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사랑 와인은 보르도 와인이다. 와인에 입문해서 이것저것 맛보았던 내게 잘 익은 보르도 와인이 얼마나 멋진가를 알려준 그야말로 ‘인생와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와인을 계기로 구대륙 와인의 매력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보르도는 비판과 찬사가 끊이지 않는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로 지금도 많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될 인생와인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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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르뜨 Dourthe의 발렌땅 제스텡 Valentin Jestin 총괄 이사(위 사진)가 방한한 자리에서도 보르도 와인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1840년 피에르 두르뜨 Pierre Dourthe가 설립한 두르뜨는 영국의 와인 전문지 디캔터 Decaner가 ‘보르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생산자’라고 극찬할 정도로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제스텡은 현재 두르뜨 그룹의 CEO 패트릭 제스텡 Patrick Jestin의 아들로 2019년 1월에 두르뜨에 합류했다. 일찍부터 그는 뻬삭-레오냥의 샤토 라 갸르드와 LVMH에서 와인 마케팅을 했고 중국에서 브랜드 홍보 대사로서 경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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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르뜨 뉘메로엥 No.1은 가장 핵심적인 브랜드 와인”

 


제스텡은 1988년에 프로젝트로 만든 두르뜨 뉘메로엥에 대해 위와 같이 평했다. 당시 세계적인 와인양조가 드니 뷔보르디유Denis Dubourdieu와 손잡고 만든 소비뇽 블랑 100%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으로 시작했다. “뉘메로엥을 만들기 시작할 때 어디 포도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지금과는 달리 직접 소유한 샤토가 많지 않아 포도 재배자들과 장기로 계약해서 좋은 포도를 공급받았다. 이 경험은 후에 두르뜨가 적극적으로 샤토를 매입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뉘메로엥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보르도 와인에 입문하기에는 뉘메로엥이 최고”라며 적극 추천했는데 샤토 와인을 만드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새 오크통 사용 비율도 높고 품질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아 ‘가성비 좋은 보르도 와인’이라 해도 손색없다. 


1979년 두르뜨는 그랑크뤼 클라쎄 포도원인 샤또 벨그라브Château Belgrave를 시작으로 보르도 각지에서 성장가능성이 높은 포도원들을 차례로 매입했다. 뉘메로엥이 두르뜨 브랜드 와인의 간판이라면 샤토 벨그라브는 두르뜨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샤토 벨그라브 매입을 기점으로 와인 판매 회사였던 두르뜨에서 와인 생산이 가능한 회사가 되었다. 와인 생산에 대한 열정과 함께 다양한 보르도 지역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와인을 생산하고자 했다.” 그 결과 두르뜨는 여러 지역에 걸쳐 9개 샤토, 총 500헥타르의 포도원을 소유하며 연간 총 500만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총 생산량의 1/2은 브랜드 와인, 나머지 1/2은 샤토 와인이 차지한다. 

 

 


“환경과 사람을 위한 선택, 테라 비티스와 HVE3”

 


현재 변화하는 소비 경향에 따라 두르뜨는 스스로 발 맞춰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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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avitis.com


“두르뜨의 모든 샤토들은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는 테라 비티스 Terra Vitis 인증과 HVE3(Have Valeur Environnementale Level 3)를 받았다. 보르도에서 이 두 개의 인증을 모두 받은 것은 유례없는 것이며 또 다른 혁신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테라 비티스는 프랑스의 와인 생산자와 포도 재배자들이 모인 네트워크로, 환경과 최종 생산품인 와인뿐만 아니라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직원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헌 등에 관해 평가하여 인증한다. 보통의 유기농 인증보다 받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고 민간 인증임에도 프랑스 농림부가 인정하고 있다. HVE는 2011년에 프랑스 농림부가 와인 생산자와 포도 재배자를 위해 만든 인증으로 레벨3가 가장 높은 단계다. 


지속 가능한 발전 혹은 개발이 전세계를 달구는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수많은 와이너리들이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보르도 샤토들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미 프랑스에선 거대한 트렌드가 되었다. 테라 비티스 인증을 받은 와인을 원하는 슈퍼마켓들이 늘고 있는 게 사실이고 변하지 않으면 와인을 판매할 수 없게 될 거란 위기감이 팽배했다. 그래서 인증을 취득하려는 샤토 또한 늘고 있다. 현재 보르도에서 테라 비티스 인증을 받은 샤토는 전체의 15%, HVE를 받은 샤토는 60%에 달한다. 두르뜨는 2018 빈티지부터 레이블에 인증마크를 넣을 예정이다.” 


현재 두르뜨에서 실천하고 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예를 살펴보자. 


