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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yoo@wineok.com)
온라인 와인 미디어 WineOK.com 대표, 와인 전문 출판사 WineBooks 발행인, WineBookCafe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국내 유명 매거진의 와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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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erries cherries and an angels kiss in spring. 
My summer wine is really made from all these things~~
나의 여름은 딸기와 체리, 봄의 천사가 선사하는 달콤한 키스로 만들어졌어~~“ 

 

 

진공관 라디오에서 얼마 전 흘러나오던 ‘Summer Wine’이라는 노래가 자꾸만 귓전을 맴도는 저녁이다. 60년 대 Nancy Sinatra 와 Lee Hazlewood가 듀엣으로 불러서 크게 히트했던 이 노래처럼, 지금의 모든 것들은 앞선 시간들의 퇴적된 인연과 이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상기하며 와인셀러 문을 열어 놓은 채 오늘 저녁 약속에 들고 갈 와인을 고르려 몇 시간 째 와인병을 꺼냈다가 도로 집어 넣기를 반복하고 있다. 

 

 

와인의 선택, 그 불안하고도 아득한…


와인을 선정할 때는 T.P.O(Time, Place, Occasion) 요건들을 하나씩 생각해보면 고민이 쉽게 풀린다. 오랜 친구의 생일을 기념하는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고, 약속 장소가 친구의 집, 솜씨 좋은 친구의 아내가 가정식 프렌치 코스 정찬을 어지간한 셰프 수준으로 차려내는 분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와인을 골라야 한다. 와인 선택의 기준은 평소 집에서 편히 마시는 와인보다는 조금 더 비싸고 좋은 와인을 고르는 게 좋겠다. 특히 오늘같이 집에서 직접 음식을 조리해서 대접받는 자리라면, 호스트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특별한 와인을 골라야 마땅하다. 같이 마실 멤버들의 취향과 선호하는 와인, 계절적인 요인도 고려하고, 추억을 소환할 만한 빈티지의 와인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와인을 마실 장소가 집인지 레스토랑인지, 혹은 실내인지 야외인지도 중요한 요소다. 초대받는 장소가 레스토랑일 경우, 와인리스트에서 우리 부부의 식사값 정도는 되는 와인을 한 병 주문하는 게 모양새가 좋다. 와인을 반입하는 경우에는 레스토랑에서 허용하는지, 코키지 비용은 얼마인지 전화로 미리 체크해야 낭패가 없을 것이다. 

 

여름 밤의 정찬은 가벼운 샐러드와 생선 또는 파스타가 식사 전반을 주도하며, 식사의 중-후반은 스테이크나 치즈같은 무게감있는 식재료라는 점을 전제로 샴페인, 화이트와인, (특이하고도 특별하게) 칠링해서 마시는 이태리의 람부르스코 레드 와인, 마지막으로는 무게감있는 나파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 레드와인으로 구성해본다. 

 

 

여름철, 샴페인만이 우리를 구원할 지니... 

 


떼땅져.jpg떼땅져 레 폴리 드 라 마께트리(Taittinger Les Folies de la Marquetterie, 하이트진로 수입)

 


7월, 견디기 힘든 폭염과 장마철 습기는 우리들의 육신과 영혼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무더위에 장시간 노출된 우리 몸은 높아진 체온으로 생기를 잃고, 에너지는 방전상태다. 빠져나간 땀으로 약간의 탈수증세와 갈증, 다소 높아진 혈압으로 그로기 상태다. 이럴 때 정신이 번쩍 들도록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얼음이 그득 찬 아이스버킷에 칠링이 잘 된 샴페인 한 잔이 바로 그것이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며 청량감을 주는 기포와 기분 좋은 산도가 지친 몸을 일깨운다.


여름철, 샴페인 칠링은 아이스버킷에 얼음과 물을 채워 시음 최적의 온도인 10도 전후로 맞춰야 한다. 칠러의 온도는 이보다 2~3도 더 낮아야 잔에서 와인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상쇄할 수 있다. 오늘같이 밤하늘은 푸르고 습도가 높은 날이라면, 떼땅져 레 폴리 드 라 마께트리(Taittinger Les Folies de la Marquetterie, 하이트진로 수입)가 좋겠다. 레 폴리(Les Folies)는 떼땅저가 자랑하는 가장 좋은 단일 포도밭의 이름이며, La Marquetterie (라 마께트리)는 18세기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이 문학살롱과 사교연회를 가졌던 공간을 가리키는 용어다. 복숭아, 살구잼의 아로마와 함께 브리오슈 토스트와 바닐라의 힌트가 조화롭고, 뛰어난 균형감과 구조감 속에 부드럽고 섬세한 기포와 복합적인 팔레트와 고급스러운 피니쉬가 돋보이는 샴페인이다. 

