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몬테의 맛과 향을 찾아서 [2]
글, 사진 _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AIS 소믈리에)
파소네(Fassone)라 불리는 피에몬테 토종 육우는 전통적인 고기 요리의 단골 재료이다. 이 소고기는 독특한 맛을 지니는데,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적어 날씨와 상관없이 일년 내내 소가 푸른 풀을 뜯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름에는 알프스나 근교 산자락의 방목지로 이동해 신선한 풀을 뜯을 수 있으니, 고기의 맛이 훨씬 좋을 수 밖에 없다.
이 소고기로 만든 요리들은 다음과 같다: 소고기 홍두깨살 1kg당 바롤로 와인 1병을 넣고 3시간 정도 뭉근히 끓인 '바롤로 브라자토’, 송아지고기, 암탉, 소 내장을 육수에 끓여 전통 소스인 바녜 베르데(파슬리 소스)나 바녜 로쏘(생 토마토 소스)에 찍어먹는 피에몬테식 수육요리 '볼리토 미스토’, 양파, 마늘, 갖가지 향신료를 넣은 화이트와인에 소고기를 하룻밤 재운 후 푹 끓여 만든 '까르보나다 비텔로네’가 그것이다.
푸른 숲과 알프스 산으로 둘러싸여 천혜의 사냥터이기도 한 이곳에는 멧돼지, 사슴, 산토끼 요리도 풍부하다. 이 야생고기를 레드와인이나 토마토 소스, 갖은 향신료를 넣어 푹 고아 만든 '스투파토’(스튜의 일종), 그리고 산토끼 고기를 전통방식으로 익힌 '치벳 레프레’가 그 예다.
원래 피에몬테는 타닌과 산미가 높고 보디감 있는 레드와인 산지이므로, 고기요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와인은 무궁무진하다. 소스의 색이 비교적 진하지 않고 요리 시간이 짧은 요리에는 3~4년 숙성시킨 '돌리아니 돌체토’나 '바르베라 델 몽페라토’ 또는 '카레마 네비올로'나 '레쏘나 네비올로’가 잘 어울린다(카레마와 레쏘나는 피에몬테 북부의 대표적 네비올로 와인이다). 한편, 사냥고기를 푹 고아 국물이 짙고 자작한 요리에는 바롤로 또는 피에몬테 북부의 네비올로로 만든 브라마테라, 가띠나라, 겜메 등 향기가 복합적이며 뒷맛이 긴 중후한 레드와인이 적격이다.
위 요리들은 누구나 좋아할만한 대중적인 요리지만, 선뜻 맛 보길 주저하게 만드는 몇 가지 전통요리도 있다. 이런 요리는 “소는 버릴 것이 없다”는 이곳 속담을 잘 보여주는데, 소와 닭의 뇌, 볏, 골수, 콩팥, 간을 육수에 끓인 '피난지에라’, 내장과 고기에 튀김옷을 묻혀 튀긴 '후리토 미스토’ 등을 들 수 있으며, 여기에 달콤한 아마레띠 과자나 모스타르다(과일을 설탕시럽, 겨자에 절인 것)를 곁들여 먹는다. 토기 냄비에 일정량의 마늘, 앤초비, 올리브 오일을 듬뿍 넣고 죽이 될 정도로 뭉근히 익힌 바냐카우다 소스를 각종 야채에 찍어먹기도 한다. 또한 송어를 식초와 화이트와인에 익힌 후 식혀먹는'트로타 인 카르피오네’는 더운 여름에 생선을 오래두고 먹을 수 있는 요리다.
튀긴 내장에 맵고 단 모스타르다를 곁들이는 요리에 어울릴 수 있는 와인을 찾기는 어렵지만, 이곳의 오래된 식습관에 따라 '프레이자’나 '보나르다’ 등의 약발포성 레드와인이 어울린다(프레이자와 보나르다는 피에몬테 토착 품종으로 만든 레드와인으로, 품종이름과 와인이름이 같은 약발포성 와인이다). 마늘 맛이 강한 바냐카우다 소스는 주재료가 야채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맛을 내기 때문에 '바르베라 다스티’ 또는 향신료 향이 강하고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숙성시킨 '펠라베르가’ 레드와인과 함께 먹는다. 식초 맛이 강한 송어요리의 경우, 나무통에서 숙성시킨 랑게 리슬링 또는 복합적인 향과 뒷맛이 긴 티모라쏘 와인과 같이 먹을 때 강하고 시큼한 생선 맛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다.
