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선물, 스푸만테 [1]
글, 사진 _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AIS 소믈리에)
불꽃놀이와 거침없이 솟아오르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두 달 전 2013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전세계가 2013년 첫 자정에 터트린 스파클링 와인은 약 5억 병 정도였는데, 놀랍게도 그 중 10분의 1이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피에몬테의 스파클링 와인의 주요생산지는 타나로(Tanaro)강 유역으로, 피에몬테에서 생산되는 중요한 와인들은 대개 이곳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 피에몬테의 스파클링 와인은, 타나로 강이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 마을을 빠져 나와 아스티와 알레산드리아에 막 진입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타나로(Tanaro), 벨보(Belbo), 보르미다(Bormida) 언덕 사이를 촘촘히 수놓고 있는 조그만 마을들에서 생산된다. 이곳을 달리 말하면'스푸만테 삼각지’라 할 수 있다.

이곳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모스카토 비앙코 품종이 재배되었는데 그 당시엔 아피아나(APIANAE)로 불렸다. APIANAE는 라틴어 ‘벌’의 복수형인데, 벌이 이 포도의 향기로운 냄새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세시대 때 수도사들은 모스카텔룸(moscatellum, 모스카토)으로 만든 와인을 종교의식에 사용했고, 귀족들은 식사나 연회 때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마셨다. 이렇게 조상대대로 스푸만테 삼각지에 살면서 모스카토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어온 사람들을 모스카티스티(moscatisti)라고 부른다.
한국에 많이 알려진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와 '아스티 스푸만테’는 모스카토 비앙코 품종으로 만든 대표적 와인이며 '모스카토 디 카넬리(Moscato di Canelli)’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카넬리는 스푸만테 삼각지 중심부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를 가리킨다. 인구는 10,800명 정도이며, 도시내부와 그 주위에는 쟁쟁한 스푸만테 와이너리들이 진을 치고있다.
카넬리는 1800년대 중반 이탈리아 최초로 샴페인 양조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 생산이 시도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용감한 도전은 '까를로 간치아(Carlo Gancia)라는 인물에 의해 주도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샴페인의 심봉자였던 간치아는 샹파뉴 지역으로 유학을 결심하였고, 랭스 지역에서 샴페인을 만드는 전과정을 익힌 후 카넬리로 귀향하여 샴페인 양조방식으로 스푸만테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간치아는 피에몬테의 기후나 토양이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품종재배에 적합하다고 믿고 이 품종들을 재배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이 지역의 터줏대감인 모스카토 품종을 샴페인 양조방식을 적용해 스파클링 와인(또는 스푸만테)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의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고 Martini & Rossi, Cinzano, Cora, Bosca, Contratto와 같은 후발주자들이 이러한 시도에 동참하였다.
1895년, 병 발효를 대체하는 압력탱크 발효법(또는 샤르마Charmat 방식)이 알려지면서 이를 도입한 스푸만테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샤르마 방식으로 생산된 모스카토 스푸만테의 성공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간치아가 들여온 후 피에몬테에서 서서히 재배되기 시작하던 프랑스 품종은 아예 모스카토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렇게 모스카토에 밀려난 두 외래품종(피노 누아, 샤르도네)은 이웃인 롬바르디아 주의 올트레포 파베제(Oltrepo Pavese) 지역에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샴페인 양조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의 최대생산지라는 피에몬테의 명예도, 일부 생산자를 제외하고는1970년대를 정점으로 퇴색하기 시작하였다. 이탈리아 북부의 다른 지방에서 동일한 방식을 표방한 스푸만테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프란차코르타DOCG와 트렌토DOC 스푸만테를 말한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1990년에 피에몬테의 일곱 군데 와이너리가 뭉쳐 '샴페인 양조방식의 스푸만테 재건 프로젝트(Progetto Spumante Metodo Classico in Piemonte)’를 결성하였고, '피에몬테, 이탈리아 스푸만테의 산실’이란 옛 명성을 되찾고자 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첫째,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품종연구, 둘째, 포도재배에 적합한 토양과 기후를 바탕으로 적절한 테루아를 구별해내는 것이었다. 사실 밤낮의 기온 차이, 선선한 기후, 낮은 습도, 석회질이 풍부한 토양 등은 우수하고 산도 높은 스푸만테를 탄생시킬 수 있는 선재조건인데, 이러한 잠재력을 갖춘 곳은 이탈리아 최초로 샴페인 양조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한, 스푸만테 삼각지(타나로강 남쪽의 쿠네오, 아스티, 알레산드리아 지방 포함) 내에 있는146개의 마을이 적격이었다.
이렇게 지역 선별작업이 끝나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2000년에 최초의 스푸만테 생산, 2002년에 '알타랑가Alta Langa DOC’로 인정, 10년 뒤 DOCG로 등급 상승되는 등 초고속 성장이 이어졌다. 이로써 160년 전에 이루지 못했던 간치아의 숙원, 즉 프랑스 품종에 샴페인 양조방식을 사용한 스푸만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와인은, 알수록 더 즐길 수 있다”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뒤지면서 알아낸 스푸만테 관련 자료에서 발췌한 것이다. 여기서 잠시 1800년대 중반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때는, 까를로 간치아가 후라텔리 간치아Fratelli Gancia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와이너리가 스푸만테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할 무렵.
간치아에 못지않은 이탈리아 최초의 스푸만테 추종자 중 하나였던 주제페 콘트라토(Giuseppe Contratto) 역시 카넬리로 거처를 옮겼다. 원래 토리노 출신인 콘트라토는 1867년 후라텔리 간치아 와이너리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의 꿈을 현실로 이룰 기반을 닦아나갔다.

그는 샴페인 양조방식으로 스푸만테를 만들려면 기온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셀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지금의 와이너리 건물과 스푸만테 셀러가 위치한 응회암으로 된 낮은 언덕을 셀러 부지로 선택하였다. 이곳의 지하셀러는 1872년부터 파기 시작했는데 약200여명의 인부가 동원되었고, 칼슘이 딱딱하게 굳은 응회암을 파내야 했기 때문에 셀러를 완성하는데 총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셀러는 5,000m2 (약1500여평)의 면적에 복층으로 되어 있는데 가장 깊은 곳은 지하 32미터에 달한다. 이곳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연간 생산되는 240,000병의 스푸만테를 거뜬히 소화해 낸다.

콘트라토의 지하셀러는 초기 스푸만테 선구자들이 카넬리 시 지하에 앞다투어 지었던 셀러들 중 하나다. 이 셀러들은 모두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스푸만테 숙성실로서의 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이 지하셀러들 중 보스카(Bosca), 콥포(Coppo), 간치아(Gancia) 와이너리의 지하셀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 신청된 상태이다. 유네스코의 공식 인정을 받느냐는 문제는 차후의 일이겠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곳들이 '지하의 거대한 성당(Cattedrali Sotterranee)’으로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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