 

 

세련된 호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나파 화이트와인의 원픽! 
 

파니엔테.jpg 파 니엔테 샤도네이(Far Niente Chardonnay, 나라셀라 수입)

 


파 니엔테는 1885년 설립된 나파 밸리의 레전드 와이너리이며 1979년부터 재건되어 오늘날 나파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족적인 와이너리로 인정받고 있다. '파 니엔테'는 와이너리 재건 중 발견된 돌에 이탈리아어로 새겨진 'Dolce Far Niente(아무 근심 걱정 없이)'라는 뜻의 문장에서 유래한다. 이 와이너리는 특이하게도 1982년 첫 빈티지를 출시한 이후 현재까지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르도네 두 품종으로만 와인을 만들며, 4만 평방미터 규모의 대규모 지하카브에서 와인을 숙성시킨다. 이런 결과로 나파밸리 화이트와인 중 단연 최고의 사랑받는 와인으로 꼽힌다. 적정 음용온도는 12도 전후로 온도가 살짝 오르면 감귤류와 멜론, 인동덩굴의 풍미와 더불어 흰 무화과, 구운 헤이즐넛의 힌트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오크 풍미와 매끄러운 질감, 풍부한 텍스쳐, 훌륭한 구조감, 멜론, 시트러스에서 오는 달콤함과 흰 꽃과 구운 바닐라, 스파이시한 향신료의 느낌이 조화롭게 미감을 자극한다. 이구동성으로 "샤르도네로서 모든 것을 다 갖추었으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훌륭한 와인“이라 극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반복적인 일상의 틀을 깨는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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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에르메테 콘체르토 (Medici Ermete Concerto, 하이트진로 수입)

 


칠링해서 마시는 스파클링 레드 와인 메디치 에르메테 콘체르토 (Medici Ermete Concerto, 하이트진로 수입)
‘이태리 미식의 수도’라 불리는 구르메의 성지, 이태리 동북부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볼로냐, 모데나, 파르마는 프로슈토, 발사믹 치즈, 볼로네제, 파르지아노 레지아노 등의 탄생지답게 와인 또한 특별하다. 람부르스코 라는 토착 품종으로 만든 약발포성 레드 와인이 그것이다. 이런 동네 식당에 가서 클레망 따위의 스파클링 와인을 주문하면 사람 취급도 제대로 못 받게 될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람부르스코 와인을 따라야 한다.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정상급 생산자는 메디치 에르메테(Medici Ermete)다. 싱글 빈야드에서 여과 과정을 거친 와인베이스를 밀폐된 압력탱크에 넣고 재발효시키는 샤르마 방식으로 스파클링 레드 와인을 생산한다. 람부루스코의 역사를 새로 쓴 최초의 싱글 빈야드 빈티지 와인이자,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로 감베로 로쏘 이탈리안 와인가이드에서 최고점인 3글라스를 받은 명품 와인이다. 메디치 에르메테의 ‘콘체르토 Concerto’는 와인의 다양한 맛과 향이 입안에서 교향악을 연주하듯 조화롭고 우아하게 어우러짐을 표현한다. 베리류의 과일향과 꽃 향기가 향기롭게 지속되며, 드라이하면서도 열대 과일의 풍부함을 느낄 수 있으며 부드러움과 신선함, 생기가 조화된 특별한 미감을 선사한다. 알코올은 11.5도, 섭씨9도 전후로 칠링해서 샴페인잔에 따라 시원하게 마시면 된다. 치즈나 스테이크도 충분히 어울린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와인을 꺼내어 게스트에게 설명한다면, 지적인 당신의 매력은 물론 와인 내공도 만렙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더운 여름인데도 레드 와인은 상온에서 마셔야 한다고요?

틀렸습니다 !