전채요리, 파스타, 고기요리로 배가 불러 더이상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은데도 건너뛸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치즈다. 이탈리아에는 총 46개의 DOP(원산지 명칭) 치즈가 있는데, 그 중 여섯 개가 피에몬테에서 생산된다. 이 여섯 개 치즈 중 다섯 개가 생산되는 곳은 랑게 와인 생산지와 일치하는데, “와인이 맛있는 곳은 치즈도 맛있다”는 신조어의 탄생을 기대해도 될 듯 하다.
여름에 고랭지에서 방목된, 또는 목장에서 갖 짜온 소, 양, 염소 젖으로 숙성기간과 부드러움이 각양각색인 치즈가 만들어진다. 부드럽고 쌉쌀한 맛이 나는 로비올라 치즈와 토미니 연성 치즈는 '콜리 토르토네시 코르테제’ 화이트와인과 함께하면 신선한 맛이 돋보이며, 브라, 라스케라, 토마, 그라노 파다노 같이 조금 딱딱한 치즈에는 '바르베라 달바’, '루케’, '그리뇰리노 다스티’가 좋다(루케, 그리뇰리노 다스티, 콜리 토르토네시 코르테제 와인은, 모스카토 와인으로 알려진 아스티 주변에서 재배하는 토착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다). 한편 로까베라노 치즈와는 '오바다 돌체토’를, 푸른 곰팡이가 희끗희끗 보이고 모래알처럼 잘 부서지는 카스텔마뇨 치즈와는 '바르바레스코'를 마신다
여기까지 아무리 풍성하고 맛있게 먹었다고 해도, 디저트를 생략한다면 뭔가 단단히 빠진 식사다. 초콜릿, 또는 초콜릿을 주재료로 만든 디저트는 식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다. 1560년대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공작이 초콜릿을 처음 피에몬테에 들여왔는데, 당시에는 초콜릿을 음료 형태로 마셨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고형 모양(타블릿 형태)을 띠기 시작했고, 피에몬테에서는 프리즘 모양의 '잔두요또’ 초콜릿이 등장했다.
1806년 나폴레옹이 내린 대륙봉쇄 조치 때문에 코코아 수입이 어렵게 되자, 피에몬테의 파티시에들은 피에몬테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헤이즐넛 열매에 눈을 돌렸다. 초콜릿의 주재료인 코코아버터 대신 헤이즐넛 페이스트를 넣어 만든 것이지만, 맛도 있을뿐더러 물자부족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넘기게 해주었다. 이외에도 리큐르 초콜릿 '쿠네제 알 럼’과 '타루투피 초코볼’이 있다. 쓴 맛과 긴 뒷맛이 오묘하게 섞인 이곳의 초콜릿에는 바롤로 와인에 각종 열매를 우려서 만든 '바롤로 끼나토’가 잘 어울린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왕의 수염 모양을 따서 만든 '쿠루미리’ 과자, 계란노른자, 설탕, 모스카토 와인을 중탕으로 천천히 익혀 만든 실크처럼 부드러운 맛의 '자바이오네 크림’, 설탕에 절인 과일, 견과류와 건포도가 들어간 크리스마스 빵 '파네토네’ 같은 디저트는, '모스카토 다스티’, '아스티 스푸만테’, '말바시아디 카스텔누오보’, ’브라케토 다퀴’ 같은 디저트와인과 함께 마신다. 말린 모스카토 포도로 만드는 '로아촐로 파시토’, '스트레비 파시토’, '에르바루체 파시토’ 같은 와인은, 우유, 바닐라, 생크림, 설탕을 낮은 온도에서 익힌 후 차게 식혀 먹는 부넷, 빤나코타, 크림 캐러멜 등의 푸딩과 근사하게 어울린다.
(파네토네 사진 출처_http://www.wildyeastblog.com/2012/12/18/panettone-rec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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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난영 소믈리에의 이탈리아 맛과 향 이야기는, 다음 편 [베네토 전통 음식으로 알아보는 베네토 와인]에서 계속됩니다.
글쓴이 _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AIS 소믈리에,
이탈리아 와인 유학 및 여행 전문 기관바르바롤스쿠올라근무.
( baeknanyou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