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리츄얼의 섬이다."
“와인은 캐쥬얼casual이라는 홍수 속에 있는 리츄얼ritual의 섬이다”. 조승연 작가가 그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 [와인이 어려운 술이 된 역사적 이유] 편에서 언급한 문장이다. 개인마다 해석은 다르겠지만, 때에 따라 경건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인간의 감정에 깊이 개입하는 와인의 감성적인 속성을 설명한 것 같다. 익히 알려진 수많은 품종 중에서 “와인의 리츄얼한 영역”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품종 중 하나로 비오니에(viognier)를 꼽을 수 있겠다. 영국의 유명한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이 “진실로 쾌락주의자를 위한 청포도 품종”이라고 묘사했을 만큼, 비오니에는 매우 감각적이고 우아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품종이다.
비오니에의 매력
비오니에는 대단히 향기롭고 꽃 향이 많으면서도 산도가 깔끔하게 나타나는 근사한 와인을 만드는 품종이다. 아주 훌륭한 품종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가장 진귀한 청포도 품종이기도 한 비오니에의 매력은 인동덩굴의 매력적인 풍미, 사향 냄새 나는 과일 맛, 원숙한 보디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을 홀리는 라놀린 같은 질감에 있다. 양조 방법에 따라 스타일이 사뭇 달라지는데,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양조한 비오니에 와인은 잘 익은 복숭아와 살구의 풍미를 이끌어 내고,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비오니에 와인은 여러 겹으로 흘러나오는 바닐라와 향신료 향이 더해진다.
원래 프랑스 북부 론이 원산지이지만, 캘리포니아와 호주 등 신세계 와인산지에서도 비오니에로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참고로, 비오니에는 껍질이 두꺼워 열에 대한 내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서늘한 기후를 띠는 론의 비오니에는 향수를 연상시키는 향기가 짙고, 온화한 기후 지역의 비오니에는 잘 익은 과일 풍미가 좀더 또렷하다. 비오니에는 자연적으로 산도가 낮고 당도가 높은 품종인데, 온화한 지역의 경우 자칫 알코올 도수가 높고 욱중한 느낌의 와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산도와 신선함을 보존할 수 있도록 수확 시기와 양조 방법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얄룸바에서 탄생한 호주 최초 & 최고의 비오니에
남호주의 에덴 밸리(Eden Valley)는 인접한 여타의 와인 산지에 비해 좀더 서늘하고 강우량이 많은 편이다. 포도밭에는 돌이 많이 섞인 토양이 분포하고 있으며 포도가 자라는 기간이 비교적 길다. 무엇보다도 에덴 밸리는 호주 최초의 비오니에 와인을 탄생시킨 지역으로, 쉬라즈 그리고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과 함께 대단한 명성을 자랑한다.
얄룸바(Yalumba) 와이너리가 호주 최초로 비오니에 와인을 상업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이다. 1968년 프랑스 몽펠리에 지역에서 들여온 것으로 알려진 세 그루의 비오니에 묘목을 얄룸바가 찾아냈고, 묘목에서 얻은 클론을 바탕으로 개체수를 늘려갔고 결국 와인을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낯선 품종으로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것이 처음부터 쉬웠을 리는 없다. 얄룸바의 수석 와인메이커 루이사 로즈(Louisa Rose)에 따르면, “리슬링 품종을 다루듯, 이른 시기에 수확해 낮은 온도로 발효해서 얻은 비오니에 와인은 풍미가 없었고 쓴맛이 강했다. 비오니에가 햇볕을 좋아하는 품종이고 잘 익었을 때 수확해야 풍미가 좋은 와인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즈음이었다”.
