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다’. 생각과 움직임을 잠시 멈춘 이 순간은 목적 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게으름과는 다르다.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흐르는 정적과 한가로움을 즐기는 행위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사념을 멈춘 채 와인을 홀짝일 때에도 ‘멍 때린다’는 표현은 썩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인들이 종종 쓰는 표현 중에는 ‘Dolce far Niente’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의 달콤함 the sweetness of doing nothing’인데,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무위 無爲를 온전히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와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생산되는 ‘Far Niente 파 니엔테’라는 이름의 와인이 그것이다.
나파 밸리 오크빌에 위치한 파 니엔테 와이너리는, 1885년 설립 후 금주령 때 폐쇄되었던 와이너리를 1979년에 길 니켈(Gil Nickel) 인수하여 재건한 곳이다. 인수 당시 그는 와이너리 뒤편에 작은 와인 저장고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10년에 걸친 발굴 및 증축 작업 끝에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기능적으로 뛰어난 와인 동굴로 거듭났다. 현재 이곳은 유서 깊은 역사와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미국 문화 유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al Place)로도 선정되었다.
파 니엔테를 대표하는 와인은 샤도네이와 카버네 소비뇽이다. 그 밖에 세미용 품종으로 만든 디저트 와인도 소량 생산한다. 파 니엔테 와인의 특징은 매우 낭만적이라는 점이다. 가장 먼저,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민 듯한 와인 병의 레이블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레이블을 들여다보면 포도 넝쿨이 둘러싼 창문 밖으로 포도 나무와 석조 건물이 내다 보인다. 고즈넉하고 운치 있다. 무엇보다도 근심 걱정 없는 세상처럼 평화롭다.
파 니엔테 와인은 그 향과 맛으로도 우리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파 니엔테 나파 밸리 샤도네이(위 사진)는 마치 온갖 과일이 풍성하게 열린 낙원에라도 와있는 듯 잘 익은 배, 사과, 감귤류를 연상시키는 풍미로 가득하다. 이러한 풍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고, 젖산 발효를 하지 않은 덕에 신선한 산도를 유지하고 있다. 90년대 빈티지의 샤도네이가 20년이 지난 지금 절정을 보여줄 만큼 숙성 잠재력도 매우 뛰어나다.
파 니엔테 카버네 소비뇽(위 사진)은 절제된 우아함이 돋보이는 와인이다. 농익은 과일 풍미는 세련되고 정교하게 다듬어져 지나침이 없고, 입 안에서 흐르는 질감은 벨벳처럼 부드럽다. 와인의 섬세함이 여성스럽게 느껴지는 동시에, 단단한 뼈대와 탁월한 균형이 와인에 힘을 부여한다. 마찬가지로, 20여 년을 거뜬히 넘기고도 훌륭한 풍미를 드러낼 만한 숙성 잠재력을 지녔다. 이 와인은 “죽기 전에 마셔야 할 1001 가지 와인”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파 니엔테 외에도, 니켈 가문에서 만드는 ‘싱글 빈야드’ 컨셉의 와인이 있는데 ‘니켈 & 니켈 Nickel & Nickel’이 그것이다. 개별 포도밭 단위로 생산되기 때문에 테루아의 개성을 뚜렷하게 반영하며, 모든 와인의 이름은 포도밭의 이름을 명기하고 있다. 미국의 셰프와 소믈리에들 사이에서 특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는 니켈 & 니켈 와인이 음식과 함께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는 ‘니켈 & 니켈 존 C 슐렌저 빈야드 카버네 소비뇽 Nickel & Nickel John C Sullenger Vineyard Cabernet Sauvignon’과 ‘니켈 & 니켈 CC 랜치 카버네 소비뇽 Nickel & Nickel C.C Ranch Cabernet Sauvignon’이 유통되고 있다.
수입 _ 나라셀라 (02 405 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