흔히 레드 와인의 온도를 실온에 맞추어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레스토랑 소믈리에로부터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이면 몰라도 여름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여름에 실온에서 레드와인을 마신다는 건 명백하게 틀린 정보다. 보통,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저술된 와인 책들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번역해서 전달하다 보니 와전된 듯하다. 유럽의 석조건물 실온 또는 상온이 18도 정도이나 우리나라의 여름 실내온도는 냉방을 해도 24도~26도, 야외라면 35도가 훌쩍 넘을 것이다. 이렇게 더운 온도에서 와인을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면, 수천 만원짜리 로마네 꽁티가 무슨 소용이랴! 만사를 제치고 아이스버킷에 얼음부터 채워 넣고 와인의 온도부터 내려야한다.


레드 와인이든 화이트 와인이든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단맛이 약하게 느껴지고 온도가 올라갈수록 단맛이 강해진다. 레드 와인은 차갑게 할수록 떫은맛이 강해지고 온도가 올라갈수록 떫은맛이 부드럽게 변한다. 그러므로 피노 누아같이 타닌이 약한 레드 와인은 대략 15~16도 정도, 조금 차게 시작하는 편이 좋고, 타닌이 풍부한 와인이라도 살짝 칠링해서 병이 좀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에서 시작해야 상온으로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면서 피어오르는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대략 마시기 4~5시간 전에 냉장고에 와인을 넣으면 5~6도 정도로 차가워지며, 야채실에 넣으면 10도 정도 내려간다. 아이스버킷에서 차게 할 경우는 반드시 얼음을 와인의 윗부분을 충분히 덮을 만큼 충분히 넣고 위에 굵은 소금을 뿌리면 응급조치로 가장 효과적이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더운 온도에서 와인을 마셔야만 할 상황이라면 화이트 와인 글라스에 얼음 한 두 조각 넣어 와인 잔을 돌리며 시원하게 마시다 보면, 어느새 칠러의 와인 온도가 내려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와인 음용 적정 온도는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은 6~13도 정도, 레드 와인은 15~20도 정도라고 알아두면 유용하다. 

 

 

스테이크를 책임지는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의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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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레이더 더블 다이아몬드 카버네 소비뇽(Schrader Double Diamond Cabernet Sauvignon, 나라셀라 수입)

 


이 와인을 만드는 슈레이더 와이너리는 설립한지 불과 20년 밖에 안된 신참 와이너리지만, 세계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생산하는 오크빌의 벡스토프 토 칼론(Beckstoffer To Kalon) 빈야드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만드는 컬트 와인 생산자다. 오크빌의 벡스토프 토 칼론은 미국 나파밸리에서 가장 비싼 포도밭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에, 최고의 와인 메이커 Thomas Rivers가 양조를 책임진다. 이 포도밭은 높은 미네랄 함량과 동시에 배수가 잘 되는 곳으로, 특히 남북에서 비추는 햇빛과 밤에 부는 시원한 해풍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재배하기에 이상적인 테루아를 갖추고 있다. 이 와인은 당연히 맛있을 수 밖에 없다.


짙은 자두빛을 띄며 블랙 커런트, 블랙베리, 가죽, 초콜릿, 육두구, 스피어민트 그리고 제비꽃의 입맛을 돋우는 향기로운 다채로운 아로마가 펼쳐진다. 첫맛은 화려하며 매혹적인 동시에 실키한 텍스처의 타닌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풍미를 보여준다. 좋은 밸런스와 긴장감을 유지해주는 산미가 와인의 중심을 잘 잡아줘 맛있는 식사를 보장한다. 이런 와인과 같이 하는 스테이크는 완벽한 마리아쥬 그 자체다.

 

 

 

와인애호가들에게 가장 맛있는 와인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대부분 두 가지의 답변으로 귀결된다. 첫번째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눠 마시는 와인이라 하고, 두번째는 숙성이 잘 된 와인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두 대답의 본질은 별반 다르지 않다. 네이트 루스의 ‘We are Young“을 함께 따라 부르며 찬란한 청춘을 만끽하기도 했고, 때로는 풍찬노숙의 시련도 함께 견디어 온 친구에게 건네는 올드 빈티지 와인의 부케는 그래서 더욱 값지고 고귀하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공개 강좌 방송에서 연세대 서은국 교수가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공명을 준다. 필자는 이 답답하고 참혹한 코로나 역병의 숨막히는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시원한 샴페인 한 잔을 따라 건네며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다“라고 정의 내리려 한다.
 

 

 

위 글은 <스타일H> 7월호에 게재된 칼럼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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