Yalumba The Virgilius Viognier 2019
얄룸바 버질리우스 비오니에 2019
이후 얄룸바의 비오니에 와인은 품질 향상을 거듭하며 와인평론가들 사이에서 “호주에서 가장 훌륭한 비오니에 와인”으로 평가 받아왔으며, 호주의 권위 있는 와인평론가 제임스 할리데이(James Halliday)는 “얄룸바 버질리우스 비오니에는 호주 비오니에 와인을 대표한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버질리우스(Virgilius, 70-19 BC)는 로마 제국시대의 시인 Virgil을 가리키며 그의 작품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즐겨 읽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 서사시 “게오르기카(Georgics)”에서 포도농사에 관해 다루어 기원전부터 인류가 포도를 작물로 재배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얄룸바 버질리우스 비오니에는 오랜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손수확한 포도를 송이 채 압착해서 얻은 즙을 천연 효모로 발효시켜 만들었고, 이후 11개월간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쳤다. 와인은 꽃, 복숭아, 생강의 향이 향긋하게 드러나며 견과류와 미네랄 풍미가 뒤를 잇고 산뜻한 산미가 당도와 균형을 이룬다. 복합적이고 풍성한 풍미, 그리고 섬세한 질감이 일품인 이 와인은 5~10년 숙성 가능한 얄룸바의 걸작이다.
Yalumba Eden Valley Viognier 2020
얄룸바 에덴 밸리 비오니에 2020
얄룸바 에덴 밸리 비오니에는 여섯 군데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각각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오크통에서 천연효모로 발효한 후 블렌딩해서 만든 와인이다. 발효를 마친 와인을 10개월 정도 효모 앙금과 함께 숙성시켜 와인의 복합미와 풍미를 높였고 와인의 바디감과 부드러운 감도를 향상시켰다. 순수하고 이국적인 비오니에의 풍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 와인은 복숭아, 오렌지, 생강, 화사한 꽃 향이 근사하다. 꿀, 토스트, 향신료의 뉘앙스가 느껴지며 중간 정도의 무게감과 산뜻한 산미 그리고 달콤한 과일 맛이 조화를 이룬다. 아시아 요리, 중동 음식, 샐러드 같은 가벼운 음식 등 여러 요리와 두루 잘 어울리는 것은 이 와인의 또다른 장점이다.
얄룸바 Y 시리즈 비오니에 2020
Yalumba Y Series Viognier 2020
얄룸바 Y 시리즈 비오니에는, 사라질 뻔했던 비오니에 묘목을 발견하여 호주 최초로 비오니에 와인을 탄생시킨 얄룸바의 역사를 기념하는 와인이다. 수확한 포도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 후 효모앙금과 함께 숙성한 이 와인은, 신선한 과일 풍미와 함께 강렬한 꽃 향이 짙게 드러난다. 오렌지 꽃, 생강, 꿀의 뉘앙스가 은은하며 파인애플, 차, 말린 무화과 풍미가 여운으로 이어진다. 적절한 산도는 와인의 균형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에덴 밸리 비오니에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요리에 두루 잘 어울린다. <2018 Wine Spectator Top 100> 중 56위를 차지한 저력을 가진 와인이다(2017 빈티지).
FSW8B 보트리티스 비오니에 2020
FSW8B Botrytis Viognier 2020
쿠나와라와 페더웨이 가운데 자리한 와인산지, 레튼불리(Wrattonbully)는 2천5백만년 이상 바다로 덮여 있다가 100만년 전 융기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의 토양은 포도재배에 최적인 테라로사 토양이며, 가을 아침엔 포도밭에 자욱하게 낀 안개를 볼 수 있다. 안개와 햇볕, 이 두 요소가 만나면 Botrytis cinerea라 불리는 귀부균이 포도의 수분을 증발시킨다. ‘FSW8B 보트리티스 비오니에’는 이렇게 수분이 증발해서 당도가 농축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며, 자연스레 굉장히 달콤한 풍미를 지닌다. 짙은 황급빛을 띠고 살구, 복숭아, 향신료, 꿀, 바닐라, 생강 등 복합적인 풍미를 드러내는 이 와인은 이국적이고 우아하며 감미롭기까지 하다. 타르트,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 디저트 류와 함께 즐기면 좋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비오니에는 요리에 곁들이기에 더없이 좋은 와인이다. 와인의 과일 풍미 덕분에 양념한 생선 요리, 고기 요리, 향신료가 들어간 아시아 요리, 과일을 넣고 조리한 요리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식과 두루 어울리기 때문이다. 비록 레드 와인 선호자라도, 선이 굵고 적당한 무게감과 유려한 질감을 가진 비오니에를 만나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비오니에는 살짝 차가운 온도로 즐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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