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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영 Baek Nan Young (baeknanyoung@hanmail.net)
AIS(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이탈리아 와인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 SCUOLA)를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이기도 한 백난영은, 이탈리아 와인 및 와인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 관련 전문 통/번역가, 랑게와인 앰버서더(Langhe Wines Ambassador)로도 활동 중이다.
Certified Professional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l President of Barbarolscuola, 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l Columnist of Korean Online Wine Magazine l Member of Judging Panel at: The International Wine Award Mundus Vini, International Wine City Challenge, Emozioni Dal Mondo, Portugieser Du Monde l Blogger l 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l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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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년 개봉영화. 이탈리아 출신 루카 과다니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선댄스 영화제 초청작이며 2018년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영화제에  다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이미지 출처 www.callmebyyourname.com>

 


며칠 전 동영상 온라인 서비스(OTT 플랫폼)를  켰더니 내 취향을 저격할 만한 콘텐츠라며  화면에 몇 개의 영화가  떴다. 추천 순서대로 섬네일을 훑어보다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에  멈췄다.영화의 줄거리를 보니 대충 성장영화 같았는데 내 취향 과녁을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콘텐츠 바다를 표류하다 별 볼일 없는 영화에 착지하는 시간낭비를 반복하기 싫어 일단 시작 버튼을 눌렀다.


영화의  배경은 1983년 여름, 북이탈리아 롬바드리아주의  소도시. 고고학을 가르치는  퍼만 교수 가족은  여름이면 학생을 초대해 가족 별장에서 지낸다. 이번에 초청한 학생은  24살의 미국인 올리버다. 퍼만 교수 부부한테는 17살의  아들 엘리오가 있다. 피아노 연주와 독서가 취미인 섬세하고 예민한 엘리오는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엘리오는 자유분방하고 호탕하며 거기다 미남이기까지 한 올리버에게  자꾸 관심이 간다. 나이, 취미, 성격에 접점이 없는 남자 주인공들은 롬바르디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청록색을 반사하는 숲 길을 자전거로 달리거나, 물놀이와  또래끼리 모임에 참여하면서  가까워진다. 급기야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싹트지만 엘리오는 이 감정의 정체를 몰라 괴로워한다.  


어느 날  인근 마을로 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키스한다. 하지만 올리버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에 화가 난 엘리오는 여자 친구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오는 자정에 만나자는 올리버가 남긴 쪽지를 발견한다. 약속 장소에서 밤을  같이 보내면서 이들은 그간의 어색했던 감정이 사랑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올리버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나를 네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영화가 이즈음에 이르렀을 때도 내 취향과 일치하는 어떠한 감정선도 화면은 보여주지 않았다.필자가 가끔  와인 콘텐츠를 누른 적은 있었으나 추천된 영화는 포도밭을 한 번도 비추지 않았고, 식사 모임 장면에 와인이 몇 번 등장한 게 전부다. 그나마도 카메라 앵글이  초점을 흐릿하게 처리해 와인은 그저 소품에 불과했다. 


나의 의문은 영화 종료  25분을 남기고 반전을 맞는다. 둘 사이를 눈치챈 엘리오 아버지는 올리버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베르가모를 여행하는 건 어떻겠냐고 아들에게 제의한다. 이들은 삼 일간  베르가모 동부를 여행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사랑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한다. 알프스의  뾰족한 봉과  회색 암벽, 그 사이를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세리오 폭포, 베르가모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서의  춤, 클루소네 기차역에서의  작별 화면이  흐르면서  영화는 마지막으로 치닫는다.  


헤어진 뒤  첫 번째 맞이 하는 성탄절, 엘리오는 올리버의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몇 년 전부터 사귀고 있던  여자와 내년 봄에 결혼할 예정이라는 올리버의 음성이 흘러 나온다. 

