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필자는, 내추럴 와인 양조을 몸소 실행하며 젊은 와인메이커들에게 가능성과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보졸레의 요다’ 쟝 루이 뒤트래브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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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에 시작한 포도 수확은 9월 말 즈음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도멘 드 라 그랑꾸흐Domaine de la Grand 'cour’의 양조장 한편에는 수확한 포도가 알코올 발효 중이었고, 지하의 와인저장고에서는 오크통을 점검하고 가지런히 줄을 세우는 등 와인 숙성을 위한 보금자리 준비가 한창이었다.
 

도멘 드 라 그랑꾸흐는 보졸레 10개 크뤼 중 플러리에 속해 있으며, 12헥타르(축구장 12개 면적)의 포도밭에서 내추럴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50년 역사의 가족 소유 와이너리다. 현재 이곳의 와인메이커는 쟝-루이 뒤트래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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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트래브 가문은 보졸레 남쪽의 브뤼이 출신으로, 1969년에 쟝-루이의 부친이 도멘 드 라 그랑꾸흐와 주변 포도밭을 매입했다. 당시에는 포도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 농사와 축산까지 겸했다. 쟝-루이가 16세 되는 해부터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로 20년 동안 부친과 함께 도멘을 이끌어왔다. 1984년 부친 은퇴하면서 쟝-루이는 총책임자가 되었고 또 다른 20년을 혼자서 꾸준히 지켰다. 현재는 가업을 이을 든든한 삼남매와 함께 드림팀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같이 의논하고 결정하면서 팀워크를 중심으로 쟝-루이는 또 다른 20년을 진행 중이다.
 

와인저장고 입구에 걸려있는 액자에는 도멘 초기의 모습이 담겨 있다. 최신 양조 시설을 제외하고는 건물 구조와 내부 배치 등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쟝-루이의 지휘 이래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관습적인 와인 양조 방식 대신 순수한 자연주의 양조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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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시대를 역행하는 철없는 결정이라며 주변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쟝-루이는 그의 결정이 바른 결정이라고 확신했다. 쟝-루이의 첫째 딸 오펠리와 둘째 아들 져스탕 을 포함해 Pierre Cotton, Yann Bertrand 등 여러 젊은 와인생산자들은 쟝-루이의 와인 생산방식을 벤치마크로 삼고 끊임없이 질문을 해온다. 그의 아낌없는 조언과 노하우를 전수하려는 노력 때문인지, 그는 ‘보졸레의 요다’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보졸레에서 ‘내추럴 와인’을 말할 때 언급되는 두 인물이 있다. Jules Chauvet줄 쇼베와 Marcel Lapierre마셀 라피에르가 그들이다. 쇼베 씨는 규모 있는 땅의 지주이자, 다른 생산자의 와인 또는 포도를 매입하여 와인을 만들어 판매하는 네고시앙이었다. 동시에 효모와 발효 전문 화학자이면서 ‘wine in question’의 저자로 그를 80년대 내추럴 와인 움직임의 시초로 보는 시각도 있다. 보졸레에서 ‘내추럴 와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셀 라피에르는 쇼베 씨로부터 영향을 받아 1981년부터 내추럴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젊은 쟝-루이는 10살 많은 옆 동네 형님 마셀 라피에르가 도전하고 성취하는 모습을 봐 오면서 용기와 확신을 얻었고, 2000년부터 내추럴 와인 생산 방식과 철학을 도멘 드 라 그랑꾸흐에 도입하게 된다.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인위적인 간섭을 최소화하는 양조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나아가 2009년 EU 유기농법 인증 마크인 AB를 획득하여 작업 환경과 방식을 공식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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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멘 드 라 그랑꾸흐가 소유한 밭은, 본가가 있던 브뤼이(1.7헥타르)를 제외하고는 모두 도멘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가장 넓은 밭인 Clos de la Grand Cour(클로 드라 그랑꾸흐)와 Lieu-dit ‘Champagne’(리유디 샹파뉴), La chapelle des Bois(라 샤펠 데 보아)의 세 개 밭을 합치면 9.8헥타르이다. 매년 평균적으로 3만 병의 와인을 생산하며(단, 2016년에는 5천 병, 2017년에는 7천 병 생산), 와인 레이블에 밭 이름이 표기된다. 포도나무의 평균 나이는 40-50년이며, 70년 되는 오랜 고목들은 샹파뉴 밭과 클로 드 라 그랑쿠흐 밭에 3헥타르 가량 흩어져 있다.
 

“건강한 땅에서 건강하게 자란 포도는 와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 내추럴 와인생산자들의 주장이며 쟝-루이도 토양과 묘목 관리 등 기본에 충실하다. EU 유기농법 매뉴얼을 따라 농작하지만 추가적으로 아기 쐐기풀, 쇠뜨기 등을 우려낸 차를 묘목에 뿌려주는 동종요법(Homeopathy)부터, 2-3년에 한 번씩 소똥과 볏짚, 포도 찌꺼기와 깃털로 만든 거름을 주어 건강한 토양의 상태를 유지하여 병충해를 이겨낼 수 있는 자생력을 길러준다.

