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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신화와 전설을 마시다
 
 
캄파니아Campania 와인
 
 
- "아스프리니오의 독백" 편
 
 
 
 
사람들은 나를 ‘아스프리니오(Asprinio)’ 포도라고 부른다. 이때 ‘aspro’는 ‘신맛’을 의미하는데, 그만큼 나는 신맛을 낸다. 자연적으로 산을 많이 갖고 있기도 하거니와, 농부들이 워낙 높은 곳에서 키우기 때문이다. 내가 자라는 곳은 정확하게 캄파니아(Campania) 주 카세르타(Caserta) 군의 아베르사(Aversa) 시이며, 에트루리아(Etruria)인들은 3천년 전부터 나를 나무에 매달아 키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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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는 곳은 독자들이 쉽게 상상하기 힘든 곳인데, 바로 포플러 나무 위다. 포플러 나무는 보통 14~15m까지 자라는데, 나는 그 잎에 가려 햇빛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안간힘을 다해 포플러 나무의 키를 따라잡으려 애쓴다. 밑에서 올려다 보면 내가 마치 고목나무에 붙어있는 매미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와인을 만들기 충분할 만큼 잘 익은 열매를 맺으려면 이렇게 높이 자라는 수밖에 없다. 이곳 사람들은 내가 자라는 방식을 ‘알베라테 아베르사네(Alberate Aversane)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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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러 나무 사이의 간격은 10미터나 되고 그 사이로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 그 공간에 대마, 복숭아, 브로콜리, 토마토 등을 재배한다는 사실을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나의 큰 키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여름이 되어 포플러 나무잎과 포도나무잎이 무성하게 자라 한데 어우러지면 마치 큰 숲을 이룬듯이 보이는데, 우리가 만들어놓은 시원한 그늘 밑으로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모여들기도 한다. 또한 과거에 프랑스의 브루봉 왕족들이 이곳의 포도밭 주인임을 자처했을 때, 이에 반항하던 반군이 추적을 당하다가 이 숲(?)에 몸을 숨겨 살아남았던 적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날 땅에서 가까이 자라는 대부분의 포도들이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높은 곳에서 자랐다는 점이다. 변화의 계기를 가져온 것은 누메로시(Numerosi) 형제인데, 이들 형제는 높은 곳에서는 포도를 재배하기가 힘들고 이해타산도 맞지 않다는 구실을 들어 포플러 나무에 매달려 자라던 나의 친구들을 모조리 땅으로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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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땅으로 끌려내려가 2미터의 좁은 간격으로 일렬로 늘어선 채 자란 포도들은, 사시사철 농부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 마침내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여전히 포플러 나무에 의지해 높은 곳에서 자라는 나, 아스프리니오는 신맛이 강해서 미세한 기포가 살살 올라오는 스푸만테(Spumante, 발포성 와인)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여담이지만, 산파올로 축구장(Stadio San Paolo, 나폴리에 있는 축구장으로 1헥타르 크기) 만한 포도밭에 심을 수 있는 포도나무는 50 그루 이하로 제한되어 있고 수확량은 약 1만 2천 kg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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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가 되면 일명'거미 사나이’라 불리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내가 맺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몰려오는데, 손에는 나보다 키가 더 큰 사다리가 들려있다. 그들은 일하는데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각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포도를 딴다. 사다리의 발판 사이 간격은 사다리 주인의 발에서 무릎까지 길이와 일치하고, 무릎이 닿는 곳은 무릎 모양처럼 패어 있다(여기에 무릎을 끼워, 미끄러져 추락할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거미 사나이들은 수확한 포도를 페시나(fescina)라는 바구니에 담고 줄에 매달아 땅으로 내려보내는데, 이때 원뿔 모양의 페시나 바구니는 땅에 닿을 때 충격이 덜하므로 포도가 상처를 덜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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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누메로시 형제가 하는 얘기를 엿들은 적이 있다. 15미터가 넘게 자란 나무에 매달려 포도를 따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인들이 이 일을 더이상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따라서 고소공포증이 없는 외국인 거미 사나이를 외국에서 데려와야 할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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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커스를 방불케하는 포도 수확이 끝나면, 나의 열매들은 누메로시 형제가 일하는 양조장으로 재빨리 옮겨진다. 그리고, 백 년 전만 해도 나무통 압착기의 쇠바퀴로 사정없이 즙을 짰는데, 이제는 고무로 된 주머니가 부풀어 오르면서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열매를 눌러 즙을 짠다. 그리고 탁한 색의 포도즙은 서늘한 지하의 발효통으로 옮겨져 며칠 간 발효를 거친 후, 스푸만테의 생명인 섬세한 기포를 생성시키기 위해서 커다란 압력탱크 안에서 꼼짝없이 6개월을 갖혀 있는다. 마침내 멋진 기포를 지닌 와인으로 다시 태어난 나, 아스프리니오는 샴페인 병에 담겨 코르크 마개와 철사로 단단히 고정된 후 와인숍으로 향하는 트럭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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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프리니오(Asprinio)
아스프리니오는, 캄파니아주 중부에서 생산되는 아베르사(Aversa) DOC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주요 품종이다. 나폴리군과 카세르타군의 22개 마을에서 재배되며, 생산하는 와인의 타입은 주로 드라이 와인 또는 스푸만테 와인이다. 아스프리니오라는 이름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신맛을 뜻하는'aspro’에서 왔다. 이 품종은 3천 년 전 중부 캄파니아에 삶의 터를 잡은 에트루리아인이 최초로 심었으며, 높은 생산성을 목적으로 15~20미터 높이의 포플러 나무에서 재배했다. 이 독특한 재배방식은 ‘알베라테 아베르사네(Alberate Aversane)’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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