 


알고리즘도 눈치챈 나와 베르가모의 인연

 


필자는 주인공과 다른 이유로 베르가모와 인연을 엮어왔는데 여기서 열리는 와인 품평회에 참석 차 몇 번 다녀왔다. 물론 일정상 여행 동선은  와이너리나 포도밭에 한정되어 올리버와 엘리오의 여행지와 일치점은 없다. 하지만 영화와  실제의 기본값이  베르가모인 것은 마찬가지였고 OTT의 알고리즘이 기본값과 일치하는 연결고리를 콕 집어내  내 스마트 폰에  보인 것이다. 비록 빅데이터에 기반한 가상 매칭이지만 기막히게 내 취향을 적중하지 않았는가!


베르가모  동부의 구릉지는  발칼레피오Valcalepio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베르가모의 정원’이라는 애칭을 갖는다. 엘리오와  작별을 나눈 올리버를 태운 기차가 리나테 공항까지 가는 동안 지나친 풍경일 가능성이 높다. 베르가모의 정원이란 별명을 얻게 된 데는 경치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북쪽에 코모 호수에서 시작한 언덕은  70km를  동쪽으로 달리다가  이제오 호수에서 끝난다. 언덕 능선을  따라 아다 강과 오리오 강이 굽이치고  주변은 발텔리나 계곡, 프란차코르타, 올트레 포 파베제 같은 롬바르디아  3대  와인 산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을 얘기하려면 이탈리아의  보르도 스타일 와인을 언급하는 게 순서다. 이탈리아어로 탈리오 보르돌레제( taglio bordolese, 보르도 블랜딩)라 하는 보르도 와인은 볼게리, 마렘마, 수베레토 같은 토스카나 지역이 선방하고 있다. 토스카나 서해안의 태양과 해풍을 쐬어가며 자랐기에 ‘지중해 보르도’라고도 한다. 시선을 북쪽으로 옮기면 알프스 산맥을 따라 북동 이탈리아 보르도 와인 산지가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롬바르디아, 베네토,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등 알프스 산과 인접해 있어  ‘알프스의 보르도’라 한다.  1796년 나폴레옹 1세 점령기에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가 처음 심어졌고 이후로 보르도 블랜딩 실력을 갈고닦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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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14에서 16일 까지  베르가모 카스텔로 델리 안젤리 성에서  열린  17회 Emozioni Dal Mondo품평회 장면>

 


발칼레피오  언덕이 보르도 블랜딩 와인에 입성하게 된 계기는 남다른  배경이 있다. 로마시대 ’ 대 플리니오’가 쓴 박물지에도 기록될 정도로  전통적인 와인 산지로 부상한다. 18세기 비단 제조업이 번성하면서 포도밭은 뽕나무에 자리를 내어줘야 했다. 점차 와인 농가가 감소하자 부족한 와인을 다른 지역에서 수입한 와인으로 보충했다. 1차 세계대전 후 산업 붐이 불면서 또 한 차례 와인업계는 위기를 맞는다.  1960년대 낙후된 와인업을 재건하기 위해 베르가모 상공회의소  주도로  발칼레피오는 포도 실험장으로 변신한다. 토착품종과 국제품종 중 토질과 기후에 맞는 최우량 품종을 가려내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함이었다. 다년간 실험 끝에  국제 품종의 적합함이 입증되었고 1천5백 헥타르나 되는 밭은 까베르네 소비뇽, 까베르네 프랑, 메를로가 심어진다. 이 모든 계획이 완성되었을   1968년도에 마리오 인치사 후작이  사시까이아 첫 빈티지를  출시해 이탈리아 보르도 블랜딩의 저력이 세상에 알려졌다.


