었고, 퍼블릭존(일반구역)에서는 한국에 수입, 유통되고 있는 와인을 맛보고 구입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
▲대전무역전시관 중앙에 설치된 “와인트로피 관”에서는 아시아와인 트로피에 출품된 와인을 무제한 시음할 수 있었다.
특히 본 행사의 주최 및 진행사인 대전마케팅공사는 비지니스존에 참여한 해외전시업체와 한국 및 아시아의 수입, 유통사, 호텔, 와인 바와의 비지니스를 촉진,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썼다. 28일의 비지니스 데이, 서울 소재 와인 비지니스 관계자를 유치하기 위한 전용버스 운영, B2B 디너가 그 예이다.
대전와인페어는 미식 축제로서뿐만 아니라 와인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와인 길잡이 역할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아시아 와인트로피 그리고 다양한 마스터 클라스를 선보인'아시아 와인 바이어스 컨퍼런스(Asia Wine Buyers Conference)’를 꼽을 수 있다.
아시아 와인트로피의 심사위원과 와인업계 지식인들이 초청되어 주옥같은 와인지식이 녹아있는 강의를 진행했는데 그 중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작년에도 인기를 끌었던 ‘나 자오’ WSET 와인 강사의 ‘중국 와인(China, an ancient new-world wine country)’, 에릭 아라실의'루시옹 와인 (Crus,Icone and Awarded dry Wines from Roussilon)’ 이온 루카의 몰도바 와인(Wines of Moldova-Eastern Europe’s Best Kept Secret) 같은 마스터 클래스는 올해도 성황리에 끝나 두 해 연속 성공을 거뒀다.
▲아시아 와인트로피와 대전국제와인페어 기간에 열린 “아시아 와인 바이어스 컨퍼런스”의 마스터 클래스는 폭넓은 와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강좌로 자리잡았다.
세 개 와이너리의 양조 컨설턴트로 일하는 스테파노 간도리니가 진행한 ‘칠레 와인( Chile’s Great and Unique Terroirs)’ 마스터 클래스에서 선보인 와인들은 구대륙 와인과 대등한 수준급으로, ‘칠레와인은 가성비 좋은 와인’이란 선입관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훤칠한 동유럽 미남 ‘우로스 볼치나’는 유럽에서도 정작 만나기 쉽지 않은 슬로베니아 와인을 소개했고, 최정욱 소물리에가 진행한 한국와인 강좌는 외국인 심사위원들의 높은 관심 속에 자리가 가득 매워졌다.
또한 몇 개의 마스터 클래스는 아시아의 와인 소비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아시아 와인시장 분석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도구를 제시했다. ’르 코르동블루 숙명 아카데미’ 김지형 총괄 팀장의 ‘2021년까지의 한국 와인시장 전망과 대응 마케팅전략’과 WANDS 와인매거진 편집장 야수코 나고시의 ‘2015/2016 일본 와인시장 보고서’가 그랬다.
옥의 티라고 해야 할까!! 주최측과 진행관계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10월 28일에 있었던 ‘비지니스 데이’는 한국와인시장 진입 가능성을 꿈꾸는 해외전시자들의 희망 창구로 한국 와인업계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다. 비지니스 데이는 일반인들의 비지니스존 출입이 제한되는데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해 그 의미가 희석되기도 했다.
또한 주최측의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입사 참여가 기대에 못미쳐 해외전시자들의 아쉬움이 컸다. 비지니스존에서 해외전시자의 와인을 시음한 방문객들이 퍼블릭존에 있는 국내 와인판매사를 방문하여 와인을 구매하지는 않더라는 판매 담당자의 볼멘소리도 들렸다.
2012년 본행사가 ‘대전국제 푸드 & 와인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불리울 때부터 필자는 이탈리아 와인생산자들과 참여해왔다. 올해는 푸드 부문이 있던 2015년 이전 행사에 비해 관람객수는 줄었지만, 와인을 취하기 위해 마시는 알콜 음료쯤으로 여기던, 이른바 '술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예전에 비해 젊은 층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부스에 와서 와인시음이 가능한지 정중하게 물어보거나 또는 적당한 양만 따라달라는 매너를 갖춘 이들도 늘었다.
이런 추세를 볼 때, 이탈리아 와인생산자 부스에 와서 "달콤한 와인 주세요"하는 대신 “모스카토 와인 주세요”하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필자는 확신한다.
▲ 450여 군데의 이탈리아 와인생산도시의 연합인 ‘치타델 비노(CITTA’ DEL VINO)’ 와인협회는 올해 12군데 와인생산자가 만드는 21여 종의 우수한 이탈리아 와인을 선보여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치타델 비노 와인협회는 두 차례의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했으며 영천과 업무협약 MOU를 맺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