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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와인 전문 기자가 말한다] 포도밭에 떨어진 기후변화란 난제”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위대한 자연의 선물이자 고귀한 테루아의 산물로 알려진 와인은 지구온난화의 충실한 조력자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하겠지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속되는 기후변화의 피해를 최전선에서 입고 있는 전세계 와이너리들은 온실가스의 주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고 있다. 유기농, 바이오다이나믹 농법 등 재배방식을 바꾸고 포도원의 생물다양성을 지킨다. 태양 에너지를 적극 사용하고 물을 절약하기 위해 재활용하는 등 양조장에서도 노력은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쉽게 간과하는 것은 와인을 담는 유리병이다. 무겁고 단단한 유리병은 탄소집약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며 운송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실제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와인산업의 탄소 배출량 중 60%는 유리병이 차지한다고 밝혀졌다.


17세기 와인산업에 도입된 유리병은 이전의 나무통, 토기 등 그 어떤 용기보다도 완벽했다. 오늘날까지 뚜렷한 경쟁자 없이 와인에 가장 적합한 포장재로 인정받고 있다. 유리 자체는 내구성이 우수하고 중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와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와인의 장기 숙성을 가능케 한다. 이는 와인 마케팅의 중요한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유리병의 단점이라면 무게가 무겁고 배송 중 깨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심각한 문제라고 보기엔 어렵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유리병의 단점은 앞서 언급한 탄소배출이다. 또한 전통적인 원통의 병 모양은 운송과 보관에 비효율적이란 비판도 받는다.


현재 유리는 재활용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신 와인병을 안심하고 재활용박스에 쏙 넣는다. 실제로 유리의 재활용률은 생각보다 낮다. 국내에서 와인병은 거의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보통 투명, 녹색, 갈색 유리병이 재활용되지만 녹색과 갈색의 와인병은 국내 기준에 맞지 않아 수거되더라도 쓰레기로 최종 분류된다. 유리병에 대한 믿음이 부서지는 순간이다. 해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유리 재활용률은 28%(US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에 그치며, 그나마 영국 68%(British Glass/FEVE), EU 76%다. 


유리는 모래에 열을 가해 만드는데 사용한 유리병을 녹이면 재가공도 가능하다. 이때도 고열이 필요하기 때문에 탄소발생이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유리병은 재활용이 아닌, 일부 유리병에 대해 적용하는 세척 후 재사용이 최선이다. 그렇다고 지구 반대편으로 빈 와인병을 보낼 수도 없고 보낸다고 받아줄지도 의문이다. 영국의 유명한 와인 평론가 젠시스 로빈슨은 와인 용기로 유리병을 사용하는 것에 회의적이란 의견을 낸 바 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병 무게를 줄이는 것이다. 고압의 스파클링 와인을 제외한 모든 스틸 와인의 병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운송과 보관에 용이하고, 점점 무거운 병을 거부하는 소비자들의 경향에도 맞다. 


지속가능성과 환경보호에 고심하는 와인업계는 유리병이 아닌 더 나은 와인 포장재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점점 고품질 와인들도 유리가 아닌 BIB(bag-in-box), 파우치, 튜브, 알루미늄캔, 종이를 원료로 한 테트라 팩 Tetra Pak, PET 플라스틱 등에 담겨 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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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Boisset가 만든 카톤팩 와인 @https://www.boissetcollection.com>

 

 

 

카톤팩 carton pack 와인


유리병의 대체품 중 주목받는 것은 테트라팩 이라고도 불리는 카톤팩이다. 테트라팩은 이 카톤팩을 상용화한 회사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우리에게 테트라팩은 네모 박스의 우유, 두유 팩으로 익숙하다. 종이 75%, 폴리에틸렌 20%, 알루미늄 호일 5%로 만드는데 내용물이 새는 걸 막고 열과 균을 차단하기 위해 알루미늄을 얇게 씌운 뒤 폴리에틸렌으로 코팅한다.


무취 무미하며 겉은 단단한 종이로 가볍고 제작비와 유통비용, 탄소 배출량도 낮출 수 있다. 일각에선 유리병 와인과 비교해보면 카톤팩 와인이 훨씬 가벼워 포장비, 운송비를 절약하여 와인 가격을 인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산소나 자외선 등 외부 오염원을 막아낼 수 있다. 단열효과가 뛰어나서 일단 차가워진 와인의 온도를 유지해주기 때문에 화이트 와인에 유리하다. 물론 깨질 염려가 없다. 사실 여러 재질을 사용한 카톤팩은 재활용이 간단하지 않지만 코팅 재료인 폴리에틸렌 수지를 벗겨내면 화장지나 벽지로 재활용할 수 있다. 2012년 통계를 살펴보면 전세계 스틸 와인의 약 10%가 카톤팩 와인이다. 일상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와인 위주로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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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명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에서 생산하는 캔 와인, @ https://www.thefamilycoppola.com>

 

 

캔 와인


알루미늄 캔은 다른 재활용품보다 회수율이 높아 은박지나 재생 캔뿐만 아니라 전기기구, 항공기, 선박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캔 와인은 완벽한 밀봉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와인의 변질을 막을 수 있다. 용량도 다양하다. 혼술하기 좋은 375ml 용량의 와인이라면 유리병보다 알루미늄 캔이 더 좋을 것 같다. 실제로도 시장에 나와 있는 캔 와인들도 소용량이 많은 편이다. 


미국에선 캔 와인이 인기를 얻고 있다. 캐주얼하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젊은 층에서 즐겨 찾는다. 운반하기 수월해 피크닉, 캠핑, 바비큐 등 야외활동에 딱 맞는다. 다만 유리병처럼 제조과정에서 에너지 소요량이 많다는 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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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처럼 보이는 페트 병에 담긴 보르도 로제 와인>

 

 


페트 PET 와인 

 


플라스틱 중에서 페트 PET는 재활용품으로 가장 부가가치가 높다. 가볍고 강도와 산소 차단성도 뛰어나서 국내에선 생수, 커피, 탄산음료 등 여러 음료를 담는다. 유리보다 페트가 재활용할 때 에너지가 적게 들고 운송 및 보관할 때도 수월하다. 미국의 대형 마트에 가면 페트병에 담겨 층층이 쌓인 데일리급 와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고품질 와인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세련된 디자인의 페트병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렇게 페트병 와인들이 좀더 다양해진다면 소비자들은 유리병보다 덜 미안해하며 재활용 박스에 던질 것이다. 


여전히 유리병의 인기가 높다는 건 변화로 가는 길을 험난하게 한다. 코르크 마개가 스크류 캡으로 전환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변화해야 할 때다. 그땐 맞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바뀌었다. 와인업계는 지속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는 와인 포장재의 개발과 인식 개선에 더욱 힘써야 한다. 소비자들도 유리가 아닌 다른 소재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포장 트렌드는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와인생산지가 변함없이 유지되고 오래도록 와인을 즐기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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