1974년  DOC 등급의  발칼레피오 와인이  탄생했고 이어  발칼레피오 와인 협회가 발족했다. 협회는 유사한  와인 기관 중 유일하게 와인 품평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행사명이 EMOZIONI DAL MONDO Merlot e Cabernet Insieme인 와인 품평회를  자기 검열 기회로 삼아 품질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왔다. 작년  10월에   17회를  맞이했으며  220개의 와인이   참가한 가운데  상위 30% 안에 든  66여 개 와인이 골드 메달을  수상했다(메달 집계는
<링크> 참조). 본 품평회는 국제 와인 기구(OIV)가 인정하는 유일한 보르도 블랜딩 와인 경연 대회로 매번 이탈리아, 발칸 반도, 프랑스, 호주, 미국 등 보르도 블랜딩을 주도하는 나라의  2백~3백여 종 와인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발칼레피오 와인 타입 별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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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calepio Rosso 는 다양한 타입을 선보이고 있다 >

 


발칼레피오 와인은 두 종류의 보르도 블랜딩과  화이트 와인, 모스카토  파시토 와인을 선보인다. 먼저, 심플한 보르도 스타일은  발칼레피오 로쏘로  메를로(최소40%, 최대 75%)와 까베르네 소비뇽(최소  25%, 최대 60%)을 섞은 후 오크 숙성 기간을 3개월 내로  짧게 했다. 짙은 붉은빛에 야생 체리, 감초, 카카오 , 후추 향이 흐른다.  숙성 초기의 타닌이 주는 활달한 느낌과  경쾌한 산미가 잘 어우러지며 보디가 무겁지 않다. 리제르바 타입은 숙성기간만 3년이며 잘 익은 과실의 중후하며 깊은 맛과 구조의 단단함, 타닌의 매끄러움이 돋보인다. 시큼한 체리, 블랙베리, 스모키 뉘앙스, 유칼립투스, 후추, 타바코 향이 복합적이다. 


화이트 와인은  발칼레피오 비앙코 타입이 있으며 주품종인  샤르도네와  피노 비앙코( 최소 55%, 최대 80%)에 피노 그리조(최소 20%, 최대 45%)를 소량 넣어 원만함을 보강했다. 샤르도네의 매끄러움이 매혹적이며 산미가 호두 껍질, 아몬드, 마가릿 꽃 향을 풍성하게 피운다.  짭짤함이 감칠맛을 주고 밸런스도 잘 잡혔고 적당한 보디와 아몬드 여운이 오랫동안 감돈다.


모스카토 파시토 와인은 모스카토 디 스칸조란 매우 향기로운 아로마 품종으로 만든 디저트 와인이다. 레드 품종이라 ‘검은 진주’로 불리며,  10월 초에  수확한 포도송이를  최소 21일  건조한 후 압착해서 얻은 즙을 발효시켜 만들어 농축미가 뛰어나다. 감성적인 보랏빛이 돌고 말린 장미, 샐비어, 아카시아 꿀, 블랙베리, 카시스, 후추, 계피향이  폭발한다. 입안에 구르는 듯한 질감과 상큼한 산미가 격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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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e Del Colleoni 와인>

 


 2011년에는  테레 델 콜레오니 Terre Del Colleoni란  단일 품종 와인을 시도했다. 14개 품종을  선발해 함유량을 최소 85%까지 끌어올려  포도 자체 풍미를 살리는데 치중했다. 기존의 보르도 품종에 프란코니아를 끌어들였고  북이탈리아 토착 품종(마르제미노, 인크로초 테르지 Incrocio Terzi, 스키아바, 모스카토 잘라)을 도입했다. 드라이 와인, 로제, 디저트 와인, 스푸만테, 햇 와인이 있고 종류는 아래와 같다.


Terre del Colleoni Pinot Bianco, Terre del Colleoni Pinot Grigio, Terre del Colleoni Chardonnay, Terre del Colleoni Manzoni Bianco, Terre del Colleoni Moscato Giallo, Terre del Colleoni Moscato Giallo Passito, Terre del Colleoni Schiava, Terre del Colleoni Merlot, Terre del Colleoni Marzemino, Terre del Colleoni Cabernet, Terre del Colleoni Franconia, Terre del Colleoni Incrocio Terzi, Terre del Colleoni Novello, Terre del Colleoni Spum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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