 

일년 내내 잡초제거 작업을 하며 특히 키가 작은 가메이 품종 포도나무는 아랫부분을 깔끔하게 정돈해 주어야 겨우내 가지치기가 수월하기 때문에, 사람이 곡괭이로 나무 한그루 한그루씩 주변 토양을 정리해 주어야 한다. 12월이 되면 묘목 몸통을 제외하고 모든 가지를 잘라주는 전통적인 고블레 방식으로 가지치기를 한다. 2016-2017년과 같이 우박 같은 자연재해가 있거나, 비가 많이 오는 해일 경우,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해 유럽 연합에서 허가한 자연원료의 제품을 쓰기도 한다. ESCA처럼 묘목이 말라가는 불치병이 걸리거나 너무 오래된 묘목은 뽑아내고 2년 가량 토양을 쉬게 한 후 새 묘목을 심는다. 토양은 주로 적색 화강암으로, 와인은 붓꽃류인 아이리스와 바이올렛 향과 우아한 텍스처가 도드라진다. 도멘 드 라 그랑꾸흐 와인은 섬세함과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풍미, 긴 여운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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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양조는 인위적인 작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포도는 손상이 없도록 조심스레 손으로 수확한 후 하룻밤 냉장 보관한다. 이는 저온 침용을 실행하기 위한 것으로, 장시간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서두르지 않고 외부 자극 없이 천천히 포도의 색깔과 맛을 우려내기 위해서다.


보졸레는 전통적으로 탄소 침용(Carbonic Maceration) 방식을 사용하는데, 떫은 맛의 타닌 풍미를줄이고 과일 풍미가 풍성한 와인을 만드는 양조 방법이다. 포도송이와 꽃자루를 분리하지 않고 포도 통째로 5000리터 발효 큐브에 담아 탄소층을 첫날만 주입해 산화를 방지한다. 포도송이 안에 갇힌 과육과 과즙은 2-3주가량 자연 효모에 의해 당이 소모되면서 알코올로 발효되는데, 맛, 색상 그리고 당도를 매일매일 체크해야 한다. 와인 잔당의 밀도가 1010까지 떨어지면 공기 압축기로 옮겨져 무리 없이 발효된 와인을 씨와 줄기, 껍질로부터 분리한다. 새로운 큐브로 옮겨진 와인은 5-10일 추가 발효하는데, 당도는 더 낮아지고 와인 속에 있던 고형물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숙성 단계로 갈 준비가 된다.

 

와인은 종류에 따라 부르고뉴의 Jean-Claude Ramonet에서 사용했던 226리터들이 오크통이나 6천리터들이 오크통 또는 이녹스통에서 숙성되며, 숙성기간도 7-9개월로 빈티지나 와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와인 설명 페이지 참고). 다음 해 4-6월 중 숙성 저장고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는 와인들을 같은 종류별로 한곳에 모아 일관된 풍미를 가지도록 블렌딩 한다. 최대한 맑고 침전물이 없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음력 보름달이 떴을 때 블렌딩 한다. 이 과정에서 와인이 공기와 접촉하여 산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스 형태의 산화 방지제 10 mg/l를 주입하는데, 내추럴 와인을 만들 때 레드와인일 경우 30mg/l까지 허용된다(L'Association des Vins Naturels 기준). 그 외에는 어떠한 화학 물질도 추가하지 않으며, 한 달 후 보름달이 되었을 때 중력과 달의 힘을 통해 정화된 와인을 병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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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네고시앙 Famille Dutraive 탄생
 

2016년 5월의 어느 저녁, 평소처럼 도멘 드 라 그랑꾸흐는 사람들 소리로 떠들썩했다. Foillard를 포함해 동료 와인메이커들, 이웃과 가족들이 저녁으로 소시지와 와인을 주고받으며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순간 ‘타타타’하며 지붕에 떨어지는 무언가에 모두 침묵했다. 우박이었다. 급하게 자리를 뜨는 와인메이커들의 모습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 주었다. 한 달 후 또 우박이 내렸다. 쟝-루이는 그 해 포도의 95%를 잃었다.

 

와이너리에 딸린 식구와 운영비용을 마련하려면 포도를 매입해서라도 와인을 만들어야 했다. 인간 네트워크 쟝-루이는 보졸레뿐만 아니라 랑그독 미네르부아까지 내려가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를 확보했다. 그 결과 네고시앙 Famille Dutraive 파미 뒤트래브가 탄생하게 된다. 포도를 매입해서 만든 와인은 Domaine de la Grand’ Cour가 아닌 Famille Dutraive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매년 셀렉션은 변화할 수 있으나, 도멘 자체 기준과 동일한 선별 기준으로 포도를 선택하며, 양조는 도멘에서 같은 방식으로 직접 한다.


2018년에는 Saint-Amour Clos du Chapitre샹따무르 끌로 듀 샤피트흐, Chiroubles쉬르블, Chénas Lieu dit en Papolet쉐나 리유디 앙 빠뽈레, Fleurie la Tonne플러리 라 톤느(2018년까지만 생산)가 생산될 예정이며. 카리낭 품종으로 만들던 랑그독 와인 Cap O Sud캡 오 수드는 당분간 생산 계획이 없다고 한다. 도멘 드 라 그랑꾸흐 와인을 한국에서도 곧 만나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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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_ 원정화 (WineOK 프랑스 현지 특파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 후 1999년 삼성생명 런던 투자법인에 입사하여 11년 근무했다. 2009년 런던 본원에서 WSET advanced certificate 취득, 현재 Diploma 과정을 밟고 있다.  2010년 프랑스 리옹으로 건너와 인터폴 금융부서에서 6년 근무하던 중 미뤄왔던 꿈을 찾아 휴직을 결정한다.
 
10개 크루 보졸레에 열정을 담아 페이스북 페이지 <리옹와인>의 '리옹댁'으로 활동 중이며 WineOK 프랑스 리옹 특파원으로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와인을 통해 문화와 가치를 소통한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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