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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소매유통에서 가장 큰 화두는 대형마트의 성장이다. 1993년 11월에 이마트가 서울 창동에 처음 선을 보인 뒤 할인 매장이 도시 곳곳에 속속 들어서고 국내 소매유통 시장이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2000년에 이미 136개까지 매장 수를 확대한 대형마트는 전체 소매 매출의 9%를 점유하고, 이후 2009년에 매장 수가 442개로 3배가 넘는 규모로 확대되어 소매 매출 점유율이 14%까지 상승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의 구매패턴 변화로 대형마트 매장 수는 2015년에는 515개까지 확대되지만 소매 매출 점율은 10%로 하락하며 대형마트는 성장 정체기에 들어선다. 동 기간 중 전체 소매시장 규모는 연 평균 7~8%로 꾸준히 증가하고 대형마트는 국내 거의 모든 소비재 상품의 유통 채널이 재편되는 그 중심에 있었다.

 


소매유통 성장과 대형마트 비중 추이.jpg

 

대형마트에 와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4년부터다(“메가마트가 선정한 올해 '유통 10대 뉴스'”). 이 때를 기점으로 와인 소매유통은 백화점과 와인전문점에서 대형마트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 와인 붐과 함께 와인 소매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대형마트가 와인 소매시장에 끼친 영향은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중간 도매상이 하던 역할을 대형마트가 흡수함으로써 와인 가격 인하가 가능해 졌다. 대형마트는 전국 단위로 자동화된 물류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굳이 중간 도매상을 거칠 필요가 없고, 도매 마진에 해당하는 15%는 최종 소비자 가격을 11.6% 인하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둘째로, 대형마트의 구매력이 와인 전문점이나 백화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대형마트는 와인 수입사에게 공급단가 할인을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 구매 협상력을 갖는다. 만약 수입사가 대형마트에 10% 추가 할인된 공급단가로 와인을 공급하면 최종 소비자가격은 7.7% 내려간다. 종합하면, 중간 도매상의 부재와 공급단가 할인으로 인해 와인의 소비자 가격은 많게는 19.3% 낮아진다. 즉 도매 기능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대형마트는 기존 와인 유통 채널보다 소비자에게 10~20% 더 저렴한 가격으로 와인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격 경쟁력 외에도, 대형마트는 전국 단위 유통망을 가지고 있어 기존 와인 유통 채널이 접근하지 못한 지역에서 새로운 와인 고객을 창출하였다. 또한 전국적으로 “같은 와인, 같은 가격”이라는 가격 정책을 실시하여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와 중소도시, 전문점 별 가격 격차에서 소비자가 경험하는 구매 리스크와 불편을 해소시켰다. 또한 편하게 와인을 쇼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 새로운 와인 고객을 꾸준히 대형마트로 유입시킴으로써 국내 와인 시장이 성장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렇게 대형마트가 와인 소매유통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초반에 기존 와인 유통의 중심이었던 와인 전문점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동일한 브랜드의 와인을 취급할 경우 대형 마트가 와인 전문점 보다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시장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가격 경쟁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일상 와인은 대형마트가, 프리미엄 와인은 와인 전문점이 주로 취급하는 형태로 채널 간 역할의 조정 및 변화가 이루어졌다.

 

만약 와인 수입사가 대형마트에 공급가를 10% 할인해서 납품하면 (도매 납품가가 수입원가X1.79에서 수입원가X1.61로 낮아지게 되고) 수입사 마진율은 평균 44%에서 6% 하락하여 판매관리비 비중인 41%보다 낮은 38%로 줄어들게 된다. 이 때 대량 공급에 따른 비용 절감으로 마진율 하락을 상쇄할 수도 있지만, 대형마트의 요구로 행사인력 파견 등과 같은 추가적인 마케팅 비용을 분담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수입사는 대형마트와의 거래에서 적정 이익을 남기기 못하고 수입사에 따라 대형마트와의 거래 증가가 적정 이익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대형마트와 수입사 사이의 관계는 지분관계와 유통물량 의존도에 따라 다음의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대형마트가 수입사를 설립한 후 해당 수입사의 모든 와인을 판매하거나 일부 특정 카테고리의 와인을 선택적으로 판매하는 유형, 그리고 지분 관계가 없는 모든 수입사 또는 일부 특정 수입사의 경쟁력 있는 상품을 취급하는 유형 등이 그것이다.
 