“보르도 쉬페리외 Bordeaux Supérieur 등급의 샤토 뻬이 라 투르 Château Pey La Tour에선 박쥐를 위한 둥지를 50개 정도 설치했다. 주변 지역의 박쥐(작은 박쥐류)들이 포도원의 해충을 잡아먹는다. 이렇게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어 생태계를 보호하고 있다.”


앞으로 보르도 스파클링 와인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라는 제스텡의 마지막 말에서 두르뜨가 추구하는 완벽한 품질을 위한 열정과 혁신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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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또 라 갸르드 블랑 2017
Ch. La Garde Blanc 2017

 


AOC: 뻬싹-레오냥 Passac-Léognan
품종: 소비뇽 블랑 90%, 세미용 10%


두르뜨가 1990년에 인수한 포도원으로 뻬싹-레오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 4미터까지 자갈이 깔려 있고 구획에 따라 보르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토양들이 혼합되어 있다. 라 갸르드는 총 52헥타르로 그 중 2헥타르에만 청포도를 재배하여 1만병의 라 갸르드 블랑을 생산하고 있다. “고미요 등 관련 잡지에서 뻬삭-레오냥 화이트 와인을 추천할 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와인”이다. 라 갸르드 블랑은 신선함에 중점을 두고 만든 와인이다. 소비뇽 블랑의 비중이 큰 것도 그렇고 양조할 때 새 오크통의 사용 비율을 15%로 제한하여 오크의 영향을 최소화했다. 첫 향에서 소비뇽 블랑의 특징인 신선한 풀과 라임, 레몬이 느껴지고 부싯돌과 생강의 향도 뒤따른다. 상쾌한 산미와 미네랄도 느껴져 가벼운 전채요리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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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또 벨그라브 2014
Ch. Belgrave 2014

 


AOC: 오-메독, 그랑크뤼 클라쎄 5등급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65%, 메를로 32%, 쁘띠 베르도 2%


‘자갈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포도원’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의 토양은 깊은 자갈층과 점토로 이루어져 있다. 샤토 벨그라브는 메독 그랑크뤼 클라쎄 등급을 받았던 1855년 이후 포도밭을 확장하지 않은 보르도의 몇 안 되는 샤토 중 하나다(59헥타르). “오-메독에 속하지만 생 쥘리앙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 그쪽 와인의 특징인 민트, 유칼립투스의 향이 난다. 잘 익은 과일과 신선한 산도를 겸비한 와인”이다. 두르뜨가 매입한 후 세계적인 와인양조가 미셸 롤랑의 컨설팅과 최신 양조기술을 적극 도입하여 품질을 높였다. 2014 빈티지는 어려웠던 2013에 비해 매우 좋은 빈티지로 메독의 경우 2015년 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까시스, 블랙베리 등 잘 익은 검은 과일과 나무, 민트의 풍미가 난다. 과일 맛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타닌이 돋보인다. 신선한 산미 또한 잘 받쳐준다.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 각종 육류를 이용한 요리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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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썽스 2015
Essence 2015

 


AOC: 보르도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65%, 메를로 28%, 카베르네 프랑 4%, 프티 베르도 3%


에썽스는 전혀 보르도 와인답지 않은 와인이다. “사시카이야 같은 슈퍼 투스칸 와인이나 오퍼스 원 등을 접할 때마다 보르도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최상의 포도를 가지고 블렌딩을 통해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만들기로 했을 때 주위에선 미쳤다고들 했다.” 제스텡은 에썽스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두르뜨는 에썽스를 만들기 위해 샤토 벨그라브, 샤토 라 갸르드, 샤토 르 보스크, 샤토 그랑 바라이 라마젤 피작에서 2헥타르의 가장 우수한 구획을 찾아 제한 없는 투자를 쏟아 부었다. 그 결과 2000년에 에썽스란 걸작이 탄생했다.


에썽스는 뛰어난 빈티지에만 6천병을 생산했는데 지금까지 9개 빈티지가 전부다. “에썽스의 기준은 과일 풍미, 신선함, (타닌의) 매끄러움으로 위대한 보르도 와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기준에 떨어질 땐포도즙을 각 샤토로 돌려보낸다.”


이 와인에서는 온 감각을 집중시키는 힘이 느껴진다. 블랙체리, 까시스 같이 잘 익은 검은 과일과 향신료의 향이 조화를 이루며 계속해서 감각을 자극한다. 신선한 산미와 실크처럼 매끄러운 타닌, 남다른 깊이, 길게 이어지는 여운 모두 흠잡을 데 없다. 세련되고 균형이 잘 잡혀있는 풀 바디 와인이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97점을 받았다. 최소 15년 후에 마셔야 복합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수입_하이트진로 (080-210-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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