 

대형마트와 수입사 관계.jpg

 


위 그래프 ④번의 자회사 집중 유형으로는 이마트와 신세계L&B가 대표적이고, 롯데마트를 제외한 다른 대형마트의 경우는 ①번과 ②번에 가깝다. 대형마트와 와인 수입사의 관계에서 거래관계 설정의 주도권은 대형마트가 가지고 있지만, 와인 수입사의 경우 ②번과 ③번 유형에 존재하는 사업 리스크를 회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대형마트와 와인 수입사 간의 관계는 ①번 개방형과 ④ 자회사 집중형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와인 소매시장에서 대형마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소매 유통의 구조 변화와 그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2005~2015년 사이의 유통 단계별 연평균 성장률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보면, 대형마트는 금융위기 이전에는 시장 평균 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했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 이하의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금융위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시장 평균 이상으로 성장하는 곳은 편의점이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시장 평균을 밑돌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시장 평균을 상회하며 성장하는 곳은 슈퍼마켓과 무점포 소매 채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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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대형마트의 와인 판매량이 증가하더라도, 전체 와인 판매 중 대형마트의 비중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압축적으로 성장한 신세계L&B의 그룹 내 와인 판매 채널의 비중 변화는 이처럼 와인 소매유통 채널이 변화하고 있는 환경과 맥을 같이 한다.

 

신세계L&B의 사례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신세계L&B는 2009년 설립되어 9년 만에 매출액이 52억원에서 665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전체 매출액 중 와인 비중은 2014년 74%에서 67.6%로 낮아지면서 종합 주류 수입사로 전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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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L&B의 성장은 그룹 내의 유통 물량을 자회사로 내부화 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매출액이 52억에서 500억원대로 10배 성장하는 동안 그룹사 매출 비중은 86%를 상회하였고, 자체 와인 전문점인 와인앤모어를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한 2017년에 들어서야 그룹사 매출 비중이 80% 이하로 낮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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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앤모어 점 수.jpg

 


신세계L&B의 그룹사 별 매출 비중 추이를 보면 사업 초반에는 신세계 백화점의 비중이 잠깐 높았다. 그러나 이내 대형마트인 이마트의 비중이 급증하여 83%까지 높아졌다가 2015년 들어서는 감소하기 시작하여 2017년에 63%로 낮아졌다. 2016년 이후에는 편의점 채널인 이마트24를 통해 채널 비중은 낮지만 의미 있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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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매유통 채널의 비중 변화와 신세계L&B의 사례를 종합해 보면, 향후 대형마트의 와인 판매량은 늘더라도 전체 소매 유통 채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리고 새로운 성장 채널로서의 가능성은 편의점과 온라인을 포함한 무점포 채널에서 찾을 수 있고, 새로운 성장 채널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지난 15년 간 대형마트를 통해 와인을 접한 와인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대형마트와는 철저히 차별화된 와인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단, 인터넷 와인 판매를 허용하지 않는 규제가 지속될 경우 대형마트의 비중 감소는 제한적일 수도 있다.

 

요약하면, 2004년 이후 국내 와인소매 유통에서 대형마트는 기존의 와인 채널 대비 저렴한 가격과 소비자 편익을 제공함으로 기존 와인 고객 뿐만 아니라 기존 채널이 다가가지 못했던 새로운 와인 고객을 창출하여 와인 소매채널의 중심으로 자리잡았고 한국 와인 시장이 성장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새로운 유통 채널의 등장으로 그 비중은 점차 낮아지겠지만 새로운 유통 채널과 관련된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대형마트의 비중 감소는 단기적으로 제한적일 가능성도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통채널이 소비자 가격에 미칠 잠재적인 영향에 대해 살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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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_ 이상철
 
 
경영학과 마케팅을 전공하고 통신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보르도 와인을 통해 와인의 매력을 느껴 와인을 공부하며 와인 애호가가 되었다. 
 
중앙대 와인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하고 WSET Advance Certificate LV 3 를 취득하였으며 와인 애호가로서 국내 소믈리에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04년 부터 현재까지 쵸리(chory)라는 필명으로 와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개인 시음기와 와인 정보 및 분석적이 포스팅을 공유하며 생활 속의 와인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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